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AI는 창살없는 감옥 될수도…인간적 돌봄 대체해선 안돼”

노인인권 독립 전문가 피르토셰크 박사
‘노인 인지력 낮다’는 편견, AI가 학습
생활 기록하며 일상감시 도구 될수도
AI 값싼돌봄 대면접촉 사라져선 안돼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요리하는 노인을 그려달라’고 하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같은 AI에 ‘요리하는 사람’과 ‘요리하는 노인’을 각각 주문하면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노인은 더 느리게 움직이고, 서 있기보다 앉아서 재료를 손질한다. 색감도 어딘가 어둡고 우울하다. 우리가 가진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AI에도 스며드는 이른바 ‘AI 연령주의(Ageism)’다.
지난해 인류사 최초로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가 5세 이하 영유아를 넘어섰다. 하지만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최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제6차 아셈 노인 인권 현실과 대안 포럼’에서 유엔이 임명한 제3대 ‘노인의 모든 인권 향유에 관한 독립전문가’ 즈베즈단 피르토셰크 박사를 만났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신경과 교수로 파킨슨병, 치매 등을 연구해온 그는 AI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연령주의의 뿌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노인을 바라봐온 방식에 있다고 진단했다.
피르토셰크 박사는 “연령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정 연령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을 뜻하는 연령주의는 때로 친절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환자가 노인이라는 이유로 의사가 환자 본인 대신 보호자에게 설명하거나, 증상을 호소해도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충분한 치료를 시도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연령주의는 ‘보호’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노인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보호가 어느 순간 당사자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근거가 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피르토셰크 박사는 “노인이라고 해서 결정할 자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특히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노인의 결정권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연령주의가 AI의 알고리즘에 숨어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AI 연령주의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노인에 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거나 선별적으로 수집되면 AI가 기존 사회의 연령 차별을 그대로 학습한다는 설명이다.
AI는 이미 의료와 돌봄으로 들어오고 있다.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며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등 노인의 삶을 도우면서 동시에 움직임과 대화, 수면, 생활 습관까지 기록한다. AI가 노인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을 감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피르토셰크 박사는 “지원과 감시의 차이는 무엇보다 노인이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며 “결정의 주체와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르토셰크 박사는 돌봄 방식에서 AI가 인간의 ‘값싼 대체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이란 이유로 AI를 돌봄에 활용하는 것이 노인들의 인간적인 접촉과 노인에 대한 지역사회 지원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2060년 세계에서 가장 나이 든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국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3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피르토셰크 박사는 노인이 겪는 여러 문제를 ‘인권’이라는 하나의 렌즈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피르토셰크 박사가 그리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는 모든 세대가 서로 연결돼 지원하는 사회다. 그는 “연령주의는 결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지금 노인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사실 30~40년 뒤 자신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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