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모범생, 밤엔 밈짱…“5·18 혐오·스벅 옹호? 인스타는 그냥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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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서 있다. 뒤로 탱크가 보인다. 전두환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가 들려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다.
지난 5월18일 저녁 7시께, 박기우가 인스타그램 계정 ‘정치맛 갤러리’에 게시물을 올렸다. 스타벅스가 ‘탱크데이’ 마케팅을 벌여 비난이 쏟아진 지 9시간이 흐른 즈음이었다. 기우는 인스타그램에서 정치 계정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다. 매일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등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3~5건씩 올린다. 스타벅스와 전두환 ‘밈’의 조회수는 2만회 남짓. ‘좋아요’를 뜻하는 하트 옆엔 백 단위 숫자가, ‘디엠(DM·다이렉트 메시지) 공유’를 뜻하는 종이비행기 옆엔 천 단위 숫자가 찍혔다. ‘전 장군’ ‘존경한다’ 등의 댓글이 수십개 달렸다. 기우가 이 계정 운영자라는 사실은 가장 친한 친구 몇을 제외하곤 비밀이다. ‘정치맛 갤러리’는 팔로어가 1만명 남짓, 최근 3개월간 게시물 조회수가 3200만회에 이를 정도로 나름 유명한 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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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해요. 학생회 회의가 이제 끝나서.” 지난달 8일, 커피숍 문을 열고 앳된 얼굴의 남학생이 들어왔다. 양 볼에는 불그스름한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다. 기우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내신 1.1등급의 모범생이다. 수줍게 웃고, 말투는 예의 바르다. 대학에서는 경영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싶어 한다. ‘정치맛 갤러리’ 계정 운영자인 기우의 모습은 다르다. ‘대가리 깨진 4050’ ‘×된다’ 등 다소 거친 표현도 쓴다. 정치인을 조롱하는 밈도 거침없이 만든다. 사람들은 운영자가 20대 또는 30대 청년이라고 여긴다. ‘정치맛 갤러리’를 유튜브가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만든 건, “인스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라서다. 10대에게 인스타그램은 ‘슈퍼 앱’이다. 친구와 대화하는 메신저, 영상을 보는 플랫폼, 뉴스 등 사회문제와 역사 정보를 습득하는 통로 구실을 모두 맡는다.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창’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동영상 시청 부문은 1위이고, 메신저 부문에선 1위(카카오톡)와 큰 차이가 없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25년 10대 조사) 한겨레가 14~18살 청소년 6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사회문제와 관련한 정보를 어디서 접하느냐’고 물었더니, 1위가 인스타그램(41.1%)이었다.

그 인스타그램에 극우적인 세계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각종 혐오와 조롱 콘텐츠, 가짜뉴스 등이 넘쳐난다. 유머와 밈, 세련된 미학을 무기로 장착했다. 독일과 미국 등에선 인스타그램이 청소년과 청년층을 극우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관문’이 된 지 오래다. 한겨레는 국내 언론 최초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스타그램 생태계를 분석하고, 10대 청소년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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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아침 7시, 기우는 등교 전에 ‘정치맛 갤러리’에 올릴 게시물을 두어개씩 만든다. 학교에 있을 땐, 친구들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으로 전환해둔다. 개인 계정은 팔로어 100명 남짓이다. 게시물도 올리지 않는다. 저녁 7시엔 다시 ‘정치맛 갤러리’ 운영자가 된다.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인스타그램 속에 두개의 자아가 공존한다. 인스타그램 생태계 안에서 기우는 콘텐츠 ‘생산자’인 동시에 ‘이용자’다. 기우는 디지털과 영상을 능숙하게 다룬다. 어렸을 때부터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것이 하나의 놀이였다. 미제 사건 등 미스터리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3개월간 운영하다가 10만원을 받고 팔았다.
