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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21, 2026

차별·편견·시대의 아픔을 받아친 3085개의 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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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9일 별세한 고인이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9월9일 별세한 고인이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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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타자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선다. 나를 지켜보라는 말을 몸으로 하는 것 같다. 관중의 시선이 그 몸짓에 쏠린다. 왼쪽 타석에 들어선 그는 투수 쪽으로 향한 오른발을 먼저 고정시킨다. 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이제 왼발 차례다. 그 신중한 동작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킨다. 성격 급한 관중석 한편에서는 야유가 나오기도 한다.

다리를 고정시킨 그가 배트를 천천히 들어 투수 쪽을 겨눈다. 약간 공격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집중하겠다는 의도가 그 진지한 표정에 보인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동작이다. 2000년대의 이치로인가…. 자세히 보니 체구가 좀 더 크다. 무엇보다 등 번호가 ‘51’이 아니라 ‘10’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이치로보다 약 30년 먼저 활약한, 1970년대의 장훈이다. 등 번호 위쪽에는 ‘HARIMOTO’라는 영문 이름이 있다. 장훈(張勳)을 일본식으로 읽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勳). 그 시절 재일동포들이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용했던 이름, 성명(姓名)이 아닌 ‘통명’(通名)이다. 타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나니 관중석의 야유도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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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로 돌아가.”

그가 타석을 벗어난다. 시선을 돌려 야유가 들려오는 쪽을 노려본다. 한이 서린 듯 매서운 눈빛에 관중석이 이내 조용해진다. 그는 다시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다시 오른발부터 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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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훈은 그런 타석의 루틴으로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자이니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한국과 일본 사이, 민족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던 시대였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보다 드러내며 차별과 맞섰다. 그리고 안타를 쳤다. 하나씩, 또 하나씩. 마침내 누구도 가보지 못한 3000안타를 넘었고, 3085개까지 갔다.

아직 깨지 못한 일본 최다안타 기록
하나의 편견을 안타 하나로 지우고
차별을 안타로 밀어낸 숫자 ‘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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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8일, 장훈(당시 롯데 오리온스)은 야마구치 다카시(한큐 브레이브스)가 던진 초구를 잡아 당겨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3000번째 안타, 큰 의미를 지닌 홈런이었다. 축포가 터졌고 종이 테이프가 날렸다. 그는 헬멧을 벗어 던지고 아이처럼 뛰었다. 경기 뒤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 홈런이 터진 1980년 5월, 한국은 ‘광주의 아픔’을 겪었다. 대한해협 너머에서 터진 그의 3000안타, 그 홈런은 모든 국민이 축하 박수를 보낸 순간이었다. 한국 정부는 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했다. 훈장을 받은 장훈은 “3000안타보다 모국에서 받은 훈장이 더 기쁘다”는 뜻의 말을 했다. 3000안타가 야구 선수 장훈에게 주어진 환호였다면, 대한민국의 훈장은 한국인 장훈에게 건네진 국민의 박수였을 것이다.

그는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았고, 재일동포 선수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2007년에는 한국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011년 한국프로야구 아홉번째 구단으로 엔씨(NC) 다이노스가 출범했을 때 구단 사장(CEO)이었던 필자는, 마침 그의 가족 연고지가 엔씨 연고지인 경남 창녕인 점에 착안해 프로야구팀 창단과 운영에 필요한 조언을 구했다. 그는 흔쾌히 초대에 응했고 아낌없이 자신의 야구관과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안타 제조기’ 화려한 선수시절 앞서
전쟁·원폭·식민 역사 견뎌낸 ‘이방인’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 했지만
어디서도 편안할 수 없었던 ‘경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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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보면 그의 삶은 눈부시다. 1959년 리그 신인왕, 1962년 리그 최우수선수(MVP), 타격왕 7회, 2752경기에서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1990년에는 ‘일본 야구 전당(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다. 3085안타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안타 기록이다. 그러나 장훈이라는 사람을 설명하기엔 숫자만으로는 모자란다. 그의 삶에는 더 중요한 서사가 있다.

장훈의 부모는 1940년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가 그해 장훈을 낳았다. 그가 태어난 일본 히로시마에는 1945년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일본-미국의 태평양 전쟁이 끝나는 장면이었다. 한국은 그 폭탄으로 해방을 얻었고, 다섯살 소년 장훈은 그때 누나를 잃었다. 가난했고 불우했던 장훈은 어린 시절 오른 손가락에 화상을 입고 그 장애를 평생 안고 살았다. 게다가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다친 장훈을 등에 업은 그 어머니가 병원을 찾았을 때, 한복 저고리를 보고 병원에서 외면을 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화려한 프로야구 선수 장훈 이전에 사람 장훈은 전쟁과 원폭, 식민의 역사와 민족 차별을 견디고, 이겨내야 했다. 장훈이 기록한 3085개 안타는 ‘안타 제조기’가 만들어낸 평범한 숫자가 아니다. 하나의 편견을 하나의 안타로 지우고, 또 다른 차별을 다음 안타로 밀어내며 쌓은 애절한 숫자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극진했고, 그래서 더 한국을 사랑했지만 그에게 모국은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장훈은 한국에서는 일본의 스타였고, 일본에서는 한국인이었다.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기 어려웠던 숙명이 그의 화려한 야구 인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래서 ‘일본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라는 말은 그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 ‘3085’라는 숫자 뒤에는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던 한 소년이 있고,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편안할 수 없었던 한 재일동포가 있으며, 그래도 끝내 자신의 이름과 뿌리를 잊지 않으려 했던 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그깟 공놀이”라고도 하는 야구. 장훈에게 그 야구공은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편견도, 차별도, 시대의 아픔도 그렇게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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