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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3, 2026

엿새간 350㎞ 극악의 레이스, 길 위의 친구들 덕에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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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상승고도 2만5000m 최고 난도
제한 시간 150시간에 잠도 아껴야
그래도 함께 걷고 달린 주자들 있어
서로에게 최후의 힘이 되어줘 완주

‘2026 토르330’에 출전한 장보영씨. 출전 3일차에 코다 능선을 넘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2026 토르330’에 출전한 장보영씨. 출전 3일차에 코다 능선을 넘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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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너라면 한번쯤 꿈꾼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등지고 머나먼 길을 하염없이 걷고 달리는 꿈 말이다. ‘토르 데 제앙’(Tor des Géants, 이하 토르330)은 지금까지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높고 험하고 고독한 트레일 레이스였다. 이탈리아 발레다오스타 일대에서 열리는 토르330은 실거리 350㎞, 누적 상승고도 2만5000m에 이르는 세계 최고 난도 울트라 논스톱 트레일 레이스 중 하나다. 제한 시간은 150시간이며 참가자는 약 1100명이다. ‘토르 데 제앙’을 직역하면 ‘위대한 여행’이란 뜻이다. 2010년 처음 열린 토르330은 매해 9월 초순쯤 6일에 걸쳐 진행된다. 이 기간에 발레다오스타 전역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나 역시 토르330에 출전하는 날을 막연히 상상해왔다. 하지만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본 후지산 100마일 경기를 두번 달리면 된다고 계산하면 될까.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올해 초 토르330에 지원했는데 덜컥 당첨됐다. 두려운 마음이 반이었다. 산에서 보내야 하는 밤이 걱정됐다. 100마일 경기에 출전하며 그 밤이 얼마나 춥고 괴로운지 뼈저리게 겪어봤기에 6일이라는 경기 기간이 자신 없었다. 그럼에도 무려 43개의 ‘체크 포인트’, 50㎞ 지점마다 마련된 6개의 ‘라이프 베이스’ 때문에 기대가 생겼다. 토르330 출전을 앞두고 이탈리아 북부에 자리한 해발 1224m의 작은 산악 마을 쿠르마유르로 향했다.

이탈리아 발레다오스타 일대에서 열리는 토르330은 실거리 350㎞, 누적 상승고도 2만5000m에 이르는 세계 최고 난도 울트라 논스톱 트레일 레이스 중 하나다. 잼 에이전시 제공
이탈리아 발레다오스타 일대에서 열리는 토르330은 실거리 350㎞, 누적 상승고도 2만5000m에 이르는 세계 최고 난도 울트라 논스톱 트레일 레이스 중 하나다. 잼 에이전시 제공
2000m 이상 고개를 25개가량 넘어야 한다. 한 출전자가 고개를 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2000m 이상 고개를 25개가량 넘어야 한다. 한 출전자가 고개를 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65시간55분22초라는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중국의 울트라 트레일러너 자오자쥐. 대회 신기록이다. 그가 오는 잠을 참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65시간55분22초라는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중국의 울트라 트레일러너 자오자쥐. 대회 신기록이다. 그가 오는 잠을 참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2026년 토르 데 제앙’에 참가한 약 1100명이 쿠르마이유를 출발하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2026년 토르 데 제앙’에 참가한 약 1100명이 쿠르마이유를 출발하고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지난달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각), 고대하던 토르330 대장정이 시작됐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날씨는 포근했다.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 속에서 쿠르마유르 시내를 한바퀴 돈 뒤 서서히 산에 접어들었다. 첫번째 고개인 ‘콜 다르프’(Col d’Arp)는 해발 2568m에 솟아 있었다. 한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일렬로 빈틈없이 줄을 서서 움직이는 선수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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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은 생각보다 길었다. ‘바이트 율라즈’(Baite Youlaz)와 ‘라 투일’(La Thuile)을 지나 해발 2858m의 ‘콜 파소 알토’(Col Passo Alto)를 넘어 밤 10시 무렵, 첫번째 라이프 베이스인 ‘발그리장슈’(Valgrisenche)에 도착했다. 어느새 약 4000m의 누적 상승고도를 쌓았다. 주최 쪽에서 준비한 식사를 먹을 수도 있고 간이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첫번째 라이프 베이스에서 곧바로 레이스를 이어갔다. 50㎞ 지점은 경기 극초반이었다. 초반 레이스에 수면 시간을 할애하면 제한 시간인 150시간을 넘길지도 모를 일이다. 경기 중 처음 찾아온 밤을 산속을 걷고 달리며 버텼다. 졸리고 피곤했지만 견뎠다. 중간 체크 포인트에서 채비하며 첫째 날 밤을 보냈다. 해발 3002m ‘콜 앙트렐로르’(Col Entrelor)를 넘으며 붉게 떠오르는 태양과 만났다.

