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알코올’ 시대…위기의 주류업계, 사업다각화로 활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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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역 지하의 긴 연결통로를 걷다보면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JIN)의 ‘아이긴’(IGIN) 주류 광고를 한참 동안 마주하게 된다. 긴 통로 전체를 도배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다. 김포공항은 일본·대만 등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입국하는 관문이자, 부산이나 제주로 향하는 국내선 환승객이 밀집하는 길목이니 마케팅 장소로는 최적일 것이다.
진은 제품 모델만 한 것이 아니고 직접 아이긴 제조사에 투자하고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 요즘은 이렇게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름과 독자 브랜드를 걸고 술을 직접 출시하는 것이 주류시장의 새 트렌드가 됐다.
셀럽마케팅 효과 있을까
연예계 대표 주당 성시경의 ‘경탁주’와 ‘경소주’는 출시 때마다 품귀 현상을 빚었다. 신동엽, 이장우, 씨스타 소유, 기안84, 노홍철 등 수많은 셀럽이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거나 편의점·제조사와 손잡고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유튜브와 방송마다 연예인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음주 토크’가 넘쳐나니 마케팅 파급력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이 화려한 셀럽마케팅이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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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류시장의 기초체력은 이미 급격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우리나라 주류 출고량은 약 298만8천㎘로 집계됐다. 연간 출고량이 300만㎘ 밑으로 떨어진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무려 27년 만의 일이다.
자연히 주류사들의 손익계산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업계 1위 하이트진로의 2026년 상반기 매출액은 약 1조2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 줄었다. 2025년 연간 매출액 감소폭과 같을 정도로 계속 내리막을 타는 모양새다. 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부의 경우 2026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2% 소폭 올랐다. 하지만 직전 해에 기록했던 7% 역성장의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진정한 실적 반등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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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이럴 정도니 자도주 의무구매제도 폐지 이후 꾸준히 점유율을 잠식당해온 향토 소주사들은 오죽할까? 부산을 대표하는 ‘C1’ 소주 제조사인 대선주조는 2025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5% 급감했고, 경남의 ‘무학’과 대구·경북의 ‘금복주’도 각각 5%, 9%씩 줄어들었다. 충청의 선양소주와 호남의 보해양조는 다행히 2024년보다 매출액이 9%, 3%씩 증가했다. 하지만 두 회사의 연간 매출 증가분을 합쳐도 고작 67억원에 불과해 산업 전반의 축소 흐름을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주류시장 축소는 비단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외국 대형 주류사들의 최신 공시를 뜯어보면 전세계적인 ‘탈(脫)알코올’ 기류가 숫자로 증명된다. 버드와이저·스텔라·카스 등을 보유한 세계 1위 맥주 기업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 InBev)의 2026년 반기보고서를 보면, 전세계 맥주 출하량은 전년 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맥주 수요가 줄었지만 다행히 무알코올 맥주가 고성장한 덕에 간신히 출하량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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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워커로 유명한 위스키 제조사 디아지오는 2026 회계연도 연간 잠정 실적에서 순매출이 3%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토리홀딩스의 주류 부문은 상반기 매출이 0.2%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5%나 급감했다. 미국·유럽·아시아 등을 가리지 않고 주류회사들의 판매실적은 정체 내지 하락세를 보인다.
술을 덜 마시는 현상을 단순히 인구 감소나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최근에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의 조류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요즘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떠올려보자. 일상에서 생산적 루틴을 만드는 ‘갓생’(God+生), 고통 대신 즐겁게 관리하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신체와 정신을 두루 챙기는 ‘웰니스’(Wellness), 그리고 맨정신의 맑음을 지향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등이다. 기성세대에겐 낯선 신조어일 수 있지만, 젊은 세대에게 건강관리는 인내와 절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즐거움이자 자기 돌봄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만 해도 소셜미디어(SNS)는 위스키 오픈런과 골프장 인증사진 같은 ‘보여주기식 럭셔리 소비’로 가득 찼다. 골프장에서 예쁜 옷을 입고 사진 찍기 바빠 경기 진행이 어렵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거품이 걷히자 2030세대는 비싼 그린피와 카트비를 버리고 러닝화 하나로 뛰는 ‘러닝 크루’로, 독한 양주 대신 ‘무알코올 음료’로 급속히 이동했다. 한번 삶에 자리 잡은 건강한 루틴과 맨정신의 효용은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서 과거의 폭음 문화로 쉽게 되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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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업계는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셀럽마케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재범 소주’로 유명한 원소주스피릿이 출시 3년 만에 매출액이 반 토막 나며 흥행이 빨리 끝난 점을 고려하면 성공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아예 사업 방향을 틀거나 다각화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서영이앤티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서영이앤티는 원래 맥주 냉각기 등 주류 부자재를 제조·납품하던 회사로, 일감 몰아주기 부당 지원으로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영이앤티는 자회사인 진백글로벌을 통해 2024년 말에 ‘비앤비코리아’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발 빠른 변신
비앤비코리아는 달바글로벌의 주력 제품인 ‘달바 미스트'를 생산하는 회장품 제조사로 연간 141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기업이다. 전통 맥주 부자재 제조사가 본업 매출을 훌쩍 넘는 화장품사를 인수하며 뷰티 기업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승계용 기업가치 제고 목적의 기업인수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정체된 주류 생태계를 넘어 폭발하는 뷰티·웰니스 시장으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은 기성세대 입장에서도 매우 신선함을 느낀다. 옛날처럼 밤새 ‘부어라 마셔라’ 잔을 비워야만 인간관계가 좋아지거나 사회적 성공을 보장받는 ‘야만의 시대’는 지났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는 허세형 소비를 털어내고, 내 몸의 컨디션과 일상의 활력을 스스로 챙기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건강한 삶에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박동흠 공인회계사·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박동흠은 많은 사람에게 기업 숫자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을 주로 한다. 뉴스나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숫자를 찾아 분석하면 숨은 뜻을 헤아리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생긴다. 그 힘을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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