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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23, 2026

다리는 문어발로 변하고, 코·귀에선 버섯이 솟고…제주 할망들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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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카데미 극장이었던 제주 원도심 제주아트플랫폼 3층에 펼쳐진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군중 초상화 설치 작품 ‘퍼포먼스 Ⅵ’(2026)의 전시장. 관객석 전시장 정면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희선 할머니의 ‘할망이 뭉게추룩’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과거 아카데미 극장이었던 제주 원도심 제주아트플랫폼 3층에 펼쳐진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군중 초상화 설치 작품 ‘퍼포먼스 Ⅵ’(2026)의 전시장. 관객석 전시장 정면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희선 할머니의 ‘할망이 뭉게추룩’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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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에서 평생 살아온 ‘할망’(할머니의 사투리)들은 변신의 귀재다. 언제든 스르르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는 상상력을 품고 있다.

이를 실증하는 그네들의 자화상 그림들이 최근 제주시 원도심 옛 극장 객석에 홀연히 나타났다. 평생 문어처럼 물속을 떠다니며 조개, 전복, 해초를 캐고 살았던 할망은 그림 속 자신의 두 다리를 흡판이 붙은 문어 발로 변모시켰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다른 할망은 보청기를 떼어보니 귀가 쑥쑥 커져 머리 위로 확 솟아오른 모습을 그렸다. 옆으로 누워 잠을 청했더니 버섯 여러개가 코와 귀에서 튀어나와 자라면서 숲처럼 얼굴을 덮은 꿈의 기억을 담은 작품도 있다. 천이나 종이에 꾸린 캔버스도 아니고, 널빤지에 경첩을 달아 얼기설기 그린 것들이다. 하지만 진솔한 시각적 표현력의 감도와 소재의 자유로움이 예사롭지 않다. 평생 한라산 기슭 화산토에서 농사짓고 해안의 맑은 바다에서 물질하며 해산물을 캔 그네들의 몸과 마음이 쌓은 표현의 미덕일 것이다.

할망들의 자화상은 제주아트플랫폼 3층 공간에서 볼 수 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격년제 국제미술제로 지난달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5회 제주비엔날레(11월15일까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과거 아카데미 극장을 리모델링한 이 공간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모국의 자연 공동체 회복에 진력해온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는 할망들 자화상을 포함한 군중 초상화 설치 작품 ‘퍼포먼스 Ⅵ’(2026)을 펼쳐놓았다. 지난달 제주 할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워크숍을 진행해 모은 그림들을 제주섬 주요 미술관의 초상화 소장품과 지역 작가들의 초상화 사이에 섞어 객석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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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카데미 극장이었던 제주 원도심 제주아트플랫폼 3층에 펼쳐진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군중 초상화 설치 작품 ‘퍼포먼스 Ⅵ’(2026)의 전시장. 관객석 전시장 정면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희선 할머니의 ‘할망이 뭉게추룩’이 보인다. 객석 뒤쪽 오른편에는 허계생 할머니의 자화상 ‘여섯개 눈이 달린 할망’이 서있다. 노형석 기자
과거 아카데미 극장이었던 제주 원도심 제주아트플랫폼 3층에 펼쳐진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군중 초상화 설치 작품 ‘퍼포먼스 Ⅵ’(2026)의 전시장. 관객석 전시장 정면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희선 할머니의 ‘할망이 뭉게추룩’이 보인다. 객석 뒤쪽 오른편에는 허계생 할머니의 자화상 ‘여섯개 눈이 달린 할망’이 서있다. 노형석 기자

