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많고, 여자라고 [플랫]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나이도 많고, 여자라고: 일하는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구조적 성차별과 연령차별’ 표지 이미지.
최갑래씨는 1972년 13살의 나이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다. 부모와 형제자매 5명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더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래씨는 끝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일했다.
그는 다양한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보모로도 일했고, 공장에서도 일했고, 집에서 하는 제약회사 부업도 했다. 그 시절 딸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갑래씨도 자기가 번 돈은 모두 집안 살림에 보탰다. 오빠가 독일로 유학간 뒤에는 학비도 댔다.
27살에 결혼을 한 뒤에는 집에서 아이들을 기르다가, 남편이 실직한 뒤 생계부양자 역할을 하게 됐다. 31살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갑래씨는 슈퍼마켓과 식당 등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했다. 막내아들이 입대한 55살,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섰지만 나이든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길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일터는 여성과 노인에게 항상 불리했다.
갑래씨의 이야기는 흔한 사례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나는 휴먼라이츠워치 현장조사 활동의 일환으로 28세부터 87세까지의 한국 여성 41명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여성의 교육 기회를 제한하는 사회적 인식, 채용 과정에서의 불공정한 처우, 가족 돌봄의 책임을 맡으면서 생긴 경력단절, 제한된 승진 기회, 유리천장, 성희롱, 성별 임금과 연금 격차 등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취업 기회가 좁아진다. 이런 일자리들은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60세만 되어도 강제퇴직해야 하는 법정정년제,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삭감은 이런 상황을 악화시킨다.
내가 인터뷰한 여성 중 자신의 경험을 구조적인 성차별과 연령차별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이들이 경험한 것은 바로 구조적 성차별과 연령차별이다. 50대 후반이 되면 여성은 또래 남성에 대해 평균 50% 적은 임금을 받는다.
바닥을 쓸어내는 여성 청소 노동자의 손. 이준헌 기자
이는 여성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다. 성별과 연령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 여성을 특정 직업군으로 분리시키는 성차별적 고용정책과 관행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 지원 웹사이트인 ‘고용24’에서 30대~50대 여성에게 홍보하는 일자리는 주로 미용, 돌봄 노동, 교육, 관계 지원 분야에 집중돼 있다. 50대 이상에게 홍보하는 일자리는 여성들을 저임금 돌봄, 청소, 주방, 사회복지 직종이다. 나이가 들면 선택가능한 일자리의 유형이 좁아질 뿐만 아니라 고용형태나 임금 등의 노동조건도 악화되고 불안정해진다.
연금 제도도 여성에게 불리하다. 나와 인터뷰할 당시 갑래씨는 66세였고, 기초연금으로 월 34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는 최저임금의 16%에 불과하고 2025년 빈곤선인 119만6007원보다 72%나 낮은 금액이다. 설령 갑래씨가 국민연금을 납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성별 연금격차가 있었을 것이다. 2025년 기준 여성의 월평균 노령연금 수령액은 남성의 53%에 불과하다.
노령연금제도의 다른 규정들도 여성의 연금 수령액을 줄이는 요인이다. 여성은 노령연금 전액 수급 요건인 20년 이상 가입요건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높다. 경력단절 후 40~50대에 다시 일을 시작하면 국민연금 납부 상한연령인 59세까지 연금을 납부할 수 있는 기간이 몇 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출산크레딧 역시 여성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이 혜택은 통상 가족 중 소득이 더 높은 사람에게 배정되기 때문에 여성이 주양육자인 경우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 기준으로 출산크레딧 수급자 중 여성은 3%에 불과하다.
한국은 구조적 성차별과 연령차별로부터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직장 내 평등을 보장하고,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고령 여성의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적정 수준의 연금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도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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