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향은 어디서”…아이들이 있는 마을 축제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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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희 | 소설가
이웃 마을 축제에 다녀왔다. 벼바슴(벼 추수)이 시작되기 전, 여름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는 자리였다. 무대가 마련된 마을회관 앞길에는 형광봉을 든 70대 어르신이 주차 안내를 하고, 그 앞 정자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드론을 띄워 축제를 기록하는가 하면, 마을회관 마당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축제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마을 축제에 가봤지만 아이들이 마을 축제를 함께 준비한 마을은 이 마을이 유일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무지개반 아이들이 뛰어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자 공기가 들썩였다. 빨주노초파남보 모자를 쓴 무지개반 아이들의 춤에 이어 악기를 든 고학년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든 아이들이 끓어오르던 열기를 잔잔한 파도처럼 만들더니 이어서 경쾌한 발걸음의 화음으로 ‘학교 가는 길’을 연주했다. 할매와 할배들이 ‘학교 가는 길’을 같이 부르며 아이들을 따라 하는 신선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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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옆에는 마을 축제를 축하하는 상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시골 마을 축제답게 상품은 비료통, 예초기, 삼발이, 지팡이, 노르딕 스틱, 전동 분무기, 전기톱, 여행 가방, 에어프라이기, 냄비, 화장지 등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참가 선물로 자기 몸만 한 화장지 한 묶음씩을 들고 퇴장하고, 하모니카를 든 회원들이 ‘찔레꽃’을 불었다.
은은한 하모니카 소리를 따라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하는 할머니들의 합창이 터졌다.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마을 분들이 합창할 때 훅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을 따라 칡꽃 향이 축제 자리를 휘감았다. 사회자가 “이렇게 좋은 향이 어디서 나는 거죠?”라고 하자 할매 할배들이 일제히 초등학교 아이들을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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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 정지아의 소설이 떠올랐다. 소설은 평균 연령이 78살인 시골 마을에 30대 초반의 여성 두 명이 이주한 후 그 마을 평균 연령이 72살로 여섯 살이나 젊어진 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의 평균 연령은? 이 마을 입구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손을 보태어 일군 마을 공동 꽃밭과 꽃길이 있다. 할매 할배들과 함께 꽃밭에 꽂을 이름표를 만들고 흙을 고르며 마을을 가꾸어서일까. 동네 분들은 칡 향보다 더 진한 향기를 퍼뜨리는 아이들을 이 마을의 보물로 자랑하고 싶어 했다.

이어서 마을의 난타 동아리 순서였다. 무대에는 12개의 북이 자리를 잡고 가운데 장구가 놓였다. 시목초등학교 아이들처럼 빨주노초파남보로 셔츠를 맞춰 입고 청바지에 캡 모자를 쓴 난타 팀이 북채를 잡았다. 사회자는 시목1리 난타 동아리를 소개하며 “감자 캐고 북 치고, 깨 베고 북 치고, 고추 따고 북 치면서 연습했대요. 우리 마을 난타 동아리 이름이 ‘난동’입니다. 난동의 무대 시작합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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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부터 60대, 70대 남녀로 구성된 ‘난동’은 마을의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함께 하는 동아리로 농사일을 하다 틈틈이 만나 북채를 잡았단다. 앙코르를 받아 ‘쿵따리샤바라’를 칠 때는 캡 모자를 옆으로 바꿔 쓰고 젊은 에너지를 뿜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 사위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에 객석이 들썩이고, 아이들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뒤쪽에서 엉덩이춤을 춰댔다.
축제가 끝날 무렵 마을 이장이 나와 마을 분들이 모은 장학금을 초등학교에 전달하는 자리가 있었다. 난 이 장면이 귀하고 찡하게 느껴졌다. 고령화된 시골 마을에 아이들의 춤과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마을 분들은 농사지은 쌈짓돈을 모아 그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마을. 아이들이 길을 열고 할매와 할배들이 난타 공연을 하는 떠들썩한 축제에서 칡꽃 향기보다 진한 아이들의 숨소리는 마을을 마을답게 하는 자랑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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