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갈아 넣은’ 강민호·최형우의 헌신…야구장 공기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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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통계는 수많은 숫자로 가을을 설명하려 든다. 기대 득점, 출루율, 불펜 소모율, 누적 이닝 등등. 정규시즌 144경기 동안 이 숫자는 제법 정교한 나침반이 된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은 다르다. 데이터의 틈바구니를 뚫고 나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단어가 있다. 바로 ‘기세’다. 기세는 야구장 공기를 바꾼다.
가을야구에서 기세란 무엇일까. 2026년 11월, 플레이오프 5차전 혈투를 치르고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오른 삼성 라이온즈를 보면 그 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시작은 부상과 결핍이었다. 팀의 주장이자 심장인 구자욱이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을 다치며 외야 수비에서 이탈했다. 이에 43살의 노장 최형우가 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선발 좌익수로 나서고 있다. 정규시즌 때는 주로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던 그였다. 수비를 대신 서 주는 최형우에게 미안해서인지 구자욱은 3차전 때 2타점 3루타를 때려내는 등 타석에서 제 몫을 다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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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살의 강민호 또한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한국시리즈 3차전까지 선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옆구리 부상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2~3㎏ 가량의 포수 장비를 차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수백 번 반복했다. 허리를 돌리지 못하니 정상적인 타격은 당연히 어렵다. 이런 그의 모습은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의 가슴에도 불을 붙였다. 후라도는 3차전 선발로 나와 6회 타구에 손을 맞고도 7회까지 던졌다. 경기 뒤 그는 “6회를 마치고 민호 형이 손 괜찮냐고, 더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민호 형도 아픈 상태로 뛰고 있는데, 나도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좌완 불펜 이승민은 플레이오프 5경기를 다 던지면서 삼성 마운드를 지켰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을 제외하고 2, 3차전에서 던졌다. 이승민은 “(강)민호 형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타석에 서 계신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짠하고 아프다”면서 “빨리 이겨서 민호 형이 우승하고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강민호는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했지만 지금껏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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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에서 말하는 ‘기세'는 단순히 분위기를 타는 요행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감내하는 누군가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부채감이자 그 빚을 갚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갈아 넣겠다는 ‘결의'의 총합이다. 강민호는 “말 그대로 지금은 영혼이 있다면 영혼을 갈아 넣고 있을 만큼 정말 절실하다”고 했다.
스포츠에서 흔히 말하는 ‘원 팀(One Team)' 역시 거창한 구호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한 선수의 빈자리를 다른 선수가 메우고, 선배의 헌신을 후배가 이어받으며, 외국인 선수마저 ‘용병'이 아닌 ‘동료'로서 마운드를 지키는 연쇄 작용. 팀을 위해 고통을 참아내는 베테랑과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후배의 집념이 하나로 맞물릴 때 비로소 진정한 ‘원 팀’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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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이 완벽한 팀만이 가을야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부상과 피로라는 결핍 속에서도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한 걸음 더 내딛는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이에게 부담으로만 남지 않고, 악으로 깡으로 “내가 더 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오는 것. 그리고 한두 사람의 헌신이 팀 전체의 공기를 바꾸는 것. 그것이 가을야구의 기세이고, 그 기세가 2026년 가을의 승부를 흔들고 있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엘도라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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