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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3, 2026

국제분쟁, 이기는 것만이 답일까…100점 판정보다 80점 합의 [피터앤김 국제분쟁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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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국제분쟁을 겪는 기업 담당자들이 변호사에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다. 소송이나 중재가 시작되면 누가 이길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의 목적은 좋은 판결문이나 중재판정문을 받는 데 있지 않다. 조기에 분쟁을 마무리해 이로 인한 손실과 불확실성을 줄이고 다시 사업에 집중하는 데 있다. 때로는 몇 년 뒤에 받는 100점짜리 판정보다 지금 분쟁을 끝내는 80점짜리 합의가 더 나은 결과일 수 있다. 국제분쟁에서 조정(mediation)이 주목받는 이유다.

조정의 아킬레스건, 집행력

조정과 중재의 가장 큰 차이는 해결책을 어떻게 도출하느냐에 있다. 중재인은 양측의 주장과 증거를 법리적으로 검토해 판단을 내린다. 반면 조정인은 누가 법적으로 옳은지 판단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 조력자다. 당사자들의 입장 차이를 좁혀서 수용 가능한 합의점을 찾기 때문에 분쟁 뒤에도 거래를 이어가야 하는 관계에 잘 맞고, 서면 공방과 증인신문이 없어 시간과 비용도 적게 든다.

그런데 조정에는 오랜 약점이 있었다. 예전에 필자가 한국 회사를 대리해 영국 회사를 상대로 수행한 중재사건에서도 당사자들은 몇 달간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필자는 중재절차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국제조정을 제안했고, 당사자들은 조정인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합의에 이르러 조정합의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대방이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어렵게 합의했는데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재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1958년 채택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이른바 ‘뉴욕협약’ 덕분에 국제중재판정은 170여 개국에서 집행할 수 있다. 해외에 소재한 상대방 재산에 비교적 간이한 집행절차를 거쳐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거래 계약의 분쟁해결조항에 중재가 표준처럼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조정으로 이룬 합의는 법적으로 계약일 뿐이어서,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이행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즉, 조정합의 내용을 강제로 집행하려면 재판이나 중재를 처음부터 다시 거쳐야 했다. 분쟁을 끝내려고 맺은 합의가 새 분쟁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이 공백을 메우려 만든 것이 ‘조정을 통한 국제적 화해계약에 관한 국제연합(UN) 협약’, 이른바 ‘싱가포르협약’이다. 2020년 발효된 이 협약에 따라 당사국 법원은 조정으로 성립한 국제상사 화해계약도 새로 재판하지 않고 집행해야 한다. 신청인은 서명된 합의서와 조정을 거쳤다는 증거, 예컨대 조정인의 서명이나 조정기관의 확인서를 내면 되고, 법원이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도 협약에 한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남았다. 2026년 10월 기준 서명국은 60개국이지만 실제로 비준한 당사국은 25개국이기 때문에 협약에 따른 집행을 구하려는 국가가 협약의 적용을 받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한국은 2019년 서명했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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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합의에도 열리는 집행의 길

변화의 신호는 올해 나왔다. 법무부가 2026년 6월 싱가포르협약 이행을 위한 ‘국제상사조정을 통한 화해계약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해 협약 서명 7년 만에 국내 이행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비준이 되면 상대방이 한국에 가지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도 집행력을 부여받을 수 있게 돼 국제조정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정안에 따르면 국제상사분쟁을 조정으로 해결해 서면으로 맺은 화해계약은 법원의 집행결정을 받아 강제집행할 수 있다. 판결이 아닌 간이한 결정 절차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고, 법원이 직권으로 거부할 수 있는 사유도 한국법상 조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거나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 등으로 좁혀져 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옵트인(opt-in) 방식이다. 당사자들이 협약이나 이 법의 적용에 동의한다는 취지를 합의서에 명확히 담지 않으면 승인·집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합의서의 문구 하나가 향후 집행 가능성을 좌우할 수도 있는 셈이다.

중재와 조정을 잇는 Arb-Med-Arb

그렇다면 협약 당사국이 20여 개국뿐인 지금, 상대방 재산이 비당사국에 있으면 어떻게 할까. 조정과 중재 중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다. 실무가 찾은 답이 중재-조정-중재(Arb-Med-Arb)다.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와 싱가포르국제조정센터(SIMC) 간 프로토콜에서는 중재를 개시한 뒤 절차를 멈추고 SIMC에서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 조정을 하도록 하고, 합의가 성립하면 중재판정부가 그 내용을 화해중재판정(consent award)으로 남길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실패하면 멈췄던 중재를 이어나가면 되고, 중재인과 조정인은 각 기관이 따로 선임해, 조정에서 꺼낸 이야기가 판정에 불리하게 쓰일 걱정도 줄어든다.

통상 화해중재판정은 일반 중재판정처럼 뉴욕협약에 따라 집행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므로, 싱가포르협약 당사국이 적다는 약점을 뉴욕협약의 넓은 그물로 보완할 수 있다. 대한상사중재원도 2026년 1월 시행된 개정 국제중재규칙에서 중재 진행 중 분쟁의 전부 또는 일부를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명문화했다(제16조 제2항, 제38조).

선택지가 늘었다고 문제가 단순해지지는 않는다. 어떤 절차를 어떤 순서로 결합하고 언제 협상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시간과 비용, 최종 결과가 달라진다. 분쟁해결조항에 조정 단계를 넣는다면 조정 기한을 분명히 정해야 하고, 상대방 재산이 어디 있는지에 따라 조정 합의로 갈지 화해중재판정으로 갈지를 따져야 한다. 조정에도 조정인 보수와 기관 비용이 드는 만큼, 결렬에 대비한 예산과 전략도 미리 세워둬야 한다. 합의서에는 당사자들이 그 내용에 구속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적고, 옵트인 방식이 그대로 입법된다면 협약 적용 동의 문구까지 챙겨야 한다. 화해계약의 문구 하나도 전략이 되는 셈이다.

이제 국제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몇 년 뒤의 100점짜리 판정보다 지금의 80점짜리 합의가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우리 기업에 가장 유리한지, 그리고 그 결과를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지를 분쟁 초기부터 전문가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중재든 조정이든, 또는 둘의 결합이든 분쟁의 출구를 미리 설계하는 것이 새로운 국제분쟁 시대의 전략이다.

악수로 끝낸 분쟁이 또 다른 분쟁의 출발점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피터앤김 국제분쟁리포트]에서는 국제상사중재, 해외소송 등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과 최신 동향을 살펴보고, 기업이 알아야 할 실무적 시사점을 소개합니다.
김새미 변호사는 법무법인 피터앤김 파트너 변호사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한국 및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상사중재 및 다양한 국제분쟁 해결 분야를 전문으로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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