해발 3000m의 고산을 넘는 참가자. 정상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해발 3000m의 고산을 넘는 참가자. 정상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급경사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인 만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대비하는 참가자. 잼 에이전시 제공
급경사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인 만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대비하는 참가자. 잼 에이전시 제공

두번째 날은 토르330 코스 중 가장 높은 산악 고개인 해발 3299m의 ‘콜 로송’(Col Loson)과 해발 3002m의 ‘콜 앙트렐로르’를 넘어야 했다. 첫번째 고비는 콜 로송으로 향하던 오전 10시쯤 찾아왔다. 첫째 날 밤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맨몸으로 버틴 까닭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주자들도 상황은 비슷해 보였다. 정오의 뙤약볕 아래 녹아내린 듯 바위 곳곳에 주자들이 새우처럼 쪼그려 잠을 자고 있었다. 모두가 힘겹게 자신에게 찾아온 수마와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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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000m 고개답게 콜 로송은 쉽게 자신의 정수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한참을 오른 끝에 도착한 ‘레비오나 계곡’(Valle di Levionaz)이었다. 문득 앞서가던 주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는 성채 같은 거대한 절벽만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 높고 깊은 계곡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순간 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마주했다. 방금 보았던 눈앞의 거대한 절벽의 가장자리를 갈지자로 에두르며 주자들이 개미처럼 오르고 있었다. 황당하다 못해 허망해서 웃음이 나왔다.

비와 강풍 등 궂은 날씨에도 강행군하는 참가자. 잼 에이전시 제공
비와 강풍 등 궂은 날씨에도 강행군하는 참가자. 잼 에이전시 제공

그 길을 무슨 정신으로 넘었는지 모른다. 졸음에 겹다 못해 재워진 육신을 정신이 간신히 견인해 하산했다. 높이 올라간 만큼 한참을 내려왔다. 그나마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두번째 라이프 베이스인 ‘코뉴’(Cogne)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늦은 오후에야 도착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배가 고픈 것도 잊고 간이침대부터 찾았다. 가수면 상태로 30분 정도 누워 있었다. 해가 저물기 전 코뉴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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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어둠이 찾아오며 두번째 밤이 시작됐다. 이 구간은 출발하자마자 해발 2826m의 ‘피네스트라 디 샹포르셰르’(Finestra di Champorcher)를 넘은 다음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여러 산길, 목초지, 호수, 계곡을 통과한 끝에 다음 마을인 ‘도나스’(Donas)에 이르는 여정이다. 수면 부족에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길고 긴 하강에 들어가야 했기에 집중해야 했다. 프랑스에서 온 크리스토퍼와 한참 동행했다. 그는 일흔 가까운 나이임에도 매해 100마일 경기를 완주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약 30㎞에 이르는 길을 크리스토퍼와 나란히 걷고 달렸다. 도나스까지 함께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쏟아지는 잠에 먼저 무너진 나는 더 이상의 진전이 힘겨워 길 위에 주저앉았다. 크리스토퍼에게 먼저 가라고 말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각자의 길이 있는 법이었다. 결국에는 홀로 스스로 넘어서야 했다.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하는 선수들. 박홍민 제공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하는 선수들. 박홍민 제공
지점마다 설치된 라이프 베이스에서 부상 치료와 근육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지점마다 설치된 라이프 베이스에서 부상 치료와 근육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토르330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사람이다. 함께 걷고 달린 주자들이 없었다면 350㎞라는 긴 길은 그저 외롭고 처절한 시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여러 친구를 만났다. 밀라노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데이비드, 중국 청두에 사는 울트라 트레일러너 양첸, 10여년 전 같은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만나 우연히 재회한 일본인 고지와 와타루, 그리고 함께 출발해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11명의 한국 선수들이 있었기에 토르330은 따뜻하고 황홀했다.

길고 긴 밤을 홀로 산속에서 보내고 동틀 무렵 도착한 세번째 라이프 베이스인 도나스에서는 무려 4시간이나 통잠을 잤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눈을 떴고 다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출발했으나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빠르게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네번째 라이프 베이스인 ‘그레소네이’(Gressoney)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고된 길이었기에 숙면이 약이 됐다. 장거리 경기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수면이라는 점을 체감했다. 잠을 줄이고 이동하면 당장은 시간을 버는 것 같아도 나중에 더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허비하게 된다.

