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메뉴 이름이 ‘피떡갈비’? 농담처럼 쓰고, 뜻도 모른 채 퍼뜨리고…일상에 번지는 극우 언어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쓰레드 갈무리
전남 광주의 한 술집이 메뉴명으로 ‘피떡갈비’를 사용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조롱하는 데 쓰이는 ‘피떡갈비’를 음식 이름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해당 표현은 희생자들의 ‘피’와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인 ‘떡갈비’를 합친 말로, 일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5·18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돼 왔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레드에는 광주 동구 동명동의 한 술집 메뉴판 사진과 함께 “최근 오픈한 술집인데 메뉴 이름을 ‘피 떡갈비’라 지었다”며 “이 와중에 대기가 아홉 팀이다. 환멸이 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메뉴는 떡갈비 세 조각에 붉은 케첩을 뿌린 음식으로, 가격은 1만2000원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음식점 사장은 이튿날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똑같은 음식이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았다”며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손님 두 명에게 문제 제기를 받은 뒤 챗GPT에 해당 표현이 5·18과 관련 있는지 물어봤다며 답변 화면도 공개했다. 챗GPT가 “말 자체가 그와 관련된 표현은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리꾼들이 각자 생성형 AI에 질문한 결과를 공유하면서 비판은 오히려 거세졌다. 사장은 결국 AI에 물어본 것은 당황해서 한 행동이었다며 재차 사과했다. 메뉴명에 담긴 의도를 둘러싼 논란과 별개로, 온라인에서 특정 역사적 피해자를 조롱하는 데 쓰이던 말이 일상적인 음식 이름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었다.
문제는 온라인에서 통용되는 극우적 표현이 특정 커뮤니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역이나 역사적 사건을 겨냥한 조롱이 인터넷 유행어와 농담으로 소비되고, 이를 접한 사람들이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반복해 사용하는 일이 벌어진다. 표현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그것이 사회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5·18을 둘러싼 조롱은 특정 단어를 넘어 구호와 밈으로도 번졌다. 지난 6월에는 고교 야구 경기에서 광주 지역 학교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구호가 나와 논란이 됐다. ‘탱크 데이’는 1980년 5월 광주에 군부의 탱크가 투입된 역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경기 응원이나 장난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5·18의 비극을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말과 구호가 학교와 스포츠 현장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극우적 표현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극우적 언어가 일반적인 사회 담론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신문은 과거에는 극우 집단 내부에서나 볼 법했던 표현과 관점이 이제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페이스북 그룹에서도 공개적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짚었다.
가디언이 영국 사우스포트 폭동 관련 피의자들의 온라인 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이들과 연결된 페이스북 그룹에서는 이민자를 위험하고 범죄적이거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묘사하는 게시물이 확인됐다. 이민자를 ‘불법 체류자’로 뭉뚱그리거나 이민 자체를 ‘침공’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민자를 직접 비하하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표현뿐 아니라, 특정 집단이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인상을 은근히 심는 표현도 사용됐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가 온라인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디언의 데이터 프로젝트 편집자 파멜라 던컨은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에서 관찰된 표현이 주류 정치인의 연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던컨은 “해당 언어가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 일종의 정당성을 얻고, 발언이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면서 극우적 언어의 정상화가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지난 3월 극우 진영에서 만들어진 ‘대체 이론(Le Grand Remplacement)’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인 언어로 확산하는 현상을 다뤘다. 이 표현은 유럽의 백인 인구가 이민을 통해 아프리카계와 무슬림 인구로 대체되고 있다는 음모론을 가리킨다. 2010년 프랑스 작가이자 극우 사상가인 르노 카뮈가 제시한 개념으로, 이민을 둘러싼 인구 변화가 누군가의 조직적인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허위 주장을 담고 있다.
르몽드는 이 표현이 정치권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본래의 음모론적 의미가 희미해지고,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일상적인 비유나 농담으로도 소비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극우 사상 연구자 발레리 이구네는 르몽드에 “이 표현을 사용하면 극우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음모론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식이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을 벌여 51명을 살해한 테러범이 자신의 선언문에 이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는 점도 그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들었다.
언어학자 세실 알뒤도 르몽드에 극우 진영의 언어적 전략이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론장의 규범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언어적 조작이 “사람이 아닌 ‘인종’을, 이웃이 아닌 ‘외국인’을, 동료 시민이 아닌 ‘적’을 보도록 우리를 길들인다”고 설명했다. 특정 집단을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위협적인 외부인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반복되면, 그 집단을 배제하는 시각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왜곡과 폄훼는 온라인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5·18 역사왜곡과 혐오 담론: 포털 뉴스 댓글 프레임과 주제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를 보면, 연구진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9월까지 네이버에 게재된 주요 언론사 27곳의 5·18 관련 기사 댓글 1만637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5·18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댓글에서 지역혐오가 37.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가짜 유공자’ 프레임이 18.7%, 이념 비난이 11.5%로 뒤를 이었다. 분석 대상 왜곡·폄훼 댓글의 83.1%는 포털 시스템에서 별다른 조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가 온라인 댓글을 분석한 만큼, 그 결과만으로 극우 표현이 일상생활 전반에 얼마나 확산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특정 지역과 역사적 사건을 겨냥한 혐오 담론이 온라인 공론장에서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표현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그 말에 담긴 역사와 맥락보다 익숙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던 조롱이 밈이나 유행어가 되고, 다시 일상적인 농담으로 소비되면 이를 사용하는 사람조차 그 말이 누구를 겨냥하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그 표현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말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낯선 표현이나 부적절한 농담을 극우 용어로 규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단어의 모양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누구를 대상으로 사용됐으며, 반복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얻게 됐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광주 술집의 ‘피떡갈비’ 논란도 메뉴명을 지은 사람의 의도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표현의 유래와 실제 사용 맥락을 확인하는 한편, 특정 역사적 피해자를 조롱하는 말이 일상적인 소비 공간에 등장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농담이라는 이유로 말의 맥락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급진화 연구자인 줄리아 에브너 전략대화연구소(ISD) 연구원은 가디언에 “이런 수사와 표현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더 이상 법적 제재나 사회적 반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표현이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유통될수록 이를 사용하는 데 따르는 사회적 경계심도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런던 버크벡대의 디지털 정치 연구자 로버트 토핀은 극단주의적 언어가 주류 담론으로 스며드는 현상을 짚으며 “극단주의적 기원은 잊히지만, 그 서사는 남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던 말도 일상적인 표현처럼 반복되면 그 말에 담긴 혐오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은 채 사회에 남을 수 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