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는 등재 눈앞, 태권도는 ‘북한 선점’ 논란···유네스코는 ‘종주국’을 가리지 않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 제공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 제공
한국 전통 종이의 명맥을 이어온 ‘한지 제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류무형유산)에 오를 전망이다. 북한이 한국에 앞서 북한의 전통무술로 신청한 ‘태권도’도 단독으로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유네스코에 따르면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한국 정부가 신청한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을 심사해 대표 목록에 등재할 것을 권고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식물성 잿물 등 천연 재료로 만든다. 닥섬유와 물, 닥풀을 섞은 뒤 대나무 발로 떠 앞뒤와 좌우로 흔드는 ‘외발뜨기’ 기술이 쓰인다. 높은 숙련도와 복잡한 공정이 필요해 백번의 손길을 거친다는 뜻의 ‘백지’로도 불린다. 닥나무 재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산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품앗이로 제작에 참여하고, 장인들은 대대로 기술을 전한다. 평가기구는 “한지는 기록, 인쇄, 공예, 생활용품 등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되며 공동체의 일상과 문화적 관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등재가 확정되면 한지는 한국의 24번째 인류무형유산이 된다. 한국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을 시작으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2024년)까지 23건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2월 강원 속초시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과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의 합동공연에서 북한 시범단(ITF)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WT를 중심으로 태권도 ‘스포츠’로 발전시켜 세계에 보급하고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까지 이뤄냈다. ITF를 주도하는 북한은 전통 무예의 수련 규율, 타격 기술 등을 더욱 강조하며 ‘무도 태권도’의 원형을 좀 더 간직해 왔다. 연합뉴스
평가기구는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에 대해서도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 태권도는 ‘아리랑’, ‘김치담그기’, ‘씨름’(남북 공동 등재), ‘평양냉면’, ‘조선 옷차림 풍습’에 이어 북한의 6번째 인류무형유산으로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24년 3월 태권도 등재 신청서를 단독으로 제출했다. 한국은 남북 공동등재 가능성을 검토한 뒤 지난 3월31일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라는 명칭으로 신청서를 냈다. 북한의 태권도 등재가 확실시되면서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이 북한에 뒤처졌다거나 등재를 ‘선점’당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등재 추진이 늦어진 책임과 유산의 정통성을 빼앗겼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류무형유산 제도는 기원이나 배타적 소유권을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김지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정책팀장은 “무형유산은 현재 공동체가 어떻게 연행(演行)하고 전승하는지가 중요하다”며 “같은 문화라도 나라마다 다르게 전승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페루의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 등재 때도 볼리비아가 자국의 춤이 포함됐다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유네스코는 등재가 배타성을 뜻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아랍 커피와 아랍문자 서예는 여러 나라가 공동 등재했다.
2일 서울 강남구 국기원에서 열린 ‘2026 세계태권도한마당’에서 참가자들이 겨루기 경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도 아리랑은 한국이 2012년, 북한이 2014년 각각 등재했다. 김장문화와 김치 만들기도 한국이 2013년, 북한이 2015년 별도로 올렸다. 씨름은 각자 신청했다가 2018년 공동 등재했다. 북한은 2024년에도 한복의 제작·착용 관습인 ‘조선옷차림풍습’을 등재했지만, 당시에는 지금 같은 선점 논란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20세기 체제 경쟁을 하듯 국가 간 우열을 가릴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유산청도 전날 입장문에서 선등재가 배타적·독점적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라며 “한국 태권도의 ‘단독’ 혹은 ‘확장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기존 등재에 합류하는 확장 등재는 북한의 동의가 필요해 경색된 남북 관계에서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공식 발표에 앞서 지난 2일 SNS에 등재 권고를 예상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키웠다. 비판을 의식한 사전 해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종 등재 여부는 오는 12월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제21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그간 사례에 비춰 이변이 없는 한 등재가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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