대회 마지막 날 만나 함께 달린 한국 선수 박홍민(맨 오른쪽), 이현호(맨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보영 선수. 잼 에이전시 제공
대회 마지막 날 만나 함께 달린 한국 선수 박홍민(맨 오른쪽), 이현호(맨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보영 선수. 잼 에이전시 제공
출전 선수들은 6개의 라이프 베이스 외에도 중간 체크 포인트 산장에서 여러 가지를 보급받을 수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출전 선수들은 6개의 라이프 베이스 외에도 중간 체크 포인트 산장에서 여러 가지를 보급받을 수 있다. 잼 에이전시 제공
석양이 내린 산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 잼 에이전시
석양이 내린 산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 잼 에이전시

다섯번째 라이프 베이스인 ‘발투르낭슈’(Valtournenche)에 자정 무렵 도착했다. 발에 잡힌 물집 상태가 악화됐다. 어느덧 250㎞ 가까이 달려왔다. 1시간 정도 쉬고 출발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아무래도 환각 상태에 빠진 듯했다. 분명 저 멀리 산 위에 휘황찬란한 불빛을 뿜어대는 도시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서둘렀는데 도착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지피에스(GPS) 지도를 찾아봐도 그곳은 그저 인적 없는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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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다오스타의 고산 지대인 ‘알타비아1’(Alta Via1)을 통과하며 아침을 맞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생명이 깨어나던 평화의 아침이었다. 어느덧 여정은 마지막 밤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여섯번째 라이프 베이스인 ‘올로몽’(Ollomont)으로 넘어가는 길 또한 해발 2492m의 ‘콜 브뢰종’(Col Breuson/Brison)을 넘어야 해서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조차도 즐길 수 있었다.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쿠르마유르까지는 50㎞ 정도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 길이 끝나가고 있다는 게 못내 서운하고 아쉬웠다.

125시간55분19초라는 기록으로 완주한 장보영씨. 감격에 눈물을 보이고 있다. 나든 제공
125시간55분19초라는 기록으로 완주한 장보영씨. 감격에 눈물을 보이고 있다. 나든 제공
67시간10분09초라는 기록으로 여성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의 울트라 트레일러너 카타리나 하르트무트. 잼 에이전시 제공
67시간10분09초라는 기록으로 여성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의 울트라 트레일러너 카타리나 하르트무트. 잼 에이전시 제공
대회의 긴 여정을 마치고 피니시 보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있는 장보영 선수. 잼 에이전시 제공
대회의 긴 여정을 마치고 피니시 보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있는 장보영 선수. 잼 에이전시 제공
125시간55분19초의 기록으로 전체 약 1100명의 참가자 중 255위, 여성 부문 24위를 기록한 장보영 선수. 잼 에이전시
125시간55분19초의 기록으로 전체 약 1100명의 참가자 중 255위, 여성 부문 24위를 기록한 장보영 선수. 잼 에이전시

마지막 날에는 한국 선수인 박홍민과 이현호를 만나 함께 달렸다. 몸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모두가 밝고 건강해 보였다. 우리 세 사람의 목표는 하나. 130시간 이내 완주. 그래야지만 ‘토르 데 글라시에’(Tor des Glaciers, 이하 토르450)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장장 450㎞에 달하는 토르450은 토르330보다 훨씬 더 높은 산을 오르고 깊은 협곡을 넘으며 빙하를 횡단한다. 토르330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었다.

대회 종료 후 이튿날 열린 세리머니에서 완주자와 자원 봉사자가 한자리에 모여 단체 사진을 남겼다. 잼 에이전시 제공
대회 종료 후 이튿날 열린 세리머니에서 완주자와 자원 봉사자가 한자리에 모여 단체 사진을 남겼다. 잼 에이전시 제공

서로에게 최후의 힘이 되어준 우리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 고개인 해발 2925m의 ‘콜 말라트라’(Col Malatrà)를 넘기 직전에 헤어졌다. 어느덧 각자의 속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 결단에 동의는 필요 없었다. 그것은 토르330의 구호가 말해주고 있었다. “토르는 그저 레이스가 아니다. 당신 자신과 함께하는 여행이다.”(TOR is not just a race. It’s a journey with yourself.) 수많은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 친구인 나와 함께 쿠르마유르의 결승선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갔다. 그리고 이 위대한 여행은 125시간55분19초라는 위대한 기록을 내 인생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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