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남편 떠난 여자가 보낸 수수께끼 전보···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의 매혹적 서스펜스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 물결점 제공
타이가 열병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 지음 | 안태운 옮김 | 물결점 | 140쪽 | 1만6800원
남자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여자는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난다. 떠난 여자는 멀리 사라져 가면서도 가는 곳마다 우체국과 전신국에 들러 남편에게 짧은 전보를 보낸다.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먼 것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이 쌓이자 남편은 탐정을 고용한다. 소설은 남편에게 고용된 탐정인 ‘나’가 여자를 찾아 북쪽 끝 타이가로 향하는 이야기다.
타이가는 북반구의 냉대 기후 지역에 나타나는 침엽수림 일대를 말한다. 소설에서 “사방 5000 킬로미터쯤이 온통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묘사되는 이곳 사람들은 종종 “끔찍한 불안 발작을 겪으며 그곳을 벗어나려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여정을 감행”한다. 이것이 ‘타이가 열병’이다.
‘나’는 타이가 일대를 잘 알고 현지어에 능통한 통역사를 고용한다. ‘타이가의 한 쌍’으로 불리는 도망간 여자와 남자를, 여성 탐정과 남성 통역사 한 쌍이 뒤쫓는다. 소설은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는 추격의 과정보다 타이가 숲과 그 안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최근 몇 년 간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혀온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는 멕시코 출신 소설가이자 시인, 역사학자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역사와 기억, 몸과 언어, 젠더와 폭력, 국경과 이동을 아우르는 글을 써왔다. “분위기의 대가”라고 불리는 만큼 이 책에서도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기묘한 정서를 잘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8년 셜리 잭슨상을 수상했고, 페미사이드(여성 살해) 문제를 다룬 <릴리아나의 무적의 여름>으로 2024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나’는 통역사와 함께 ‘타이가의 한 쌍’이 머물던 오두막을 찾지만, 이웃들은 ‘타이가의 한 쌍’도 ‘나’와 통역사도 불길한 존재 마냥 경계한다. 추위를 이겨가며 탐문하지만 소득은 없다. 새끼 늑대, 정체불명의 작은 생명체 등 혼란을 가중 시키는 존재들만 이들 주위를 떠돈다. ‘나’는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던 임무가 복잡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불필요한 말들이 가득 찬 탐문 보고서를 쓰며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어떤 남자”의 허상과 같은 지시를 따르고 있지는 않는지. 그나마 그들에게 사건의 실마리를 던져준 아이들은 “신뢰하기 힘든 정보원”이고 “통역사의 언어능력이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한다. 이제 자신의 “귀조차 미덥지 못”하다고 느낀다.
벌목업자, 목재를 외부로 내다 파는 사업가, 이런 남성들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 등이 등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 통역사까지 “(벌목업자들은) 작업 속도를 버텨내려고 약을 너무 많이 해요”나 “여자들은 섹스 생각밖에 안 해요” 같은 묻지도 않은 말들을 꺼낸다.
이야기는 착실히 흘러가지만, 독자가 그 뜻을 모두 붙잡아 이해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소설이다. “거기 살았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바로 저 집이라고.” 의도적으로 도치된 문장들, “그런데 새들은 어떻게 볼까?”, “바람, 그 울부짖음. 이것.”처럼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발화와 단어의 나열은 일반적인 서술의 경계를 넘어간다.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가 사실은 빈곤과 허기에 빠진 당대 사람들의 상황을 그려낸 잔혹한 이야기라는 언급은 작품 내내 불시로 나타난다. 친절한 서술보다 여러 상징을 흩뿌려 놓으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속내를 파악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매력적이란 사실은 거부하기 힘들다. 사랑과 욕망, 자본의 폭력과 야생의 숲이 가져오는 고립감 등이 밀도 있게 소설을 채운다. 책을 덮고 나면 무언가 슬프면서도 비정한 것을 목도한 기분이 든다.
국내에 소개된 저자의 첫 책이다. 책의 편집과 번역을 맡은 안태운 시인은 “작가의 여러 작품 중 가장 소설적인 작품을 먼저 선보이고 싶어 첫 책으로 소개했다”며 “단순히 탐정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를 통해 몰입감을 주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물결점에서는 다음 달 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장골능>을 펴낸다. 안 시인은 “페미니즘적 성격이 강하고 고딕 소설의 양식도 보이는 작품”이라며 “폭풍이 몰아치는 밤 의사인 남성에게 여성 두 명이 다가와 ‘너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고 말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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