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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0, 2026

[미디어세상]신뢰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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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사실을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편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사실을 바꾸어 읽는다. 법학자 댄 캐핸은 이를 정체성 보호 인지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증거의 타당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말한 사람이 속한 집단을 먼저 헤아리기도 한다. 이때 사실은 공동으로 확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사실의 수용 여부가 소속을 증명하게 되는 인식론적 경계가 된다.

한국 사회가 마주한 신뢰의 위기는 단순한 구성원들 간 신뢰 부족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는 신뢰의 준거를 잃어가고 있다. 가까운 사람과 같은 편에는 두터운 신뢰를 보내면서 가치관과 정보원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을 말할 자격마저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신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진영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미국의 PR컨설팅 회사 에델만의 2026년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4%는 자신과 가치관이나 정보의 출처, 사회문제 해결방식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거나 신뢰하기를 주저한다고 답했다. 이것은 신뢰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일반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정직한지, 맡은 일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지를 살피지 않는다. 에델만의 조사가 말하는 신뢰에 대한 현재의 보편적 기준을 해석하면 놀랍다. “저 사람은 우리 편인가?”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선택적 불신 구조를 재생산하고 노련하게 활용한다. 많은 정치인들은 상대의 정책과 판단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대를 부도덕하고 위험한 존재로 규정한다. 그들에게는 복잡한 사안을 필요한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보다 지지층의 분노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갈등의 명분을 약화시키지만 분노를 지속하는 것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정치는 갈등을 재생산하고 정치 미디어들은 이를 증폭시키는 채널이 된다. 미디어 이용자들은 대개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을 선택한다. 알고리즘은 그 선택을 학습해 더 익숙하고 더 확신에 찬 세계를 그들에게 되돌려준다. 언론은 예정된 논조를 따라 사실과 취재원을 취사선택하며 현실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결국 서로 다른 정치적 진영의 시민은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현실에 거주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편향은 정치에서 멈추지 않는다. 에델만의 같은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33%는 “정치적 신념이 다른 리더의 성공을 돕는 데 노력을 덜 기울이겠다”고 응답했다. “다른 가치를 가진 관리자에게 보고하느니 차라리 부서를 옮기겠다”는 응답자도 37%에 달했다. 정치적 대립이 조직의 협업과 경제적 생산성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곳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사실의 토대 위에서 다투고, 설득하고, 때론 타협할 수 있는 곳이다. 의견의 차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서로가 진실과 의견을 말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미래는 오직 자기편만이 진실하다고 믿는 사회이다. 신뢰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내 편만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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