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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22, 2026

호랑이 ‘박람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카메라 담지 못한 ‘동물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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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민철 감독은 끝내 영화에 넣지 못한 청주동물원 물범 가족을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로 꼽았다. ‘범돌이’ ‘범순이’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물범 ‘초롱이’(사진)는 현재 광주 우치동물원에 살고 있다. 문예출판사 제공
왕민철 감독은 끝내 영화에 넣지 못한 청주동물원 물범 가족을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로 꼽았다. ‘범돌이’ ‘범순이’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물범 ‘초롱이’(사진)는 현재 광주 우치동물원에 살고 있다. 문예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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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히 연결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정적일 수도 있는, 세 영화의 바탕이 되었을 이야기들을 찾고 싶었다.” (책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지난 10년간 동물원과 동물·인간관계를 세 편의 다큐멘터리에 담아온 왕민철 감독이 그간의 경험과 생각을 에세이로 묶어 냈다. 꾹꾹 눌러쓴 그의 손글씨 제목 아래, 어린 물범 한 마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그가 지금껏 유독 마음을 쓰는 물범 ‘초롱이’다. 세 편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풍경, 그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한 밑절미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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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왕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땐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고, 책을 쓰며 재발견한 것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동물, 원’(2019년)을 시작으로 ‘생츄어리’(2022년),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2025년) 등 세 편의 장편 다큐에 청주동물원과 야생동물구조센터, 사육곰 생추어리(보호시설) 이야기를 담아왔다. 2015년 10월 첫 촬영부터 지난해 9월 세 번째 작품 상영까지, 꼬박 10년을 동물에 매달린 셈이다. 수많은 기록을 되짚으며 그는 “존재를 알지 못해, 미처 묻지도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청주동물원의 호랑이 ‘박람이’가 그렇다. ‘동물, 원’에서 노령의 박람이는 뒷다리를 쓸 수 없게 되자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디스크 수술을 받지만, 이동부터 수술까지 7시간에 걸친 마취를 버티지 못하고 2018년 숨진다. 그런데 자료를 뒤지던 왕 감독은 또 다른 박람이를 발견했다. 1999년 청주국제항공박람회를 기념해 동물원은 그해 태어난 새끼 호랑이 두 마리에게 항공·박람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 박람이는 얼마 못 가 죽었다. 그 이름은 같은 해 서울대공원에서 데려온 ‘서울’이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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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민철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왕민철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왕민철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왕민철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동물원에서 다루는 공식적인 서류에는 개체의 이름이 적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 종의 이름과 숫자가 적힐 뿐이다. 물범 두 마리가 죽고 두 마리가 새로 들어와 이름을 물려받는 것은 동물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물원의 동물은 항상 대체되고 있었다.”(책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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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얼핏, 촬영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 박람이(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난 호랑이)가 이 박람이(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요.” 그는 씁쓸히 웃었다. 이후 그는 “그들의 기록과 역사, 이름에 집착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한 동물들도 있다. 끝내 영화에 넣지 못한 청주동물원 물범 가족이다. ‘범돌이’ ‘범순이’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초롱이’ ‘반짝이’는 2015년 첫 촬영 때부터 그가 자주 만난 동물이다. 그런데 더 나은 사육환경으로 옮기던 중 초롱이를 뺀 셋이 모두 죽었다. 물범 이야기를 두 번째 작품 ‘생츄어리’에 담고 싶어 백령도 야생 물범 서식지에서 나흘 밤을 묵으며 추가 촬영까지 했지만, 작품의 통일성 탓에 끝내 넣지 못했다.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 때마다 틈만 나면 이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는 지금 광주 우치동물원에 사는 초롱이를 책 표지에 담았다.

카메라 뒤가 아닌 책상 앞은 무엇이 달랐을까. “카메라 뒤에는 숨을 공간이 있었지만, 글은 숨을 데가 없더라고요.” 7개월 동안 글만 썼다. 작품에서 차분한 관찰자의 시선을 지켰던 그의 언어는 책에서 더 깊은 곳을 향한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땐 관찰자로 머무는 것을 윤리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김정호·최태규 수의사, 화천 곰보금자리 활동가 등 출연자들과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책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문예출판사 제공
책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문예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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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 호랑이 ‘박람이’는 뒷다리를 쓸 수 없게 되자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디스크 수술을 받지만, 이동부터 수술까지 7시간에 걸친 마취를 버티지 못하고 2018년 숨진다. 문예출판사 제공
청주동물원 호랑이 ‘박람이’는 뒷다리를 쓸 수 없게 되자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디스크 수술을 받지만, 이동부터 수술까지 7시간에 걸친 마취를 버티지 못하고 2018년 숨진다. 문예출판사 제공

특히 세 번째 작품은 그에게 ‘돌봄 노동’의 의미와 고단함을 고민하게 했다. 강원 화천 곰보금자리에서 사육곰을 돌보는 여성 활동가 네 명을 찍으며 그는 “매일 아침 똥을 치우고, 사료를 섞는 반복적인 육체노동만이 이 불확실한 관계 속에서 유일하게 만져지는 세계”(책 286쪽)라고 느꼈다. “사실 돌봄은 서로에게 기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무언가처럼 돼 버렸죠.” 동물권·동물복지 논의에서 노동의 고단함은 누군가 당연히 감당할 몫으로 여겨지고 쉽게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지금 작업 중인 단편으로 이어진다. 그가 2년간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서울동물영화제’는 주최 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의 내분 속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별다른 공지도 없이” 올해부터 중단됐다. 영화제 팀 활동가들은 주로 노조원이었는데, 다른 부서로 배치된 뒤 결국 퇴사했다. 카라 노조원들은 지난해부터 사쪽이 폐쇄한 도심 입양센터에서 점거 농성 중이다. 왕 감독은 지난 1년의 농성과 인터뷰를 엮은 단편으로 “스리슬쩍 없어진 동물영화제”를 대신할 상영회를 열 계획이다.

왕민철 감독의 세 번째 작품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2025년)은 강원 화천 곰보금자리에서 사육곰을 돌보는 여성 활동가 네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예출판사 제공
왕민철 감독의 세 번째 작품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2025년)은 강원 화천 곰보금자리에서 사육곰을 돌보는 여성 활동가 네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예출판사 제공

사람과 동물이 마주 선 10년, 변화도 적지 않았다. 왕 감독은 동물원·수족관 허가제, 사육곰 산업 종식과 개식용 종식 법제화 같은 제도적 변화를 성과로 꼽으면서도, 자연을 여전히 ‘자원’으로 보는 우리 시선은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다만 늑대 ‘늑구’, 상어 ‘부캉이’처럼 동물을 종이 아닌 한 개체로 인식하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봤다. “구체적인 개체로 기억하게 되면,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 여럿이 물려 쓰던 이름,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이름. 그 이름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여기에 적고 싶다”(책 301쪽)는 그의 바람은 어쩌면 이미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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