독배 말고 비트 주세요 YO!…래퍼가 된 ‘테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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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99년, 일흔살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 섰다. 도시가 섬기는 신들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였다. 시민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했고, 그는 탈옥하라는 제자들의 권유를 물리친 채 독배를 들었다.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의 죽음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한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를 억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역설로 남았다.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이 무거운 재판을 뜻밖에도 랩과 힙합의 언어로 되살린다.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놀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개막한 작품은 소크라테스(정민·김도빈·조풍래·문경초)와 그를 고발한 젊은 시인 멜레토스(최호승·황민수·이종석·이준우)의 법정 공방을 한바탕 랩 배틀로 바꾼다. 고대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 앞에 마이크가 놓이고, 논증은 라임이 되며 반박은 비트에 실린다. 철학자를 박제된 위인이 아니라 자기 언어로 권력과 맞서는 뜨거운 논객으로 불러내는 방식이 발칙하다.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두고 “꼰대”라고 직격하고,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신이 인정한 현인”이라며 맞받아친다.

실제 재판에서는 젊은 시인 멜레토스뿐 아니라 유력 정치인 아니토스와 웅변가 리콘도 고발에 참여했다. 재판이 펠로폰네소스전쟁 패배와 ‘30인 참주’의 공포정치가 지나간 뒤 민주정이 가까스로 복원된 시기에 열렸다는 점에서 법정에 적힌 죄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적 불안도 배경에 깔려있다. 작품은 이 복잡한 맥락을 촘촘히 파고들기보다 두 인물의 대결로 압축해 논쟁의 속도와 음악적 쾌감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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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을 ‘배심원’으로 부르는 순간 관객도 2400여년 전 재판의 당사자가 된다. 무대 양옆 모니터에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고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떼창을 끌어낸다. 코러스(김기영·권오득·박희태·배혜진·이여진·김예나)는 두 인물의 대결에 힘을 보태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랩은 때때로 가사를 따라가기 벅찰 정도지만, 모니터가 논쟁의 맥락을 붙드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문답도 랩과 코러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나 선명해진다. 철학과 참여형 공연의 결합은 낯설지만, 작품은 그 이질감 자체를 활력으로 삼는다.

핵심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남기는 말에 담긴다. “죽음을 피하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사악함을 피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도 전해지는 이 말은 목숨보다 올바르게 사는 일을 앞세운 그의 선택을 압축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패배가 아닌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형을 피하려 신념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그는 자신을 죽인 판결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흥겨운 비트 아래 묵직하게 남는 질문도 결국 이것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비겁해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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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간 이어지는 커튼콜은 이 작품의 백미다. 관객들은 응원봉을 흔들고 배우들과 노래를 주고받으며 객석을 케이(K)팝 콘서트장으로 바꾼다. 법정의 배심원으로 들어왔던 이들이 마지막에는 공연의 동료가 되는 셈이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 사이에서 “재밌다”는 말이 거듭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대 철학자의 죽음과 무거운 질문을 오늘의 젊은 감각으로 뛰놀게 만든, 생기발랄한 뮤지컬이다. 11월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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