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의 아픔 공감할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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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동유럽은 한국의 무역·외교에서 그다지 중심적인 지역은 아니다. 가끔 무기 수출 등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하지만,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동유럽보다 더 부유한 시장인 서구나 북미, 중국, 그리고 에너지 공급지인 걸프 지역 등에 집중되어 있다. 관심이 적었던 만큼, 여태껏 이렇다 할 갈등도 없었다. 실제로 지난 30여년의 한국 외교사에서 1998년 한-러 맞추방 사건을 제외하면 동유럽 국가들과 별다른 갈등이 불거진 적은 없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최근의 한국-우크라이나 외교 갈등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 갈등의 발단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우크라이나로서는 적국이나 다름없는 북한을 향해 유엔 무대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고 국제적 ‘반북 연대’를 구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에 남겨진 가족의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 등으로 비공개가 원칙인 민감한 북한 포로 송환 문제를 공개해버렸다. 이로 인해 국가 간 신뢰를 깬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가 타국에 좀처럼 하지 않는 공개 사과 요구나, 최근 외신을 통해 알려진 우크라이나 침공 중인 러시아로의 석유제품 수출 의혹 등을 고려하면, 이 사태를 단순히 ‘젤렌스키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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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배경에는 러-우 전쟁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할 때만 해도, 한국은 미국에 ‘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 등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곤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자산’이 아닌 ‘부담’ 내지 대러 관계에서 활용할 만한 ‘카드’ 정도로 여기는 트럼프 시절이 되자, 한국 정부 역시 우크라이나에 훨씬 더 냉정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두어달 사이에 러시아의 항만 등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전황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입장이 한국 정부의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정세 변화를 떠나, 우리는 한국에 우크라이나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근원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겉보기에는,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공통점이란 그다지 없어 보인다. 한반도에는 고대 이후 천수백년간 중앙집권적 독립국가가 존재해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국경의 우크라이나는 불과 1991년, 즉 35년 전에 등장했다. 그 이전의 우크라이나 지역은 대개 여러 제국 사이에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둘 다 지정학적인 지층(地層) 사이, 즉 열강의 대립과 충돌이 늘 격심했던 경계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가 청일·러일 전쟁의 전장이 되었듯, 우크라이나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참혹한 전투들이 치러졌다. 제2차 대전 이후의 동서 냉전이 한국 전쟁으로 본격화되었듯, 중·러 블록과 구미권 간 대립의 본격화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출된 것은, 이러한 지정학적 논리 차원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반도가 분단되었듯,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일부와 나머지 우크라이나 역시 분단과 이원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되짚어보면, 한국인들은 우크라이나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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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근본적인 유사성이 있음에도 최근 35년간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국운은 다소 대조적이었다. 우크라이나도 한국도 제조업이 발달한 공업 사회지만, 냉전 시절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해온 한국과 달리 우크라이나 공업의 주된 시장은 옛 소련 내부였다. 냉전 종식 이후 한국 공업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어 급성장하는 사이에 소련이라는 시장을 잃은 우크라이나 공업은 쇠퇴해갔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침공과 동부 산업 지역 강탈, 산업시설 파괴, 그로 인한 노동인구의 대량 유출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최빈국이 되었다.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크라이나의 약 7배에 달한다. 사실, 우크라이나보다 부강한 나라들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공개 사과 같은 초강경 요구를 한국 정부가 내놓은 배경에는, 이러한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절대적 비대칭성이 있다. 아무리 향후 성장을 거듭한다 해도,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노동력의 부족, 러시아로부터의 장기적 안보 위협에 시달릴 우크라이나가 가까운 미래에 한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 반열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상대국이 빈궁하고 최악의 국난에 봉착해 미래가 불투명하다 해서, 그 나라를 ‘만만하게’ 여겨 박대하는 것이 과연 선진국이 가져야 할 태도인가? 한국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제조업 제품을 수출하며 자본을 축적해 지금의 부국이 된 만큼, 국제사회에서 그 부에 걸맞은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 국가 간 신의를 깬 젤렌스키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전쟁 참화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선진국의 품격일 것이다. 이 전쟁의 참화를 젤렌스키 정부의 실정 탓으로 돌리는 이들이 국내에 적지 않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지정학적 지층 사이에 위치한 나라로서 이러한 비극을 피하기란 실로 난망한 일이다. 젤렌스키 정권의 잘잘못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몫이다. 한국인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참화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 사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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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크라이나의 8개 대학에는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키이우, 드니프로, 오데사의 대학생들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드론과 미사일 공격 속에서도 한국어를 부지런히 공부하며 한국과 연계된 미래를 꿈꾼다. 그들에게 한국은 우크라이나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인 약소민족이라 할지라도 산업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한국은 그들의 희망찬 시선에 누구보다 깊게 공감하고 따뜻하게 응답할 수 있는 역사적 기억을 가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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