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왜 개혁의 총알받이가 되나 [뉴스룸에서]

광고

이본영 | 전국부장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혁명으로선 억울한 소리다. 하지만 누군가 혁명으로 일단 권력을 잡은 상황과 개혁을 비교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혁명은 기존 질서를 쓸어버리고 하니까 거칠 게 없다. 반면 개혁은 전통적 질서와 기득권이 온존하는 상태라 모순과 저항이 따른다.
현 정부가 매달려온 집값, 농지 투기, 검찰이라는 주제를 편의상 3대 개혁 분야라고 불러보자. 역풍을 맞지 않은 게 없다. 개혁이 미궁에 빠지거나 실패하는 이유는 설계 잘못, 개혁 주체의 무능, 반개혁 세력의 저항 등 여러 가지다. 정교한 실행 계획 없이 깃발을 내걸었다가 좌초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광고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수혜자로 상정된 이들이 개혁에 희생당하는 경우다. ‘개혁의 역설’이다. 위의 세가지도 얼핏 보아 이런 논란 속에서 헤매고 있다.
집값은 난마도 이런 난마가 없다. 대출을 죄니 현금이 없으면 집 사지 말란 거냐고 항의한다. 서울 강남 집값을 누르면 다른 곳이 뛰어 ‘진짜 서민’이 고통받는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세금을 특효약으로 내세우다 부작용과 반발을 만나면 염치 불고하고 꽁무니를 뺀다.
광고
광고
경자유전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농지 전수조사도 일각의 반발 속에 창끝이 무뎌졌다. 땅값은 떨어지고 소작농은 부치던 땅을 내놓게 생겼다는 하소연이 대표적이다. 7일치 어떤 신문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걱정을 끼치게 되어 송구”하다며 해명 광고를 실었다.
진도가 가장 많이 나간 검찰 개혁도 결정적 시기에 현직 경찰관 아들의 살인과 실종 사건 허위 종결로 홍역을 치렀다. 여성 등 약자는 누가 지켜주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요즘엔 중대범죄수사청 개문발차 논란, 초대 청장 ‘자격’을 둘러싼 여당의 내분까지 불거져 계속 어지럽다.
광고
자고로 순탄하게 진행된 진보적 의제나 개혁은 드물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 부담 증가라는 시비를 만난다. 소상공인이 어려워지면 고용이 줄고, 결국 저임 노동자들한테 피해가 돌아간다는 논리가 수학 공식처럼 제시된다. 정년 연장도 청년 취업 문을 좁힌다는 혐의를 뒤집어쓴다. ‘자유지상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 같은 사람이 진보·개혁 쪽 약점을 그냥 넘길 리 없다. 그는 최저임금제는 결과적으로 비숙련 노동자 실업률을 올린다고 주장했다. 또 주택 임대료 상한제는 공급 축소와 주택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론도 충분히 제기돼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개혁의 내재적 한계로 치부되는 것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기득권의 저항, 방해, 회피술의 결과라는 것이다. 농지 전수조사를 놓고 부재지주들이 직접 농사짓겠다며 소작인에게 땅을 반납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농민을 위한 정책이라지만 진짜 농민은 밥벌이마저 끊기게 생겼으니 조사 중단 요구도 나온다. 해방 후 농지개혁 때도 지주들이 땅을 내놓지 않으려고 소작인들을 내쫓은 사례가 빈번했다.
이런 싸움에선 자원이 많은 쪽이 대개 유리하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버티는 힘이 약한 쪽은 먼저 지쳐 장기적 기대까지 접는다. 재계가 반대하는 정년 연장의 딜레마도 비슷하다. 한번 정년을 늘려놓으면 두고두고 고령자 빈곤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취업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가정되는 청년층의 반발이 문제다. 작은 강만 건너면 될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문밖에 어슬렁거리는 맹수 같은 보수 언론은 또 어떤가. 집값이 뛰면 정부가 서민 다 죽인다고 소리친다. 집값이 가라앉으면 경제가 결딴나는데 정부는 뭐 하냐고 법석을 피운다.
이렇게 약자가 개혁의 총알받이가 될 때 기득권은 뒤에서 총알을 피한다. 최대 피해자는 개혁이라는 이름 그 자체다. 허상, 피로, 싫증, 위선의 대명사인 것처럼 이름이 더럽혀지면 다른 경우에도 무용론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광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는 성과를 장기적으로 기대해야 하거나 부작위의 대가를 수십년 뒤 치를 일을 민주 국가가 당장 다뤄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정교하게 설계하고 집행해 약자가 피해를 보는 역설을 차단해야 한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이나 비난 회피를 중심에 두지 말고 길게 보고 가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