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지탱하는 ‘지어낸 이야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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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뇌가 세계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허구들을 통해서만 인간은 세계에 거주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짜 에필로그’ 중에서)
‘호모 픽투스, 상상하는 인간’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마르케스 이후 스페인-라틴 아메리카 문단을 지배했던 마술적 사실주의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문학 세대를 이끈 작가 호르헤 볼피는 이 책에서 인간이 왜 ‘지어낸 이야기’에 그토록 깊이 의존해 왔는지를 묻는다. 그는 신화·종교·화폐·국가·과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문명을 지탱해 온 거의 모든 체계가 사실은 누군가 지어낸 허구에서 출발했다는 발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지은이는 이 발견을 딱딱한 논증이 아니라,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입담 좋게 풀어낸다.
책은 빅뱅과 생명의 출현을 설명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동굴벽화, 구전신화, 문자와 종교, 소설과 영화,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이야기, 종말론, 음모론이 퍼지는 오늘의 현실까지 방대한 시간을 가로지른다. 성서를 만든 이름 모를 편집자들, 역사를 재구성한 헤로도토스, 소설이라는 장르를 발명한 세르반테스, 계몽주의와 인권, 19세기의 자아와 이데올로기, 넷플릭스 시리즈와 밈 유행까지 얼핏 무관해 보이는 인물과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로 만나고 부딪친다. 50여 점의 도판과 함께 책은 독자들을 인류라는 ‘상상하는 종’의 깊고 넓은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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