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44) 난민 소녀에서 흑인 슈퍼모델로…'뷰티 혁명가' 이만

백인 런웨이 매혹시킨 소말리아의 '혜성'…화장품 창업으로 다양성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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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계 미국인 모델 겸 배우 이만이 2026년 4월 29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에서 열린 '킹스 트러스트 글로벌 갈라' 행사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이 갈라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설립한 청소년 자선 단체 '킹스 트러스트'가 주최하는 주요 연례 자선 행사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1970년대 백인 중심의 런웨이에 혜성처럼 등장해 서구 패션계의 견고한 장벽을 무너뜨린 '아프리카의 진주' 이만.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그는 세계 최초의 흑인 슈퍼모델 중 한 명이자,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화장품 시장을 개척한 기업가이기도 하다.
아프리카가 낳은 가장 매혹적이고 혁신적인 아이콘으로 꼽히는 이만은 1955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자라 모하메드 압둘마지드다.
외교관인 아버지와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비교적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1969년 쿠데타로 소말리아에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의 가족은 모든 것을 잃고 이웃 나라 케냐로 피신해 난민 신세가 됐다.
그러나 난민촌의 고단한 삶도 빛나는 재능과 매력을 다 가리지 못했다.
나이로비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우연히 미국 사진작가 피터 비어드의 눈에 띄어 운명적인 기회를 얻게 된다.
1975년 스무 살의 나이로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Vogue)의 화보를 장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흑인 모델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서구 패션계에서 이만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길고 우아한 목선과 완벽한 비율, 이국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마스크는 단숨에 패션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브 생로랑, 베르사체, 캘빈 클라인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그를 뮤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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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계 미국인 모델 겸 배우 이만이 2025년 10월 22일 미국 뉴욕 데이비드 게펜 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2025 가을 갈라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은 이만을 가리켜 "나의 꿈의 여인"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인종차별의 높은 벽을 허물고 최고 권위의 패션쇼 무대와 잡지 표지를 휩쓸며 진정한 의미의 첫 글로벌 흑인 슈퍼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스포트라이트의 정점에 섰지만, 화려한 모델 생활 이면에는 유색인종으로서 겪어야 했던 뼈저린 차별과 구조적인 모순이 있었다.
당시 백인 위주로 돌아가던 패션계에는 흑인 모델의 피부색에 맞는 파운데이션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만은 촬영장마다 직접 자신의 화장품을 섞어 피부색을 맞춰야 했다.
불편함과 차별의 경험은 그를 위대한 기업가로 이끄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패션계를 은퇴한 뒤인 1994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만 코스메틱스'(Iman Cosmetics)를 전격 설립했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등 유색인종 여성들의 다양한 피부색에 맞춘 화장품을 출시해 뷰티 업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오늘날 글로벌 뷰티 업계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은 '포용성'을 무려 30년 앞서 실천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뷰티 시장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짚어낸 이만 코스메틱스는 수천만달러의 연 매출을 기록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며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뒀다.
기업가로서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고통받는 조국과 아프리카를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섰다.
전 세계 빈곤 아동을 돕는 '세이브더칠드런'과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지원하는 '킵 어 차일드 얼라이브' 등의 자선 단체에서 글로벌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자신이 겪었던 난민과 빈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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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수 데이비드 보위(왼쪽)와 아내 이만이 2006년 9월 25일 미국 뉴욕 링컨 센터에서 열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개막 공연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92년 영국의 전설적인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와 결혼해 세기의 부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패션 및 뷰티 업계의 다양성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이끌며 묵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말리아의 난민 소녀에서 세계 패션계의 전설로, 그리고 견고한 편견을 깬 뷰티 기업가로 변신한 그의 삶은 아름다움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meola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31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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