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채권 발행 주관하려면 한국 면허 따라”…재경부 방침에 논란 확대

재정경제부가 한국 기업이 외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국내 지점이 없는 외국계 금융사의 참여를 막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경부는 규제 공백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입장이지만 관련 업무를 오래 해온 해외 투자은행 등은 재경부가 근거 없이 외국계 증권사를 차별한다며 반발 중이다. 글로벌 사업 확장과 함께 한국의 외화 채권 발행이 늘어나는 가운데 해외에서 외국인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을 때까지 ‘한국 내 사무소’를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경부는 과거에도 비슷한 규제를 추진했지만 자본시장법과 상충된다는 해석이 나오며 무산됐다.
외화 표시 채권이란 한국 정부나 기업이 글로벌 사업에 필요한 외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달러·유로·엔화 등으로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뜻한다. 흔히 ‘코리안 페이퍼(Korean Paper)’로 불린다. 해외에서 투자자를 모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 네트워크를 갖춘 글로벌 금융사가 공동으로 발행을 주관한다. 한국 내 지점 없이 홍콩·런던·뉴욕 등 글로벌 금융 거점 도시에서만 활동하는 금융사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해당 업무에 공동 주관사로 참여해왔다.
◇해외 금융사, 재경부 규제 강화 방침에 반발
이런 가운데 최근 재경부가 한국 증권사 면허가 없는 금융사의 참여를 막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자본시장 업계에 따르면 재경부는 외화 채권 발행 시 국내 면허가 없는 외국계 금융사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한 규제를 추진 중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국내 영업을 위해서는 한국 규정 안에서 인가를 받고 활동하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미인가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외화 채권 발행에 참여해온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재경부의 방침이 글로벌 기준과 맞지 않고 관련 법과도 상충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외화 표시 채권은 나라 밖에서 해외 자산운용사 등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자본시장법 7조는 이 업무를 해외 금융사가 주관하는 경우 한국 증권사 면허 취득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채권 매수자가 대부분 외국인인 데다 거래 또한 역외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외국계 증권사 A씨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해외 외화 채권 발행 업무는 국내 면허를 취득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재경부는 ‘미인가 투자은행’이라는 명칭을 쓰면서 불법 영업 행위를 했다는 듯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관계자 B씨는 “외화 채권 발행 기업 입장에선 다양한 통화로 채권 발행을 수행해줄 주관사가 많을수록 이득”이라며 “외환 시장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며 최근 해외 금융사에 한국 시장 참여를 독려하더니 채권 시장엔 갑자기 ‘울타리’를 세우겠다는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재경부는 이같은 면제 조항이 한국에 지점을 설치하고 법인세를 내는 증권사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 내 면허를 받고 외화 채권 발행을 하는 외국계 금융사들도 대부분은 홍콩·런던·뉴욕 등의 지점에 실무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외화 채권을 실제로 파는 주체는 어차피 해외 법인인 셈이다. 수수료 또한 한국 지점·법인이 아닌, 발행이 이뤄진 해외 법인이 가져가고 세금도 해당국에 낸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한국에 지점·법인을 둔 글로벌 금융사 21곳 중 13곳은 지난해 외화 채권 발행 업무가 포함된 ‘인수 및 주선 수수료’ 매출이 ‘0원’이었다.
◇늘어나는 외화 채권, 커지는 혼란
논란이 확산할 조짐이 보이자 재경부는 지난 2~3일 ‘긴급 설문’을 통해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취합한 설문에선 100%가 재경부의 방침이 맞다는 의견을 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본지가 입수한 설문지에 따르면 질문에 대상 금융사를 아예 ‘미인가 회사’라고 적시해 재경부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냈고, 답변자는 소속사와 실명을 적도록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관계자 C씨는 “질문에 이미 재경부가 판단하는 ‘정답’을 담아 실명 적시 설문을 하는데 반대 의견을 낼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설문 대상이 국내 증권사로 한정되고 당사자인 해외 금융사나 기업이 빠진 것도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외화 채권 발행 주관사를 둔 혼란이 빚어지면서 일부 기업은 발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자본시장 업계에 따르면 롯데렌탈이 지난달 외화 채권 발행을 추진했다가 역외 금융사를 주관사에서 제외하라는 지침에 발행을 연기했다. 그 사이에 글로벌 채권 금리가 많이 올라 조건이 불리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한 시중은행도 조만간 발행하려는 외화 채권 주관사를 확정하지 못하고 재경부의 추가 방침을 기다리고 있다.
재경부는 2019년(당시 기획재정부)에도 비슷한 방안을 추진했는데 자본시장법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며 무산됐다. 관련법을 관할하는 금융위원회는 당시 현행 자본시장법상 해외 금융사의 외화 채권 발행 참여가 문제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외화 채권 발행 규모는 2019년 343억달러, 2022년 483억달러, 지난해 579억달러로 늘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