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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3, 2026

‘이중섭을 누가 모르나’라고요?…박제된 천재를 다시 그리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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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다섯 아이’. 색판선화. 다섯 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혜화1117 제공
이중섭의 ‘다섯 아이’. 색판선화. 다섯 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혜화1117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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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한국인의 ‘최애 화가’ 이중섭(1916~1956)의 그림을 보며 떠오른 말이다. 천재 예술가의 비극적 서사로 이미 불멸의 신화가 되었는데 박제가 웬 말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이중섭은 1972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15주기 유작전’ 이래 국민 화가로 거듭났다. 1986년 호암갤러리 ‘30주기 특별전’에는 관람객 10만명이,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백년의 신화’에는 25만2466명이 전시전을 찾았다. 최근에는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 수집 작품이 기증으로 공개되면서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대중이 이중섭을 소비해 온 방식은 달라졌을까? 강렬한 소, 현해탄 사랑, 병마에 시달리다 떠난 ‘무연고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작가 등 특정 작품과 일화만으로 소비가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 “이중섭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술사학자 최열은 우리가 보아 온 것은 “이중섭이라는 거대한 미학적 영토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단 한번도 일별하지 못한 이중섭의 예술 세계”의 흐름을 추적해 ‘이중섭, 그 예술의 전모’를 밝히고자 했다. 12년 전 펴낸 ‘이중섭 평전’이 한 개인의 모든 것을 확인하고 따져본 것이라면, 이 책은 화가의 본령인 작품 자체에 집중한다. 이중섭이 남긴 500여점 가운데 485점을 골라내 저자의 분류법으로 제목을 붙이고, 화가의 예술적 동선과 거주지 이동의 궤적을 맞물려 가면서 이중섭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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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유학 시절 20대의 이중섭은 1940년 크리스마스에 훗날 아내가 될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구애의 ‘엽서화’를 보냈다. 1943년 도쿄를 떠날 때까지 보낸 14×9㎝ 크기 관제엽서에는 인간과 자연이 뒤엉키며 시공간을 뛰어넘는 초현실 세계가 담겼다. ‘소가 오리에게’ 입 맞추려는 듯 다가가고, 벌써 아이들이 뛰논다. 야마모토가 보관한 엽서화들은 1979년 4월 서울 미도파화랑 ‘이중섭 작품전 비공개 200점’에서 88점 공개됐다.

이중섭, 그 예술의 전모 l 최열 지음, 혜화1117, 6만원
이중섭, 그 예술의 전모 l 최열 지음, 혜화1117, 6만원

한국전쟁 피난길의 종착지였던 제주와 이후 부산 시절은 1년 만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견뎌야 했던 외로운 시간이었다. 그만큼 예술적 성취가 이뤄진 때이기도 하다. 서귀포 바다와 문섬·섶섬이 한눈에 보이는 주택의 곁방. 이중섭은 방과 담벼락 사이 한쪽 팔을 벌릴 만한 크기의 공간에 작업실을 차렸다. 저자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바다를 보며 노래한 꿈속의 풍경” 같은 ‘실향의 바다 송’을 제주 시절 최고 걸작으로 꼽는다. 인물들이 뒤엉켜 연결돼 있는 이중섭 특유의 군상을 예고하는 작품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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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풍경 1 실향의 바다 송’. 이중섭이 제주 난민 시절 그렸다. 서귀포 앞바다가 펼쳐지는 귤밭을 낙원으로 묘사했다. 혜화1117 제공
‘서귀포 풍경 1 실향의 바다 송’. 이중섭이 제주 난민 시절 그렸다. 서귀포 앞바다가 펼쳐지는 귤밭을 낙원으로 묘사했다. 혜화1117 제공