“밈의 형식을 빌려 가볍게 웃고 넘길 만한 걸 만든 거죠.” 기우가 5·18 관련 밈을 만든 건 ‘재미’ 때문이다. “5·18을 헐뜯거나 스타벅스를 옹호할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기우는 5·18이 왜 민주화운동인지 줄줄 읊을 정도로 역사에 해박하다. 밈을 만드는 건 별개다. 마치 공부와 놀이처럼, 둘은 다르다. 유튜버처럼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당장은 수익보다 ‘주목’과 ‘관심’에 효능감을 느낀다. 기우는 어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은 영화 ‘암살자(들)’이나 비무장지대(DMZ) 지뢰 등 보수 진영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를 주로 다룬다. 얼마 전엔 이재명 대통령의 ‘일그러진 얼굴 짤’을 게시물로 올렸다. 게시물 전부가 명백히 극우적인 내용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렇더라도 ‘정치맛 갤러리’와 활발히 교류하는 일부 계정의 극우 콘텐츠와 함께 추천 피드에 노출되는 순간, 극우 서사를 강화하는 흐름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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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이 아니라 10대 청소년에게 인스타그램은 일종의 놀이터다. 그것도 개방된 놀이터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일부러 누리집을 찾아가야 했다. 인스타그램 접근은 일상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엑스(X·옛 트위터)와도 다르다. 구독하거나 팔로하지 않아도, 이용자들이 즉각 반응하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게시물이 우선 노출된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세상을 배우고, 세계관을 형성해간다. “이제는 어디서 태어났느냐보다 어디에 ‘접속’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어떤 계정에 연결되는지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되는 셈이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다만, 놀이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극적인 밈과 짧은 릴스에 익숙해지다 보면 “(사고의) 회로가 점점 밈으로 대체된다”고 ‘급진의 20대’ 저자 김내훈은 말한다.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하기까지의 긴 회로는 점차 사라지고, 인스타그램의 불빛에 반응하는 나방처럼 되어간다.
기우가 중학교 3학년이던 2024년 겨울,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기우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었다. 이듬해 초, ‘정치맛 갤러리’ 계정을 개설했다. 처음 올린 게시물은 국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영상이다. 수십만 조회수가 나왔다. 요즘은 영상 대신에 이미지 위주로 올린다. 게시물 하나를 만드는 데 5분이면 충분하다. 포털뉴스에 뜨는 ‘속보’ 가운데 보수 성향의 주제를 고른다. 팩트체크를 할 시간은 없다.

기우가 릴스 영상에 집중했던 지난해 상반기, 디지털 플랫폼 공론장에서 모종의 ‘전환’이 시작됐다. 태극기 부대, 극우 정치인과 기독교 단체들의 주무대인 유튜브 안에서는 청년층과 밀접하게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더 큰 변화는 인스타그램에서 일어났다. 한겨레는 10대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보수 정치 콘텐츠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 167개를 추린 뒤에 8~9월 두달 동안 관찰했다. 167개 계정에는 국민의힘, 자유와혁신 등 정당이나 정치인, 자유대학과 같은 청년조직 계정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68개 계정이 ‘정치맛 갤러리’처럼 익명으로 활동하면서 확성기 구실을 한다. 익명 뒤에 서면, 정부나 정치인 등에 대한 혐오와 조롱이 거리낌없어진다. 익명 계정의 절반 이상(36개)이 비상계엄 이후 신규 개설됐다. 나머지 계정 가운데 상당수도 비상계엄 이후에 올린 정치 게시물만 공개돼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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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간의 극우 담론을 연구하는 김종우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인스타그램에서 유머와 밈 등을 활용해 ‘연성화’된(말랑한)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 교수는 “인스타그램에서 정치적 경쟁이 확장되고 있다”며 “놀이와 대중문화 형식을 덧붙여 극단주의나 적대성을 희석하는 방식은 ‘탈악마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우는 지금 ‘경계’에 서 있다. 뒤로 극우가 보인다. 기우가 서 있는 곳은 인스타그램 생태계 한가운데다. 생태계 언저리에서 노는 10대들도 위태롭다. 더 이상 인스타그램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다. 앞으로 5화에 걸쳐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집중 조명한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기사에 등장하는 10대 청소년의 이름은 미성년자라는 점을 고려해 모두 가명을 쓴다. ‘정치맛 갤러리’도 실제 계정명과 다르다.
인스타그램은 10대 청소년에게 ‘만능’이다. 친구와 대화하는 메신저, 재밌는 영상을 보는 플랫폼, 뉴스 등 사회문제와 역사 정보를 습득하는 통로 구실을 모두 맡는다.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창’이다. 그 공간에 최근 1~2년새 극우적인 세계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각종 혐오와 조롱 콘텐츠, 가짜뉴스 등이 넘쳐난다. 유머와 밈, 세련된 미학을 무기로 장착해서 더 위험하다. 한국에선 새로운 현상이지만, 독일과 미국 등에선 인스타그램이 청소년과 청년층을 극우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관문’이 된 지 오래다. 한겨레는 국내 언론 최초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스타그램 생태계를 분석하고, 10대 청소년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앞으로 5화에 걸쳐 인스타그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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