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삼키며 노래한 디도, 할머니 그리워하는 나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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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퍼셀,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 중 ‘디도의 비탄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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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모의 미락(美樂)클
“잘 봐요, 나 이제 울어요!” 하고 대놓고 우는 것이 아니라 홀로 삼키는 울음. 육신은 살아 있지만 까만 우주의 저 아래 끝으로 떨어지듯 모든 것이 후드득 떨어지는, 그 눈물을 표현할 길이 없네요. 영국에서 활동한 독일 작곡가인 게오르크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유명한 아리아인 ‘울게 하소서’(Lascia ch’iopianga)는 감금당한 알미레나가 울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번역되었지만, 실은 자유가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울고 싶은 상황이며 ‘나’의 의지로 실컷 울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눈물의 아리아는 아름답고 슬프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 헨리 퍼셀의 아리아는 슬픈 정도가 아니라 비장하고 비통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라 확신하는 그 사람이 날 떠나 이제 더는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사라진 그 순간 터져 나오는 탄식을 노래했으니 말이에요. 오장육부가 아프고 아려 오는 그 마음을 가사로, 음표로 전할 길이 있을까요? 작곡가 퍼셀은 마치 촛불이 꺼져 가듯, 다리에 힘이 풀리듯 선율이 아래로 하강하도록 음정을 배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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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탄식을 잘 드러낸 음악으로 이 글을 쓰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며칠 전, 그렇게도 우셨다고 해요. 평소 누구도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눈물은 혼자 있을 때만 흘리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답게 아마도 조용히 혼자 우셨을 거예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돌아가신 할아버지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고 해요. 열두살 꼬마 시절,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습니다. 두 분이 보여주신 행복이 어떤 것인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셔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할머니의 관이 땅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어요. 할머니에게 안식은 자식들의 효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계신 그곳에서 함께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이별은 너무나 슬프지만, 할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가슴 깊이 빌며 그렇게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는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가 트로이의 왕자 에네아스(아이네이아스)를 사랑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의 왕자 에네아스는 트로이를 탈출해 떠돌다가 카르타고 해안에 상륙합니다. 디도는 나라를 잃고 비탄에 잠긴 에네아스를 마음 깊이 동정하다가 걷잡을 수 없이 깊이 사랑하게 돼요. 하지만 행복한 디도를 질투한 마녀의 계략으로 에네아스는 새 왕국을 건설할 용기를 얻어 카르타고를 떠나려 하죠. 일국의 여왕인 디도는 알고 있었어요. 에네아스를 카르타고에 붙잡아두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결국 그는 떠납니다. 이제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한다는 상실감과 좌절, 체념으로 디도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 합니다.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의 3막 2장, 에네아스는 떠나고 디도는 비탄의 아리아를 부르며 시녀들에게 안겨 죽어 갑니다. 가장 비극적 조성인 지(G)단조에서 첼로는 마치 낮게 깔린 슬픔처럼 한 음씩 느리게 하행하며 극도의 비애를 담아냅니다. 첼로가 연주하는 다섯마디의 통주저음(오스티나토 베이스)은 아리아 전체에서 총 9번 반복되며 듣는 이가 우는 이의 심정을 따라가게 합니다. 이 저음은 ‘슬픔의 베이스’(라멘트 베이스)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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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디도는 시녀 벨린다에게 말합니다. “내가 땅에 묻힐 때, 내 잘못이 문제가 되지 않기를.” “내가 땅에 묻힐 때” 이 짧은 가사에서 절망하며 죽어가는 여왕 디도의 심정이 직관적으로 다가옵니다.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실로 인한 좌절이 온몸을 감싸죠. ‘잘못’(trouble)에서 선율이 5도씩 하행하며 음정이 뚝 떨어지며 강한 추락을 느낍니다. 디도의 잘못이라면, 에네아스를 사랑한 죄일까요, 스스로 생을 끝낼 수밖에 없는 잘못일까요? 음표로 느끼는 삶의 종결, 넘치는 눈물이 가슴을 적십니다. 디도가 “나를 기억해 주오”를 노래할 때, 같은 음 레(D)를 네번씩 반복하며,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꼭 기억해야만 하는 구간이 됩니다.
“내 슬픈 운명일랑 모두 잊고, 그저 내 이름을 기억해 주오.”(‘디도와 에네아스’의 3막 2장. ‘디도의 아리아’ 중)
비극은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울까요? 슬픔을 안으로 삼키며 노래하는 디도의 울음을 들으며,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하는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내 오른손 검지에는 은회색 옥가락지 하나가 끼워져 있습니다. 할머니가 지니고 계시던 반지인데요, 장례를 마치자마자 이모가 제게 건네주셨어요. 피아노를 치니, 반지는 아예 끼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이 옥가락지는 딱 잘 맞는데다 약간 두꺼운데도 하나도 불편하지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정말 아름다웠어요. 은회색 투명한 가락지는 아름다우셨던 할머니의 은빛 머리카락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할머니의 손가락에 50년 이상 끼워져 있던 옥가락지를 보며 항상 할머니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아무리 슬퍼도 할머니처럼 혼자 있을 때만 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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