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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7, 2026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페스트균 유출 소동’ 러시아 연구소, 도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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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르시니아 페스티스. 위키피디아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위키피디아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28세 여성 연구원이 숨진 뒤 ‘페스트균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망한 다리야 시필로바는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실험실 기술자로, 지난달 29일 입원한 뒤 지난 2일 숨졌다. 러시아 연방 소비자권리보호·복지감독청(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은 사망 원인을 ‘원인 불명의 폐렴’이라고 밝혔으며 연구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다만 현지 언론에서는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페스트균을 담은 시험관을 깨뜨렸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 당국은 접촉자들을 격리·관찰했고, 세계보건기구(WHO)에 이르쿠츠크에서 확인된 페스트 환자는 없다고 통보했다. 현재까지 연구원 사망이 페스트 감염이나 실험실 유출 때문이라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구실 사고를 둘러싼 의혹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에 사건 경위에 대한 더 많은 정보 공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페스트라고 하면 대부분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떠올리는데, 21세기 러시아에는 왜 아직도 ‘항 페스트연구소’가 있는 것일까. 사라진 줄 알았던 페스트균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는 것일까.

페스트는 역사책 속에서 끝난 병이 아니다. 페스트를 일으키는 세균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다. 주로 작은 포유류와 그 동물에 기생하는 벼룩 사이에서 살아남는다. 사람이 감염된 벼룩에 물리거나 감염된 동물의 조직·체액에 접촉하면 감염될 수 있다. 특히 폐에 균이 퍼지는 폐렴형 페스트는 감염자의 호흡기 비말을 통해 사람 사이에서도 전파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도 페스트균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지역, 이른바 ‘자연 발생지’가 남아 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역시 그중 하나다. 시베리아에는 고르노알타이 고산지대, 투바 산악지대, 자바이칼 초원지대 등 여러 자연 발생지가 확인돼 있다. 이곳에서는 설치류와 벼룩을 중심으로 페스트균이 생태계 안에서 순환한다.

따라서 페스트균은 누군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내지 않아도 자연계에 존재한다. 러시아가 페스트를 감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생동물 사이에서 균이 퍼지다가 사람에게 옮겨올 가능성을 미리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베리아 페스트 자연 발생지를 다룬 연구에서는 벼룩이 페스트균의 자연계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 홈페이지 갈무리

러시아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 홈페이지 갈무리

이 때문에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의 역할도 단순히 ‘페스트균을 연구하는 실험실’에 그치지 않는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연구소는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의 페스트를 비롯해 콜레라, 브루셀라증, 야토병, 탄저병, 렙토스피라증, 예르시니아증 등 다양한 고위험 감염병을 감시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진드기매개뇌염이나 신증후군출혈열 같은 바이러스성 감염병도 연구 대상이다.

연구소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6월 5일 소련 정부의 결정으로 이르쿠츠크 국가 항페스트연구소가 만들어졌다. 당시 목적은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 퍼져 있던 페스트를 체계적으로 감시하고 방역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소는 주변의 항페스트 기지와 연구시설을 연결하는 일종의 지역 방역 허브 역할도 했다.

초대 소장은 미생물학자이자 역학자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스코로두모프(1888~1939)였다. 그는 자바이칼과 몽골 지역의 페스트 유행을 연구하고 ‘시베리아 페스트’와 관련한 연구서를 남겼다. 연구소 설립 당시 직원은 고작 7명이었다. 이후 미생물학자뿐 아니라 역학자, 동물학자, 곤충학자 등으로 조직이 확대됐다.

연구소의 역사에는 당시 소련의 정치적 격변도 그대로 겹쳐 있다. 스코로두모프는 1939년 반소비에트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튿날인 4월 15일 처형됐다. 이후 1955년 복권됐다. 이르쿠츠크 지역 자료에 따르면 그의 체포 이후 한동안 연구소와 관련 기관에서도 스코로두모프 행적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려웠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연구소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페스트뿐 아니라 당시 군인과 민간인에게 위협이 됐던 각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백신과 혈청 등을 생산했다. 1941년에는 항페스트 혈청과 백신 생산에 들어갔고, 이후 콜레라 백신과 콜레라 박테리오파지, 배양용 배지 등도 생산했다.

이때 연구소에서 나온 의외의 성과가 있다. 페스트가 아니라 ‘야토병’ 백신이다. 야토병(튤라레미아·tularemia)은 프랜시셀라 툴라렌시스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토끼열이라고도 불린다. 설치류나 토끼류 등 동물과 진드기·벼룩 등의 매개체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 당시 전쟁 상황에서는 군사적으로도 경계해야 할 감염병이었다.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에서 이 백신을 연구한 사람은 니콜라이 가이스키(1884~1947)였다. 그는 1940년대 초 약독화한 야토병균을 이용한 생백신을 개발했고, 이 백신은 ‘가이스키-엘베르트 백신’으로 불렸다. 1946년 가이스키는 이 연구 성과로 소련의 국가상, 당시 명칭으로는 ‘스탈린상’을 받았다.

야토병균 콜로니. 위키피디아

야토병균 콜로니. 위키피디아

더 놀라운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백신의 효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일부 연구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독성이 있는 야토병균에 노출되는 실험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연구윤리와 안전성 측면에서 매우 엄격한 검토가 필요한 방식이다. 하지만 당시 연구소의 기록에는 이 같은 자기실험에 가까운 연구가 실제로 등장한다.

이런 역사를 보면 이번에 논란이 된 연구소를 단순히 ‘페스트균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곳의 핵심 업무는 자연계에 남아 있는 고위험 감염병을 감시하고, 병원체를 진단하고, 유행을 막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연구소 공식 자료를 보면 현재도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자연 발생 페스트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위험한 병원체를 확인하고 진단하는 지역 거점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페스트뿐 아니라 탄저병, 야토병, 브루셀라증 등 동물에서 사람으로 넘어올 수 있는 감염병도 감시 대상이다. 말하자면 ‘페스트 연구소’라는 이름은 오래됐지만 실제 업무는 시베리아 지역의 고위험 감염병 감시센터에 가깝다.

그런데 왜 미 행정부는 좀 더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을까. 단순히 ‘페스트’라는 이름이 주는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의 페스트는 과거와 달리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WHO 역시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의문을 키운 것은 20대의 젊은 연구원이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숨졌다는 사실이다. 애시시 자 브라운대 공중보건대학원 학장이자 생물안보 전문가는 CNN에 “만약 페스트였다면, 항생제를 신속하게 투여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젊은 여성이 사망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라면서 “수백 명이 격리된 것 역시 통상적인 페스트 대응치고는 이례적인 조치”라고 했다. 이어 러시아의 생물무기 프로그램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 연구소가 그 프로그램에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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