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유족수당’ 논란보다 중요한 물음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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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1894년에 동학 조직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군의 봉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아직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건 이후 반세기 이상 주로 ‘동학란’이라고 알려졌던 이 사건은 이후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는 이 운동·전쟁·혁명에 내포된 복잡한 성격과 그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평가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적어도 법적인 측면에서는 이 사건의 명칭과 가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이루어진 바 있다. 2004년에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계승·발전시켜 민족정기를 북돋우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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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을 근거로 각 지방의회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정읍시의 사례는 특히 눈에 띈다. 이 지역은 최초의 무장투쟁이었던 고부 봉기, 그리고 관군에 맞선 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황토현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2020년에는 황토현 전승일인 5월11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되고, 전국 최초로 참여자 유족에게 수당이 지급되었다. 지난 8월 공고된 전북특별자치도의 유족 수당 정책은 이것이 도 단위로 확대 적용된 것이다.
현재까지 이 정책에 대한 대다수 언론과 여론의 반응에서는 환영보다는 비판이 두드러진다. 130여년 전의 사건에 대해서까지 보상한다면 임진왜란 유족은 왜 챙기지 않느냐는 조롱, 향후 국가의 보훈 체계가 교란될지 모른다는 우려, 자료가 부실한 시기인 만큼 사실관계 및 이후의 친일 활동 가담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 공동체 전체의 공적 가치를 가문의 명예로 사유화하는 조치라는 비판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1895년의 을미의병부터 독립운동으로 서훈하는 상황에서, 비슷한 시기에 반외세 투쟁을 한 농민군을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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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현시점에서 농민군 유족에 대한 지방정부의 지원을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훈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건 시점이 멀다는 것은 지원 대상이 극히 한정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업, 병역, 교육, 의료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국가유공자 제도에 비하면 예산 범위 내에서 지급되는 월 10만원의 수당은 거의 상징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물론 문제도 있다. 보훈제도에는 국가폭력 피해에 대한 배상과 현 체제 성립에 기여한 공적에 대한 보상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일본군과 함께 농민군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그 후예들까지 차별과 불명예를 감당하게 한 왕조 국가의 책임을 현재의 국가가 승계하고 있다고 본다면 배상의 관점이고, 동학농민군의 어떤 측면이 오늘날의 민주공화정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면 보상의 관점이다. 그러나 현행 특별법과 기념사업들에서 전자의 차원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동학농민군의 봉기라는 사건이 현재의 국가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냐는 오래되고 근본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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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아직 ‘동학란’이라고 불리던 식민지 시기에도 1894년의 농민 봉기가 옛 질서에 맞선 혁명 시도였다는 주장이 천도교 계열의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해방 직후부터는 언론매체에서 ‘동학혁명’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군사정권들마저 그 의미를 전유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정읍 동학혁명기념탑 개막식에서 “5·16혁명도 이념 면으로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학혁명’을 3·1운동, 4·19, 5·18,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 민족, 민주 운동의 계보 맨 앞자리에 놓은 유명한 연설을 한 1987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유시”로 시작된 황토현 전적지에 대한 ‘정화’와 기념관 건립이 완료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동학농민군과 유족의 ‘명예 회복’ 자체는 그렇게까지 시급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들의 명예가 더럽혀졌다면 그 진짜 시점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국가적 기념사업이 군사 쿠데타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을 때다. 나는 유족 수당을 비롯한 기념사업 확대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용 전시성 사업이라는 일각의 의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것은 군사독재정권이 농민 봉기의 역사적 의미를 오용했던 과거의 소박한 재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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