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Source: Bears expected to start QB Bagent vs. JetsESPN DeportesEN VIVO: Sigue Braves vs Dodgers, Juego 1 Series DivisionalesRTP DesportoMovimento liderado por ex-candidato ao Vitória de Guimarães pede auditoria à SADThe Jerusalem Post'I gave everything that I had': Flydubai captain tells Netanyahu about co-pilot's hijacking attemptZDF heuteAktuelle Pressemitteilungen des ZDFSRF NewsNations League: Liga A – England verpasst Kroatien in Rijeka eine AbreibungESPN CricinfoBrand goes big as Australia flip through Test plansNOS SportLamine Yamal leidt met weer een vroeg doelpunt Spaanse zege op Tsjechië inConsequenceJack Black Plays Jack Sabbath Set with Geezer Buttler at Power to the People FestColliderOne of Horror’s Most Infamous Summer Camps Is Now Open on Free StreamingInteriaPożar w Rijadzie. Huti przyznali się do ataku na stolicę Arabii SaudyjskiejThe South African‘Married at First Sight’ star Hlulani Ngobeni graduates! [video]
The Daily Newsstand · Free, Always
Saturday, October 3, 2026

다른 목소리를 침묵시키지 않는 의료 [.txt]

Translate
아르놀트 라호프스키의 그림 ‘대화’ (1935년께). 다른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말하고 듣고 있다. 의료윤리학의 원칙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답 대신, 다른 목소리들이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통의 언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르놀트 라호프스키의 그림 ‘대화’ (1935년께). 다른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말하고 듣고 있다. 의료윤리학의 원칙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답 대신, 다른 목소리들이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통의 언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광고

광고

김준혁의 미래 의료인을 위한 책장

광고

광고

저는 여러 모자를 쓰고 다니지만, 가장 시인성이 좋은 모자는 ‘의료윤리학자’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 다르고 별로 친하지 않은 분야들을 공부한 이력을 지니고 있고 각각 또 나름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무엇으로 불러도 좋겠습니다만, 저는 저 이름을 좋아합니다. 의학, 철학, 법학, 사회학, 심지어 공학까지 모두 다 엮어서 한곳에 풀어놓을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인데요.

무슨 뜻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전문적인 표현을 쓴다면, 의료윤리는 대표적인 ‘학제적’ 학문입니다. 학제(學際),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인데요. “그거, 최근에는 모든 학문이 다 그런 거 아니야?”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들이 떠오릅니다.

광고

하지만 조금 경망스럽더라도 저는 말씀드려요. 학제적인 학문이 흔치는 않다고요. 최근 대학에는 기존 이름을 여러가지로 이어 붙인 학과들이 많이 탄생했지요. 하지만 알고 계실까요. 이름을 이어 붙여 만든 학과들은 보통 그중 중심이 되는(사실, 힘이 센) 학과가 하나 있습니다. 보통 취업에 도움이 되거나, 소위 “21세기에 잘나가는” 이과를 그 자리에 놓고, 다른 학과를 붙이는 구조입니다.

물론 이전부터 학제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어요. 최재천 선생님이 에드워드 윌슨의 표현을 번역한 통섭(consilience) 같은 단어가 좋은 예일 텐데, 이런 단어가 대표적으로 한 학문이 다른 인접 학문을 포괄하려는 시도였지요. 단지, 궁극적으로 지식을 하나의 설명 체계(즉, 진화생물학) 안에 연결하려는 구상이라, 여러 학문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유지한 채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요.

사실 ‘학제’라는 분야들에선 보통 한쪽 학문 목소리가 커요. 그리고 목소리가 큰 학문이 보통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의 역할을 하지요. 의료윤리학이라고 한쪽 학문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어찌 되었건 이 분야는 의학이 중심에 있고, 의학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의학에 의학의 목소리만으로는 의료행위의 옳고 그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된 학문이다 보니, 사정이 다른 분야와 상당히 달라지게 됩니다.

의료윤리학 하면 많은 분이 아직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립니다. 틀린 접근은 아닙니다. 의사는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좋은 의사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온 의료전문직의 윤리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으니까요. 지금이라면 이를 전문직업성의 역사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광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의료윤리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은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의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의료행위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무엇으로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지요. 환자와 시민, 철학과 법학을 비롯한 다른 목소리에도 통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해진 겁니다.

생명의료윤리의 원칙들, 탐 비첨·제임스 췰드리스 지음, 박찬구 외 5인 옮김, 부크크(2017)
생명의료윤리의 원칙들, 탐 비첨·제임스 췰드리스 지음, 박찬구 외 5인 옮김, 부크크(2017)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의료윤리학을, 제가 쓰고 있는 이 모자를 만든 책은 오늘 소개하는 ‘생명의료윤리의 원칙들’입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은 1979년입니다. 같은 해 발표된 벨몬트 보고서와 함께, 원칙을 통해 의료와 연구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비판하는 의료윤리학의 언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지요.

책을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먼저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자면, 책은 크게 네가지의 원칙을 제시하고, 그것이 의료와 생명의과학에 어떻게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네가지 원칙은 자율성 존중, 선행, 해악 금지, 정의입니다. 자율성 존중은 환자나 연구 대상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내린 선택을 존중할 것을 의미합니다. 선행은 타인의 이익을 증진하고 해악을 예방하거나 줄일 것을, 해악 금지는 타인에게 해악을 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지요. 정의는 부당한 차별을 피하고 이익과 부담, 자원을 공정하게 나눌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책은 이런 원칙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각 원칙을 구성하는 개념과 내용은 무엇인지, 이를 따라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각자를 조율할 것인지 등을 담고 있어 상당히 두껍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네 원칙을 외우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같은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판단이 달라질 때, 무엇을 더 따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지요.

이런 원칙 기반 접근에는 비판도 있습니다. 원칙을 뒷받침할 이론이 충분하지 않고, 추상적인 원칙만으로는 구체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하나의 이론에 모두 동의해야만 함께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에서 출발하더라도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원칙은 그 기준의 역할을 합니다.

물론 원칙을 제시했다고 판단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원칙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밝히고,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조정하는 일이 남아 있지요. 그러므로 원칙을 답안처럼 사용하는 것과 원칙에 기대어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즉, 원칙의 핵심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도 함께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요구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는 무엇이 환자에게 이로운지를 두고 다툴 수 있지만, 환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에서는 만날 수 있지요. 같은 원칙에 동의한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자기 분야의 권위만 내세우는 대신, 그 원칙에 비추어 자신의 판단을 설명해야 합니다.

전 의료윤리학에서 학제적 학문을 만납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지우지 않으면서도, 함께 판단하고 그 판단에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 학문 말이지요.

View the original on 한겨레 →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