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용산공원, 금싸라기와 허파 사이
정부가 주요 주택 공급지로 꼽은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에서 23일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살 곳을 만들어야 할까요, 숨 쉴 곳을 남겨둬야 할까요. 최근 서울 용산공원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용산공원 내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정부와 용산공원을 녹지로 보존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입니다. 오늘 점선면에서는 용산공원을 둘러싼 입장차를 살펴보고, 용산공원 개발 혹은 보존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볼게요.
점(사실들): 평행선만 달린 논의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일 만나 용산공원 주택 공급 방안을 논의했으나 평행선을 달린 채 끝났습니다. 정부는 용산공원 내 녹지 기능을 상실한 일부 부지에 한해 제한적으로 주택을 공급하자는 입장인데, 서울시는 용산공원 전체를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거든요. 이들은 이번주에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용산공원 내 주택공급을 둘러싼 전선은 개발을 추진하는 당정청(여당인 더불어민주당·정부·청와대)과 이에 반대하는 서울시·야당으로 확대된 상황입니다.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영배 의원은 2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났으나 “큰 틀에서 합의하기 어려웠다”(김 의원)는 결과로 끝이 났습니다.
선(맥락들): 법이 지킨 금싸라기 빈 땅
양측의 입장이 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정부는 용산공원 내 녹지 기능을 상실한 일부 부지에 한해 제한적으로 주택,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으로 공급하자고 주장했어요. 정부가 검토하는 후보지는 용산공원 내 장교 숙소 5단지, 옛 방위사업청, 군인아파트 등입니다.
수도권 주거난 해결이 급선무인 정부로서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용산공원이 매력적인 카드입니다. 금싸라기 땅을 공원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국유지인 용산공원은 ‘빈 땅’이라 별도의 토지 보상 절차도 필요 없고요.
서울시는 “(개발에) 동의하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는 것”(오세훈 시장)이라고 할 만큼 강경한 반대 입장입니다. 오 시장은 용산공원이 서울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고, 남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녹지 축의 주요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다만 서울시는 용산공원 본체 부지 대신 캠프킴, 외교부 주차장 등 인근 부지 개발을 절충안으로 제시했어요. 그런데 본 구역 활용 여부에 따라 주택 공급량이 약 3배까지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와, 정부와 서울시가 접점을 찾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용산공원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려면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들도 있습니다. 미군기지로 오랫동안 사용된 용산공원은 중금속·기름 등 토양 오염이 심각합니다. 택지로 활용하려면 오염토를 정화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입니다. 미군과 정화 비용 부담 문제도 협의해야 하고요.
용산공원 활용 논의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했어요. 이 법은 ‘국가는 본체 부지 전체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함을 원칙으로 하며, 본체 부지를 공원 외의 목적으로 용도 변경하거나 매각 등의 처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합니다. 용산공원을 훼손하지 않고 녹지로 두자는 사회적 약속은 오랜 시간 법으로 보호받아온 것입니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 때문에 국민의힘은 ‘노무현 정신’을 언급하며 여당에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인데요. 민주당은 “당시에는 부지 전체의 공원화가 국민적 합의였으나, 주거 현실과 서울의 주택 수요 등이 크게 달라졌다”(한병도 원내대표)고 맞서고 있습니다.
면(관점들): 정쟁만 덩그러니
그런데 용산공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다투는 여야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요. 과거에는 주로 민주당 계열 정당이 녹지 보존에,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개발에 상대적으로 더 힘을 실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겠다며 그린벨트를 대규모 해제했을 때,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찬성했고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은 반대했습니다.
약 2년 전 서리풀지구 사례도 소환됐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윤석열 정부 당시 서리풀지구 그린벨트 해제에는 동의했으면서 지금은 어깃장을 놓는다고 민주당이 주장하자, 서울시는 이미 훼손된 지역에 한해 제한적으로 검토한 사안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오 시장이 용산공원 공방으로 여권에 날을 세우며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결국 또 정쟁만 남았습니다. 주택 공급과 녹지 보존이라는 본질은 점점 멀어지고 팽팽한 줄다리기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주거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은 ‘폐버스 하우스’에 이어 ‘고시원 욕조 허용’ 개정안에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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