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엔 비상구 의무 없다”는 대법원…아리셀 23명은, 어디로 대피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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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의 목숨을 앗아 간 리튬전지 생산업체 아리셀의 대표이사 박순관의 형량을 징역 15년에서 징역 4년으로 줄여 가볍게 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리셀 참사 피해자 단체가 재판소원을 청구하기로 했다.
앞서 대법원 선고가 있었던 지난 20일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대책위)와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재판소원을 비롯해 가능한 모든 법적·사회적 수단을 검토하고 동원하여 이 (대법원)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 법률지원단의 손익찬 변호사는 “(검토 끝에) 재판소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28일 한겨레21에 전했다. 재판소원은 확정된 법원의 재판이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헌법재판소에 그 재판의 취소를 구하는 제도다.
“층마다 안전조치 했어야”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에게 징역 15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그의 아들 박중언(전 아리셀 운영총괄본부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박순관의 핵심 범죄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점(산업재해치사)만 보면, 그는 아리셀 공장 내 위험 요인을 파악해 제거하는 등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지 않아 박중언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를 야기해 노동자 23명의 사망을 초래한 혐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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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박중언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란 참사가 발생한 공장 3동에서 해야 할 비상구 안전조치, 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맞게 비상구를 설치하고 그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할 의무를 위반한 점을 가리킨다.

박중언의 변호인은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인 리튬으로 음극을 제조하는 작업장이 있는 공장 3동 1층에 비상구가 설치돼 있었으므로 규칙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다. 참사 발생 장소인 공장 3동 2층 작업장이 리튬전지 전압 검사 또는 전지 표면에 일련번호를 기재하는 공정 등이 진행된 곳이므로 리튬을 직접 취급하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은 아니지만,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는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 ‘각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안전보건규칙의 입법 취지(노동자의 대피 등의 보호)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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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15년이 징역 4년으로
그런데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 각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안전보건규칙 문언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장하는 해석이라며, 공장 3동 1층에 비상구가 설치된 이상 3동 2층에 별도로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 박순관에게 징역 4년, 박중언에게 징역 7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20일 이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참사 유족들과 대책위는 천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과거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참사’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와 양립할 수 없는 판결을 선고했다고 비판했다. 이 참사는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골리앗 크레인(바닥에 깔린 주행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문(門)형 구조)이 이동하면서 멈춰 있던 지브 크레인(팔 형태의 회전식 구조)에 강하게 부딪혀 그 충격으로 50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한 지브 크레인 일부에 노동자들이 깔려 6명이 죽고 32명이 다친(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7명 포함)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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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두 크레인이 소통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크레인 간 연락망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당시 골리앗 크레인 신호수와 지브 크레인 운전수끼리만 무전기 소통이 가능했을 뿐 신호수와 신호수, 운전수와 운전수끼리는 무전기가 지원되지 않았다.
천대엽 대법관의 ‘다른’ 판결
크레인 참사 2심 재판부는 삼성중공업 법인의 공소사실 중 안전조치 및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을 지난 2020년 2월 유지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안전보건규칙에는 ‘일정한 신호방법을 정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지 크레인 단독 작업이 아닌 중첩 작업 때 별도의 신호방법을 정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고, 사업주가 노동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작업계획서에 중량물 추락·낙하·전도·협착 외에 충돌 위험 안전대책까지 포함해 작성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으며, 작업 중에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아올 위험이 있는 구역에 설정해야 하는 출입금지구역의 설치 반경 내지 범위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무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21년 9월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가 앞의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비록 안전보건규칙에 2심 재판부가 언급한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크레인 참사가 발생한 사업장 환경과 그곳에서 여러 차례 다양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하면 삼성중공업 법인에는 크레인 충돌 위험 안전대책까지 포함해 작업계획서를 작성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크레인 단독 작업에 따른 일정한 신호 방법을 정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고, 안전보건규칙이 출입금지구역의 설치 반경이나 범위를 구체적 수치로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설치할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산업 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때의 대법원 판단은 형식적 문언 해석에 갇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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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을 신뢰할 수 있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윤성민 변호사는 “대법원은 과거에 안전보건규칙을 산업 현장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면서도 금번엔 이와 정반대의 판단, 즉 법 문언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스스로 자아분열을 하고 있다”며 “과연 대법원이 신뢰할 만한 법리를 만드는 기관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대책위 법률지원단이 재판소원을 통해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기본권은 헌법 제32조에 명시된 ‘근로의 권리’다. 헌재는 헌법에 있는 ‘근로의 권리’가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만이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함께 내포하므로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포함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2024헌마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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