영화 스크린이 걸려 있던 무대 앞에서 보면 정면 왼쪽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희선 할머니의 문어다리 자화상이 나타나고, 그 뒤쪽 오른편에는 횃불 든 타잔이 된 자신을 상상하면서 그렸다는 허계생 할머니의 여섯개 눈 달린 자화상, 그 안쪽으로 다른 할망들의 기기묘묘한 자화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관객은 무대 쪽에서 감상하지만, 반대로 초상화들이 무대에 선 관객들을 바라보는 양자 교감의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20개 나라 69작가(팀)의 작품들이 나온 이번 비엔날레는 섞고 모으고 흥을 돋운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제주섬 민요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을 주제로 내걸었다. 제주의 토착 문화가 외부 문명과 만나 섞이고 합쳐지고 새 형태로 변화해온 변용의 의미를 유배, 돌문화, 신화라는 세개의 딸림 소주제 아래 현대미술의 언어로 풀어보려 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 곳곳의 지정학적 갈등이나 기후변화 등 보편 담론을 다루는 여느 비엔날레와 다르게 제주도의 신화와 무속, 생활 풍습에 얽힌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즐비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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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 로비홀에 놓인 연미 작가의 설치 작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햇살이 비추면 햇살을 받고’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제주도립미술관 로비홀에 놓인 연미 작가의 설치 작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햇살이 비추면 햇살을 받고’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주된 전시장인 제주도립미술관 로비홀에 놓인 연미 작가의 설치 작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햇살이 비추면 햇살을 받고’는 주머니로 표상되는 제주 생활문화사의 특징을 담으면서 이번 비엔날레의 맥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주의 나이 많은 어르신을 뜻하는 삼춘 할망들이 평소 쓰는 밥상 위와 둘레에 소원을 적은 주머니와 베개를 올렸다. 주머니와 베개 안에는 섬사람들이 과거 주식으로 먹었던 콩을 채워넣어 뭍사람들과는 판이한 제주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암시한다.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에 제주로 찾아왔다가 보름날 떠나는 영등할망이 주머니에 곡식과 봄 꽃씨, 바다 생물의 씨앗을 가득 담아와 섬 전역에 뿌려준다고 믿었던 섬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은 주머니의 씨앗을 무당이 꺼내어 뿌리는 행위로 구체화한다.

실제로 지난 17일 오후 제주도립미술관 시민갤러리의 이진경 작가의 설치 작품 ‘나는 그 초록인가’ 앞에서는 ‘제주큰굿’ 무형유산 보유자 서순실 심방이 초감제 굿판을 펼치기도 했다. 민란과 유배 등 제주의 곡절 어린 역사와 독특한 생태, 산물 등을 담은 글과 그림이 붙은 공간에서 제주의 숱한 신들을 불러 초대하는, 장엄하면서도 신명 나는 의식이었다. 제주도와 일본 홋카이도의 땅과 콘크리트 바닥을 일일이 새기며 그 무형의 기운을 떠낸 일본 작가 오카베 마사오의 작업이나 제주 원도심에서 제주 역사를 지켜본 노거수 녹나무를 어루만지며 색실과 철사로 만든 조형물로 껴안고 떠받치는 형상을 연출한 김영화 작가의 설치물, 제주 굿에 쓰이는 신체 형상의 종이무구 기메들을 현지 아이들이 만든 꽃과 어울리게 꾸려놓고 신화적 공간을 빚어낸 작가 그룹 인스피어의 작업 등도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의 수원이자 언어로서 재해석될 소지가 풍부한 소재와 형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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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제주도립미술관 시민갤러리의 이진경 작가의 설치 작품 ‘나는 그 초록인가’ 앞에서 ‘제주큰굿’ 무형유산 보유자 서순실 심방이 초감제 굿판을 펼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지난 17일 오후 제주도립미술관 시민갤러리의 이진경 작가의 설치 작품 ‘나는 그 초록인가’ 앞에서 ‘제주큰굿’ 무형유산 보유자 서순실 심방이 초감제 굿판을 펼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이런 공감과 발굴의 노력에도 개최 전해 연말 예산이 확정되는 탓에 전시 준비 기간이 6~7개월에 불과한 고질적 관행 또한 전시장 곳곳에 여전히 그늘을 드리웠다. 특히 ‘유배’ 소주제로 꾸린 도립미술관 본전시는 상당 부분을 백남준, 이우환, 이강소, 이건용, 강요배 등 국내 대가들의 결다른 작품들로 산만하게 채워 맥락보다 구색만 맞추려 한 티가 역력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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