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한잔 해! [박선영의 선 넘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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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 ‘그저 하루치의 낙담’ 저자·전 언론인
프랑스에서는 1956년까지 초등학교 급식에 레드와인이 곁들여졌다. 영양가가 높을 뿐 아니라 장내 유해 미생물을 죽이는 알코올이 식수보다 안전하고 위생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급식실에 마주 앉은 초등생끼리 “한잔해!” 하며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건배하는 모습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아 옛 직업병을 못 버리고 팩트체크에 들어갔다. 프랑스 민영방송 테에프1(TF1)이 발굴한 국립시청각연구소 영상 자료에 따르면, 14살 미만 학생의 급식에서 알코올을 금지한 건 1956년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총리였고, 14~18살 중·고등학생은 25년이나 더 학교 급식실에서 “본 샹테!”를 외치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81년에야 술 없는 학교에 다니게 됐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알코올의 유해성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와인의 자리에 종종 스마트폰을 넣어 본다. 스마트폰은 개인을 세계와 연결하고, 놀라운 휴대성과 정보 접근성으로 우리 삶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들며, 세상의 거의 모든 기기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평범한 인간에게 르네상스맨이 될 기회를 부여했다. 그래서 주었다. 건강에 좋다며 애들 급식에 술 내놓던 프랑스처럼, 찡찡대던 아기에게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주고,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앱을 깔아주었다. 스마트폰이 국내 출시된 2009년 돌잔치를 했던 아이들이 현재 고3이니, 몇 달 후 해가 바뀌면 우리나라 청소년 모두가 스마트폰 이후 태어난 완벽한 ‘스마트폰 네이티브 세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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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나. 슬프고 무서운 숫자들을 간략히 적어 본다. ①청소년 자살률 10년 새 104.7% 증가 ②자해 및 자살 시도 553.1% 급증 ③우울증 환자 5년 새 55.6% 증가 ④불안 장애 42.2% 증가. 오타가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는 저 끔찍하고도 난데없는 숫자들은 스마트폰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저 숫자에 포함된 제법 많은 아이를 안다. 여자아이들의 팔다리에 그어진 상흔을 보았고, 학교에 가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힌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도 많이 안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무책임한 반론을 들으면 그래서 언성이 높아진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것은 추론될 수밖에 없다. 추론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도리어 스마트폰을 규제하는 것이며, 아이들의 삶 속에서 그것을 최대한 덜어냈을 때 어떻게 회복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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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마트폰이 어떤 물건인지도 모른 채 아이들 손에 그것을 쥐어 주었다. 언제나 온라인에 접속된 상태가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모른 채 집에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손바닥에 피부처럼 붙인 채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이 물건이 무기력과 불안, 우울로 가는 아우토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젊었던 부모들은 아이들의 뇌가 전두엽 발달이 완료된 자신들의 뇌와는 다르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편도체에 벌겋게 불이 들어온 아이들이 과자극 상태의 방어 모드로 살아가며 관계 맺기의 실패, 우정의 실종, 고립감과 패배감에 시달리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뒤늦게 사태를 수습해 보려던 각 가정 단위의 싸움은 수많은 전투 끝에 패배로 끝났다. 입법과 정책을 통해 국가 단위로 해결하는 것 외엔 이제 방법이 없다. 그런데 국가가 너무 느긋하다. 이미 많은 나라가 규제에 돌입했는데,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이 문제에 있어 아이들은 결코 설득되지 않는다. 합의를 목표로 잡으면, 변화는 요원하다. 아이들이 무엇을 잃었고 어떻게 다쳤는지 의학적, 과학적 논거로 상세히 설명하고, 스마트폰을 걷어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지, 아이들의 소통과 참여, 놀이의 욕구는 어떻게 대체해 충족할지 치열하게 방법을 논의해야지, 한가하게 찬반을 토론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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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와인이 나오는 학교 급식을 볼 때처럼 혀를 차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우리한텐 한마디도 안 해 주고 자기 아이들에게만 아이티(IT) 기기를 철저히 막은 스티브 잡스를 새삼 또 미워하다가, 그렇게 자란 자녀들은 뭘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져 검색에 돌입했다. 그러면 그렇지. 화면을 닫으며 정말이지 오랜만에 혁명의 욕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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