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이 지닌 40일간의 비밀, 수능출제본부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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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만 약속해도 새어나가는 게 비밀이라지만, 수백명의 사람들이 수십일간 함께 지내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밀봉한 듯 새어나가지 않는 곳이 있다. 전 국민이 그날 하루 숨죽여 지내는 수학능력시험 준비 캠프다. 출제 및 검토위원만 500여명에 이르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공기처럼 쓰던 전자기기 하나 없이 40일 가까이 한 건물에 갇혀 지내며 총 180개의 문제를 만드는 이 과정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꽁꽁 숨겨졌기 때문에 더 궁금해지는 이 현장이 취재와 상상력으로 쫀쫀하게 엮여 깔끔한 코미디 영화 한편으로 완성됐다. 28일 개봉하는 ‘수능, 출제의 비밀’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크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관광버스를 타는 이들이 등장한다. 여행의 설렘보다 긴장과 한숨에 더 가까운 표정을 한 이들은 수능 출제에 차출된 교사와 교수들이다. 이 와중에 혼자 설렌 국어과 교사 맹보람(이선빈)은 캠프에 도착한 뒤 동명이인으로 드러나면서 소동이 벌어지지만, 국어과 출제위원장(유재명)은 “다양성 차원에서 더 긍정적”이라며 묘한 표정으로 합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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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보람은 그동안의 준비가 무색하게 첫 회의에서부터 깨진다. 교수 아닌 교사가, 그것도 수능 2등급 출신의 지방 고등학교 교사가, 그것도 수능 출제위원 자격을 간신히 채운 5년 경력의 젊은 교사가 에스(S)대 출신 중장년 교수들이 포진한 출제위원진 앞에서 문제를 제안하는 ‘시건방진’ 행동을 하는 것에 다들 제동을 건 것이다. 깨지는 건 맹보람뿐만이 아니다.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지문을 만드는 데 몰두하거나, 과거에 쌓인 서로 간의 앙금을 출제 방향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내고, 은밀하게 자신이 투자한 교육기업과 관련된 문제를 내려고 애쓰는 시도 등으로 출제는 점점 산으로 간다.
‘수능, 출제의 비밀’은 픽션이지만, ‘정말 저렇지 않을까’ 싶은 상상들이 코미디적 외피를 둘러 입었다. 위계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교육계의 권위주의적 특징들이 풍자적으로 담겼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논란이 됐던 출제위원들의 특정 대학 편향이나, 줄 세우기를 시험 성공의 척도로 받아들이는 교수·교사들의 인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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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요란하고 과장된 소동극이 현실감을 잃지 않은 데는 기자 출신 감독의 취재력이 한몫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시나리오를 쓰고 50대 나이에 늦깎이 데뷔한 이용재 감독은 “수능 출제 본부에 다녀온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구상했다”며 “재미를 위한 과장이 있지만, 설정이나 에피소드는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을 둔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국어과 출제위원장이 한약 파우치에 넣어온 양주 에피소드가 그중 하나다.
현실을 풍자하지만, 그보다 더 중점을 둔 건 소동극에 기반한 웃음이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웃음벨’을 장착하고 있다. 기득권에 연연하는 교육계 수장들과 싸우는 열혈 교사 맹보람의 순수함이 ‘감동벨’까지 애써 누르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이선빈을 비롯해 영화 속 최고 권력자를 연기하는 유재명, 그의 숙적인 검토위원장 역의 김영민, 감초 역할의 황보라와 정수영 등 액션과 리액션의 조합이 잘 들어맞는 앙상블 연기를 보는 맛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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