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기로 결심했을 때, 혁명이 시작되었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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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전복하는 자들의 시대였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함께 지구적 지배질서인 ‘제국’의 통치 권력을 규명한 마이클 하트 미국 듀크대 교수가 ‘전복적 70년대’를 한권의 책으로 분석했다. 저자가 이 책의 원고를 보여주자, 친구는 대뜸 “이 운동은 정말 아름답지만, 매번 우리가 졌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는 해방과 혁명의 ‘좋은 60년대’에 견줘 ‘나쁜 70년대’를 떠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70년대 좌파는 붉은 여단, 일본 적군, 독일 적군파, 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PIRA) 등의 무장 투쟁과 군사화된 조직의 폭력적 행위로 자멸했다는 얘기다.
하트는 ‘70년대’가 내부 결함으로 무너졌다기보다 강력한 외부 세력에 의해 패배한 정치 운동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앞으로의 승리는 이 ‘패배’에서 싹트게 될 것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해되기 며칠 전 한 말을 저자가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 굳이 써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명백히 패배했지만 혁명의 씨앗이 발아해 미래로 이어지는 변혁 운동을 찾는 데 목적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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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저항운동사에서 70년대는 양가적 의미로 기억된다. 앞서 언급했듯 저항 조직의 물리력 행사가 역사 속에 각인됐지만 사실은 국가와 경찰의 폭력, 암살단 활동, 시위자들을 대상으로 한 치명적 작전, 우익 테러리즘이 기승을 부렸다. 1969년 미국의 급진적인 흑인운동단체 ‘흑표당’ 지도자 프레드 햄프턴 살해, 1970년 미국 켄트 주립대 반전 시위자 사망 사건, 1976년 남아공 소웨토 봉기에서 경찰에 의해 수백명이 살해된 사건, 197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 스티브 비코 고문 사망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70년대 혁명운동을 오늘날 해방운동의 출발점으로 파악한다. 토착 농민 운동, 동성애 해방 운동, ‘자기-조직화’된 노동 운동, 반핵 운동, 혁명적인 페미니즘 운동, 흑인 해방 운동, 다양한 민족 봉기, 원주민 투쟁까지. 노동자, 농민, 유색인, 여성, 동성애자, 식민지 민중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정치적 변혁 주체가 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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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대부분을 70년대 혁명운동의 과정과 성격을 상술하는 데 쓰지만, 평면적으로 나열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우선 카를 마르크스와 미셸 푸코라는 양대 거장을 중심으로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등을 경유하며 이론적인 틀을 탄탄하게 세운다. 이를 중심으로 70년대 각국의 혁명 사례와 노동운동 투쟁기 속에서 공통된 패턴을 설명한다. 집합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내는 자율성, 페미니즘·반인종차별주의·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절합’(articulation, 둘이면서 하나를 이루는 상태)과 다중성, 그리고 민주주의와 해방의 개념이다.
이를테면 1971년 영국 런던 동성애 해방전선, 같은 해 칠레 노동자들이 벌인 공장 점거 운동 ‘토마’, 1973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립 시계 공장 점거, 권위주의 체제에 반발한 1974년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 등은 이 시대 전복적 운동의 대표적 사례였다. 1970년대 박정희 군부독재를 거치고 터져 나온 광주항쟁은 단 5일 동안 자율적인 정치형태를 띠었지만 또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하트는 분석한다. ‘광주’의 고갱이는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것”이라며 파리 코뮌과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된 튀르키예의 민주적 실험 ‘팟사 코뮌’과도 공명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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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머리에 저자는 70년대 시작된 중요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중 하나가 1970년대 동성애 해방 운동이다. 하트는 이를 “성 혁명이라기보다 정치 혁명”이라고 운동의 성격을 못 박는다. 동성애의 해방적 성격은 동성 간의 섹스가 아니라 푸코의 말대로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정서적이고 관계적인 잠재성들”이란 푸코의 표현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나타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관조하고, 감각하고, 원하고, 행위하고 사랑하기”라는 목록과 유사하다고 하트는 설명한다.
나아가 “정치적 영성”이라는 푸코의 개념까지 소환한다. 푸코는 정치적 영성이 볼셰비키를 비롯한 현대 혁명운동 일반의 핵심적 특징이라 주장했다. 정치적 영성은 “주체적 변형”,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을 요구한다. 결국 70년대의 전복적인 정치 주체가 추구한 해방은 “주체적 변형”과 “구조적 변형”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영적인 변화까지 꿈꾸는, 밑바닥부터 철저한 사회 혁명이었다는 얘기다.


종합하면, 70년대 전복적 운동은 2000년대 이후 미국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아르헨티나의 페미사이드 및 젠더 폭력 반대 운동인 ‘니 우나 메노스’, 윤석열의 계엄에 맞선 ‘빛의 혁명’ 등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칠레 아옌데 정권처럼, 개혁적인 인물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민중 권력’의 참여 민주주의적인 열망이 곧장 완성되지는 않는다. 촛불 혁명 이후 문재인 정권, 빛의 혁명 이후 이재명 정부의 경우를 떠올려 봄 직한 대목이다.
결론에서 하트는 계급 운동이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퀴어, 탈식민, 반장애인차별, 반인종차별적 요구와 ‘절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70년대 운동들이 세계 각지에서 공명하며 메아리로 울렸다는 점이나 사회운동의 절합을 강조하는 점은 꽤 이상적인 정답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결과 최초의 미국 원주민 여성 주지사, 플로리다주 최초 흑인 주지사, 미 역사상 최초 흑인 여성 주지사 등이 탄생하는 등 다양한 정체성의 후보자들이 당선되면서 하트의 이론이 가진 현실성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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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적인 민중 권력의 염원은 어떻게 해야 행복한 정치적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 역시 열쇠는 주체와 구조를 모두 변형하는 급진성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포기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활동가와 변혁을 꿈꾸는 세계 시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거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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