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틀 갇힌 돼지, 홰 못쓰는 닭…“본능 억압 축산환경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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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상태에서 분만을 앞둔 어미 돼지는 앞발로 땅을 파고, 코로 흙을 모으고, 짚을 물어와 둥지를 짓는다. 이런 본능은 움직임이 제한된 환경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분만틀 안에서도 어미 돼지는 발과 코로 바닥을 긁으며 헛되이 둥지 짓기를 되풀이한다.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수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진행된 ‘농장동물 복지 포럼’에서 윤진현 전남대 교수(동물자원학부)는 이런 본능 억압이 어미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 분만·포유에 필요한 호르몬 분비가 억제된다고 설명했다. 대한수의학회에서 농장동물 복지를 따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부분의 축산농가에서는 출산한 어미 돼지가 새끼를 깔아 죽이거나(압사) 스트레스로 해치는 것(식자)을 막는다며 분만틀을 쓴다. 하지만 몸을 뒤로 돌리거나 뒤집기 어려운 분만틀은 동물 복지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수십 년째 이어진다. 임신한 어미를 가두는 ‘스톨’은 2019년 축산법 시행령 개정으로 2030년부터 모든 농가에서 사용이 제한되지만, 분만틀은 아직 별다른 규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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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새끼 압사의 원인이 시설 구조보다 어미 돼지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봤다. 본능에 따라 둥지를 짓지 못한 모돈은 분만 중에도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하며 출산에 집중하지 못하는데, 윤 교수는 “새끼를 깔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누울 공간이 없어서” 압사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새끼를 많이 낳도록 개량된 ‘다산성 모돈’은 문제를 더 키운다. 과거 어미 돼지는 한배에 11마리 안팎을 낳았는데, 덴마크 개량종인 다산성 모돈은 새끼 수가 20마리까지 늘어났다. 그러자 1시간 반이면 끝나던 분만이 최대 6~7시간까지 늘어났다. 또 늦게 태어난 새끼는 산소가 부족해 사산되거나 어미 곁에 있다 깔려 죽었다. 반면 윤 교수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연구에선, 어미에게 임신 말기·포유기에 둥지 짓기 재료가 될 수 있는 야자매트와 코로 굴리는 롤러를 제공하자 분만 시간이 짧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지표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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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제자들은 모두 동물의 본능적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면적·시설 기준만으로는 부족하며, 동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이 충족돼야 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지 프리 산란계의 복지 문제’를 임상 수의사의 관점에서 본 고승열 다란동물병원 원장은 같은 농장 평사에서 키운 두 산란계 무리를 비교했다. 일반 평사에서 자라난 닭의 방란율(닭이 지정된 곳에 알을 낳지 않고, 계사 바닥 등에 떨어뜨려 낳는 비율)이 30%에 달했던 것과 달리, 다단식 구조에서 자란 무리에서는 2~3%에 그쳤다. 이는 닭들이 어릴 때 다단식 구조물에서 높은 곳에 오르는 법을 익혔는가 아닌가의 차이였다. 고 원장은 “육성 초기부터 구조물을 쓰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다면, 산란상(알 낳는 상자)·횃대 이용 빈도는 낮을 수 있다”며 “현행 기준은 횃대와 산란상 설치를 요구하지만, 닭이 실제로 쓰는지까지 살피지 않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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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에서 15년째 젖소 농장을 운영 중인 하현제 고려동물병원 원장은 소의 행복을 영화 제목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빗댔다. 소는 하루 3~5시간 사료를 먹고, 7~10시간 이상 되새김질(rumination·‘묵상’이란 뜻도 지님)하고, 10~14시간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 원장은 “생산성 극대화보다는 평화로운 목장”을 목표로, 소가 언제든 먹고 마시고 누워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자신의 농장에서 질척한 톱밥 대신 천연유기질 소재인 ‘피트모스’를 깔짚으로 쓴 지 6년째인데, 소들이 하루 10시간 이상 누워 지내고 치료할 일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 위안에 넣은 센서로 소의 되새김질 시간과 체온, 음수 횟수를 기록하고 인공지능으로 이상 징후를 파악해 질병 여부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방역·질병관리·생산성에 집중해온 농장동물 수의학에서 동물복지가 중요해진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연구로 밝혀진 동물복지 문제가 실제 축산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동물복지 비용을 정부·유통업계·소비자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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