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프리즘]경계선 ‘흐릿’ 유엔사는 ‘DMZ 무장화’ 묵인…언제든 충돌 위험
유엔군사령부(UNC)
195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호에 따라 미국 주도로 창설된 다국적 통합군 사령부. 1953년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과 정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다. 정전협정의 이행을 감독하고,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정전협정 위반 사건을 조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현재 남측 DMZ 출입 등을 관리한다.
“가끔 뭔가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요. 하얀 연기가 나면 그 주변에 북한 군인이 작업하는 것도 볼 수 있어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도로를 만들고 있거든요.”
지난 8일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내 도라전망대에선 가이드의 설명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80%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은 지난달 21일 MDL 이남 10여m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호주에서 온 애런 스미스(68)는 가이드에게 북한이 MDL에 도로는 왜 만드는지 물었다. “한국과 단절하기 위해 북한이 MDL을 도로와 철책으로 둘러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가이드가 설명을 이어갔다. “운이 좋으면 폭파음과 연기, 주변의 북한군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움직임이 없네요.”
파주 DMZ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서부전선 DMZ 지뢰 폭발 사고 이후 사고 원인을 가이드에게 묻는 이들이 간혹 있다고 한다. 가이드에 따라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까진 아니다”라며 관광객을 안심시키거나 “남북이 인식하는 MDL의 위치가 다른데 북한군이 이를 고려하지 않고 남쪽에 지뢰를 매설했다”고 사건의 전모를 전하는 등 설명도 달라진다.
흔히 휴전선으로 불리는 MDL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따라 육상에 설정됐다. 정전 이후 군사 대치를 관리하기 위한 선으로, 국가의 영토와 주권을 구분하는 국경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전협정 직후 유엔군사령부(유엔사)와 북한군·중국군이 MDL을 따라 서쪽부터 동쪽까지 1~1292호 표지판을 설치했다. 남북은 MDL을 기준으로 각각 2㎞씩 물러나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정해 완충지대로 DMZ를 만들었다.
파주 도라전망대와 오두산전망대,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선 북한 개성시 등 접경지가 한눈에 보였다. 망원경으로 본 접경지 곳곳에는 철책과 비포장도로가 눈에 띄었다. 이날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만난 이강열씨(65)는 “2005년 북한 금강산 인근 삼일포역 공사에 투입돼 접경지역을 수차례 오갔다”며 “20여년 전에는 이렇게 휴전선 근처에 나무나 철책이 많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북측을 바라보며 “남북 경계 북쪽으로 들어선 도로도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5일 DMZ 지뢰 폭발 사고가 북한군이 MDL 이남에 매설한 지뢰에 의해 발생했다고 최종적으로 결론 내렸다. 북한은 2023년 12월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이듬해 4월부터 MDL 인근에 도로와 철책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MDL을 국경선처럼 만들며 요새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 비치는 북한의 철책 설치 장면은 운에 따라 볼 수 있는 풍경일 수 있다. 하지만 MDL을 둘러싼 남북 간 긴장은 정전 이후 지난 73년간 사라진 적이 없다. 남북은 한때 MDL 인근에 철책이나 군사초소(GP)를 세우며 맞섰고, 때로는 충돌을 피하려 군사적 긴장 완화에 합의했다. 지난달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는 MDL의 현재가 남북의 자제에 기댄 위태로운 균형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남·북·유엔사 ‘MDL 기준’ 제각각 김성윤 합동참모본부 정보분석처장이 지난 5일 국방부에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군사분계선(MDL)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설치한 MDL 표지판이 70여년 사이 상당수 유실되며 유엔군사령부가 적용하는 MDL이 당초 설치된 선과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연합뉴스
1970년 즈음에도 MDL ‘요새화’ 긴장
북한은 1970년쯤에도 MDL 주변을 요새화하는 작업을 했다. 경향신문은 1972년 1월27일 “북한이 지난해 12월부터 군사분계선과 평행으로 높이 3m의 철조망과 30개소의 토치카(콘크리트 진지) 등 군사력을 불법적으로 강화하고 있음이 판문점에서 열린 327차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본회의에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외교부가 1972년 작성한 문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요새화 문제’를 보면 “북괴(북한)는 1969년부터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중앙분계선 가까이에 225개의 공고한 진지를 구축하는 등 비무장지대를 요새화해 남침 준비를 완료했다”고 쓰여 있다. 정부는 당시 북한이 MDL 인근에서 진행한 작업이 “사실상 전선을 2㎞ 남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고 봤다.
1970년대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의 보고서에도 북한의 MDL 인근 요새화 작업을 우려하는 대목이 여럿 확인된다. 유엔사는 1972년 6월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해 “비무장지대 안에 철책선과 요새를 계속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유엔사는 MDL 표지판 568호, 667호 인근에 북한이 설치한 철책 사진을 공개했다.
