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목·소매 끝 털장식으로…단정한 옷의 지루함 털어낸다
퍼와 ‘찰떡’ 카디건, 재킷 같은 존재감
탈착식 칼라·머플러 활용도 방법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이니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 같은 패션 용어가 매체에서 지겹게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트렌드이기는 하다. 단정하고 절제된 옷차림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좋은 소재, 깔끔한 실루엣, 차분한 색상의 조합은 쉽게 실패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좋은 것도 계속 반복되면 조금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옷장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도 그래서다. 익숙한 공식을 지키면서도 무언가 새롭게 입을 방법은 없을까. 작년에 입던 패딩을 꺼내자니 아직 이른 듯하고, 두꺼운 겨울 코트를 걸치자니 조금 부담스럽다.
최근 회자되는 ‘현백코어’도 흥미롭다. 현대백화점의 줄임말인 ‘현백’에 특정 스타일을 뜻하는 ‘코어’를 붙인 신조어다. 이미 집에 모든 것이 있어 백화점에서 무엇을 보아도 시큰둥한 부잣집 딸의 이미지라니, 제법 구체적이다. 여기서 옷차림의 힌트를 얻는다면 전체에서 풍기는 여유일 것이다. 좋은 물건에 익숙해서 굳이 힘주어 꾸밀 필요가 없어 보이는 모습. 편안한 카디건의 목둘레나 소맷단에 털 장식만 더해도 옷의 인상은 제법 달라진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퍼 트리밍’이다. 트리밍은 옷의 가장자리 등에 장식을 더해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카디건의 칼라와 소맷단, 점퍼의 앞여밈이나 코트의 밑단에 털을 두르는 식이다. 털이 차지하는 면적은 크지 않아도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얼굴 가까이 부드러운 질감이 놓이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소매 끝의 털이 드러난다. 장신구를 많이 더하지 않아도 옷 자체에 볼거리가 생긴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54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는 퍼를 장식한 캐시미어 카디건이 소개되어 있다. 밍크 칼라를 단 카디건뿐 아니라 따로 두를 수 있는 밍크 칼라도 등장한다. 편안한 니트에 귀한 소재를 조금 더하고, 목둘레를 바꾸어 입는 방식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오늘날 퍼 트리밍 카디건에서 어딘가 고전적인 우아함이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76년 이브 생 로랑의 ‘오페라-발레 뤼스(Opera-Ballets russes)’ 컬렉션에서는 퍼가 벨벳과 실크, 금빛 소재와 어우러져 한층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흘러 ‘프라다’는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울 재킷과 가죽 코트의 소맷단에 풍성한 퍼를 더했다. 옷 전체를 털로 덮지 않고도 손목의 볼륨과 질감만으로 시선을 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 시절의 ‘구찌’는 퍼 트리밍으로 고전적인 호사스러움을 더했다. 2016년 프리폴 컬렉션에는 꽃무늬 자카드에 퍼 칼라와 밍크 커프스, 보석 장식 여밈을 결합한 코트가 등장했다.
그 시절의 화려함이 그대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옷들을 돌아보면 퍼 트리밍이 시대에 따라 단정한 니트의 장식이 되기도 하고, 화려한 코트의 일부가 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생활에 맞게 그 양과 조합을 조절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 특히 눈여겨보고 싶은 것은 퍼 칼라와 커프스가 달린 카디건이다. 비교적 단정하게 떨어지는 몸판에 목둘레와 손목만 풍성해져 장식의 효과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니트 특유의 유연함은 그대로인데 가벼운 외출용 재킷처럼 존재감을 갖는다. 실내에서도 계속 입을 수 있고, 날씨에 따라 겉옷으로 걸치거나 코트 안에 입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입어야 할까. 카디건에 타이트한 스커트를 매치하면 우아한 외출복이 된다. 같은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고 로퍼를 신으면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진다. 흰 티셔츠 위에 단추를 열어 걸치거나, 얇은 이너 위에 단추를 잠가 니트 톱처럼 입어도 좋다. 여유 있는 슬랙스와 매치하면 단정한 일상복이 된다. 퍼가 달렸다고 해서 특별한 날만 기다릴 필요는 없다. 평소 입는 옷과 자연스럽게 섞을수록 손이 자주 가는 옷이 된다.
좀 더 활동적인 옷차림을 좋아한다면 점퍼에 퍼를 더한 형태도 좋다. 넉넉한 품과 큼직한 포켓을 갖춘 점퍼에 부드러운 퍼 칼라가 더해지면 실용적인 형태와 고급스러운 질감이 어우러진다.
새 옷을 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기존 카디건에 탈착식 퍼 칼라를 더하거나 짧은 퍼 머플러를 목둘레에 둘러보자. 별도로 착용하는 퍼 커프스를 소매 끝에 더할 수도 있다. 칼라와 커프스를 모두 갖추지 않아도 한 부분만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았거나 오래 보관한 털 장식 옷이 있다면 다시 꺼내볼 만하다. 일부 해외 매체에서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만한 옷과 장신구를 ‘모던 에어룸’이라 부른다. 꼭 새로운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이미 가진 옷을 지금의 옷차림에 맞게 입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다. 일상복에 허락하는 약간의 호사와 따뜻함. 그 정도면 쌀쌀한 날의 옷차림이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박민지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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