휴전 회담이 시작되자 부산으로 건너왔지만, 극심한 생활고에 1952년 6월 아내와 두 아이를 일본으로 보냈다. 일용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그린 ‘은지화’는 이중섭의 또 하나의 장르다. 담뱃갑 속에 들어 있는 은박지 종이를 화폭 삼아 골선을 파고 색을 넣는 기법으로 그렸다. 300여점이 전해오는데, 찢어진 종이에 그린 것들도 있다. 판잣집에 홀로 앉아 작은 은지를 붙잡고 한 가족이 한 공간에서 누리는 평화로운 세계의 모습을 그린 화가의 간절함과 외로움이 사무친다. 이중섭은 같은 소재와 구성을 되풀이해 보여주는 연작을 만드는 솜씨가 일품인데, 은지화들도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작품으로 구현했다. 물감 살 돈을 아끼려고 창조해 낸 것이 ‘색판선화’다. 화판을 하나의 색만으로 칠한 뒤 그 위에 선으로 형상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한두가지 색상만으로 선의 면적과 질감, 물감의 명도와 채도를 이용해 변화무쌍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한자와 한글을 대담하게 융합시킨 ‘문자도’도 많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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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은 1953년 7월 도항 허가증을 얻어 도쿄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일주일이라는 허망한 찰나를 뒤돌아 경남 통영으로 옮겨갔다. 자연의 생동감이 넘치는 통영은 해방구였다. 글자와 그림의 절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편지화’가 이곳에서 그려져 도쿄로 보내졌다. 저자는 관객의 반응, 시선의 확장에 주목한다. 작가들의 편지와 일기 등은 예술품이 아니라 전시 관련 자료로 여겨왔는데,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회에 이중섭의 편지봉투가 처음 공개되자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편지가 곧 그림이었다.

‘화가의 초상 5 방 2’. 이중섭의 그림 편지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했다. 혜화1117 제공
‘화가의 초상 5 방 2’. 이중섭의 그림 편지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했다. 혜화1117 제공
‘통영 벚꽃과 새’. 이중섭의 화조화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품으로 꼽힌다. 혜화1117 제공
‘통영 벚꽃과 새’. 이중섭의 화조화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품으로 꼽힌다. 혜화1117 제공
‘진주 붉은 소’. 이중섭은 일본 도쿄 시절 소의 전신상을 그렸지만, 경남 통영 시절에는 소의 머리를 화폭에 가득 채웠다. 혜화1117 제공
‘진주 붉은 소’. 이중섭은 일본 도쿄 시절 소의 전신상을 그렸지만, 경남 통영 시절에는 소의 머리를 화폭에 가득 채웠다. 혜화1117 제공

서울에 올라간 것은 ‘성공’이 필요해서다.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려면 돈은 물론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개인전은 화려한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그러나 전시 목록만 전해올 뿐 도록이나 당시 찍었다는 60매의 필름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수금에 실패해 돈을 벌지 못하고 대구로 떠났다.

‘불꽃’이란 소제목이 붙은 대구 시절엔 ‘몽환화풍’이 탄생했다. 기존 작품과 달리 “안개를 덮은 듯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구름 속을 방황하는 것 같은 아득한 기분, 모호하고 애매해 꿈결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다. 저자가 “미술사에서 지울 수 없는 걸작”이라고 평가한 ‘왜관성당 부근’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왜관성당 부근’. 이중섭의 ‘몽환화풍’을 엿볼 수 있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구름 속을 방황하는 것 같은” 이 작품을 미술사학자 최열은 “미술사에서 지울 수 없는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혜화 1117 제공
‘왜관성당 부근’. 이중섭의 ‘몽환화풍’을 엿볼 수 있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구름 속을 방황하는 것 같은” 이 작품을 미술사학자 최열은 “미술사에서 지울 수 없는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혜화 1117 제공
‘갇힌 새’. 어디선가 찢은 종이에 그린 이중섭의 병상화. 병원을 전전하다 숨진 해인 1956년에 그렸다. 혜화1117 제공
‘갇힌 새’. 어디선가 찢은 종이에 그린 이중섭의 병상화. 병원을 전전하다 숨진 해인 1956년에 그렸다. 혜화1117 제공

대구 개인전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역시 돈이 되진 않았다. 이중섭은 병약해졌고, 그림에 변화가 나타났다. 통영의 까마귀는 헤어진 가족을 이어줄 오작교였는데, 이 시절 까마귀는 피투성이 싸움을 한다. 통영의 ‘싸우는 소’조차 흘리지 않은 피가 소 그림에 처음 나왔다. 책에는 삶의 고독 속에서 탄생한 ‘병상화’도 하나의 장르로 소개된다. 병원서 미술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중섭은 숨지고 1년 뒤에야 뼛가루로 아내와 재회했다. 저자는 “이중섭의 영혼의 순례는 이때 끝났지만, ‘백년 신화’는 이제야 서막이 올랐다”고 말한다. 이중섭의 삶과 예술의 본연을 함께 다시 들여다보자는 요청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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