한국 측이 MDL 이남에서 군사초소를 설치한 정황도 외교문서에서 확인된다. 1972년 3월 당시 언더힐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한국 외무부(현 외교부) 차관을 만나 “유엔군도 비무장지대에 100여개의 군사초소를 갖고 있으며, 초소를 먼저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이쪽”이라고 했다. 외무부는 MDL 이남에 초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의 비무장지대 무장에 대응한 불가피한 자위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남북 간 이러한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다 1973년에는 충돌이 벌어졌다. 그해 3월7일 북한군이 MDL 654호 표지판을 유지·보수 작업을 하던 한국군에 총격을 가했다. 이 사고로 한국군 장병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이후 MDL 표지판 유지·보수 작업은 50년 넘게 중단됐다. 최초 1292개였던 MDL 표지판 중 현재 식별되는 것은 200여개뿐이다. 50년 넘게 이어진 유지·보수 중단도 표지판이 사라진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MDL 인근에서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지자 DMZ를 비무장화하자는 제안이 대두됐다. 외교부의 1973년 6월 문서 ‘중립국 감시위원단 스위스 대표의 비무장지대 비무장화 제의’를 보면 “비무장지대는 실제 비무장화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으며, 충돌이 일단 시작되면 통제하기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외교부는 DMZ 비무장화 제의를 “국익에 합치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MDL을 무장화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경향신문의 1976년 6월4일 보도를 보면, 유엔사는 당시 군정위 본회의에서 “북한이 군사분계선 북쪽 비무장지대에 대규모 지뢰 지대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즉각 철거해야 한다”며 “긴장 완화를 위해 설정된 비무장지대를 왜 무장화하려는 것인지”라고 지적했다.
DMZ “지뢰 안 돼”→“방어 목적은 괜찮다”
MDL을 요새처럼 만들려는 북한의 움직임은 1970년대 말에도 이어졌다. 유엔사는 1979년 6월 393차 군정위에서 “북한이 MDL 29·30호 표지판 인근에 약 1600m 길이의 장벽을 설치하며 요새 진지를 설치했고, 같은 지역 MDL에서 10m 이내에 지뢰 750개를 매설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1980년 3월에도 북한이 DMZ 전역에 광범위한 불법 장애물 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유엔사가 확인한 장애물은 140㎞가 넘는 방어시설, 전기 철책과 철조망, 대전차 장애물 등이다.
유엔사는 이 같은 행위가 정전협정 13항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전협정 13항(ㄱ)은 양측이 DMZ에서 병력과 군수물자·장비를 철수하고, 지뢰와 철조망 등 위험물을 군정위 감독 아래 제거하도록 규정한다. 유엔사는 198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도 북한의 정전협정 13항 위반사항을 보고했다.
유엔사의 판단은 10년 뒤에도 유지됐다. ‘주한 유엔사 연례보고서(1990)’를 보면 유엔사는 1990년 1월 453차 군정위 본회의에서 북한이 DMZ 북측 지역에 철조망, 대전차 장애물, 요새 진지 등을 구축한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정전협정 13항(ㄱ)의 중대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1990년 1~2월 “경계를 표시하는 철조망 외에 장애물이 없다”며 “오히려 남측이 MDL을 따라 약 250㎞의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엔사는 “한국의 콘크리트 장벽은 DMZ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방어용 대전차 장애물”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6월 유엔사는 DMZ 내 MDL 이북에 북한의 지뢰 매설을 문제 삼지 않는 판단을 내놨다. 유엔사는 당시 “철책은 방어와 분리를 목적으로 한다”며 “북측 지역에 방어 목적으로 지뢰를 매설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밝혔다. 한국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다. 유엔사는 “대부분 지역에서 북한군의 공사는 1953년 협정선(MDL) 기준 북쪽으로 최대 100m 이내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정전협정 위반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도 DMZ 내 MDL 이남에서 도로·철책·수목 정리 등 작업이 36건 이상 진행 중”이라고 했다.
유엔사가 지난 6월 북측의 지뢰 매설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한 판단을 두고 “북한의 DMZ 무장화를 사실상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유엔사는 당시 과거와 현재의 판단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엔사는 “한 문서의 일부 내용만으로 비무장지대 내 모든 요새화 또는 건설 활동에 적용되는 포괄적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과거 기록을 검토할 때는 정전협정 이후의 관련 합의 및 약정, 그리고 각 활동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실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1953년 전운 때에도 ‘공동조사’ 했는데…
유엔사가 DMZ의 비무장화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이미 무장화된 DMZ의 현실을 반영해 남북의 충돌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전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사가 2014년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에 배치한 무기 체계에 대응해” 한국군의 DMZ 내 개인 화기, 클레이모어 지뢰 등 일부 무기의 반입을 허용한 사실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유엔사는 충돌과 긴장 방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로 충돌만 하지 않는다면 방어 시설 구축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쪽으로 관점이 이동한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접경지역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남북이 MDL 인근에서 군사초소를 운영하며 서로의 경계 활동을 용인해온 구역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본다. 현재 DMZ 내 MDL 남과 북에는 각각 군사초소 60여개, 160여개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남북이 DMZ 내 초소를 두고 서로 감시하는 지역이 일정한 경계와 선을 지키기 때문에 다른 접경지보다 안전하다고 느껴진다”며 “이 같은 환경이 일부 지역에서 DMZ 관광을 가능하게 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MDL 인근에 지뢰를 매설하면서 한국군 장병 3명이 부상을 당했고, MDL 기준선을 둘러싼 남북 간 인식차가 큰 점을 감안하면 DMZ 무장화를 용인하는 것은 언제든 군사적 긴장을 키울 우려가 있다. 한국군과 유엔사 간에도 일부 구간에서 MDL 기준선 인식이 다르고 북한도 별도의 MDL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MDL 이북에서 요새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남북 간 MDL 기준선에 인식차가 있는 상황에서 MDL 인근에 북한이 지뢰를 심은 것이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며 “DMZ의 무장화를 유엔사가 묵인했던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 전운이 가시지 않았던 시기에도 공동조사와 대화는 이뤄졌다. 1953년 8월 유엔사가 북한군의 DMZ 내 요새 구축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은 중국과 함께 공동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유엔사의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고 양측은 사건 종결에 동의했다.
73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DMZ 지뢰 폭발 사고와 관련한 정부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상황 관리를 하며 유엔사를 통한 대화 시도를 지속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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