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비의 위험한 국가 길들이기]‘문조털래유’·‘뉴이재명’ 위의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반성문을 썼다. 기자회견의 형식을 빌려서이다. 추락하는 지지도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부동산부터 주식시장까지 섣부른 말과 어설픈 정책의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인사에도 난맥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외교와 경제성장, 인공지능 시대로의 전환과 지방 균형발전 등 이재명 정부가 거둔 성과와 추진 중인 정책 가운데 높이 평가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 성과를 낸 대통령이, 그것도 취임한 지 겨우 1년을 넘긴 시점에 반성문까지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지지층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고 파벌 간 갈등을 중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바 강성 지지층과 고관여 지지층의 이반이 심각하다. 이들은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적당한 선에서 봉합하려 하고, 일부 인사를 두둔하면서 개혁 전체를 좌절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검찰권 남용에 적극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사들을 굳이 검찰개혁의 핵심 자리에 올릴 필요가 무엇이냐고 따진다. 이 대통령의 인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거 윤석열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옹호했던 인사를 상징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비중 있는 자리에 앉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지지층 내부 이견 조정하지 못하고
파벌 갈등 중재 실패한 이 대통령
모욕 문화에 날 선 비판할 수 있는
행정가 넘어 ‘정치가’ 이재명 기대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있기 얼마 전 한 담화에서 이들의 지나친 비타협성과 조급성을 비판했다. 그런 태도가 반동을 불러일으켜 개혁을 오히려 더디게 하고 심지어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의 입장이 옳은지, 대통령의 우려가 맞는지, 그도 아니면 둘 다 문제가 있는지를 길게 따지지는 않겠다. 경직적인 태도가 반작용을 일으켜 개혁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신중론과 현실론으로 포장된 애매한 노선이 개혁을 좌절시킨 예가 많다는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옳든 이 모든 주장은 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재명 대통령이 이러한 의견 충돌을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제대로 관리해왔는지를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무리 강성 지지자들이 고집불통이고 감정적으로 느껴지더라도, 또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더라도, 대통령은 국정과 여당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상대화해 사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자신이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릴 수 있다.
지금 문제의 근본에는 이견을 이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의견의 차이를 사상적·도덕적 배신으로 과장하고, 나와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기회주의자니 간첩이니 하는 살벌한 언어로 비난하는 것이 여야와 국회의원, 지지자를 막론하고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뉴이재명’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강성 지지층을 ‘반명’으로 낙인찍는다. 평론가를 자칭하는 유튜버들은 이들을 ‘문조털래유’라 비아냥과 욕설을 쏟아낸다. ‘문조털래유’로 몰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 제기가 대통령에 대한 반란으로까지 비난받는 상황에 분노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일방적인 낙인찍기는 적어도 그들 중 일부가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수박’으로 딱지 붙이던 시절부터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욕의 문화가 지속되는 한 지금의 ‘뉴이재명’도 조만간 ‘문조털래유’와 똑같은 험한 꼴을 당할 것이다. 결국 이런 꼬리표 붙이기와 혐오의 일상화는 대화를 단절시키고,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평소의 이재명이라면 어느 입장이 맞는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이런 볼썽사나운 행태 전체에 대한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친명’이니 ‘명심’이니 하는, 마치 박근혜 정권 시기의 ‘친박’이니 ‘친박 감별사’니 하는 봉건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당과 그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심각한 문제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대통령이 한쪽 편을 들고 있으며 편 가르기를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기자들 앞에서 국민에게 반성문을 읽게 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상대방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을 멈춰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깊어진 골은 단숨에 메워지지 않는다.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대통령 자신이다. ‘행정가 이재명’은 이미 충분히 봤다. 이제부터는 ‘정치가 이재명’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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