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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14, 2026

왜 우리는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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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직장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 자동차와 도로.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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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가 다른 분야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한번 만들어놓으면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익숙해지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알기 어렵고, 잘못된 구조를 발견해도 인프라와 건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고치기 어렵다. 대도시 시민들은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마다 지옥 같은 대중교통과 꽉 막힌 도로에서 몇 시간을 보낸다. 싫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일종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출퇴근 지옥이 도시의 숙명이 아니라 백여 년 전 등장한 한 사람의 도시적 이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세기 말 산업혁명의 정점에 있던 런던은 공장 매연과 오수, 빈민가의 위생과 범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빈민가가 커질수록 기존 부유층이 가난한 사람들과 물리적·환경적으로 벽을 쌓으며 한 도시의 시민들끼리 서로 적대적으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현실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도시개혁가 에버니저 하워드(Ebenezer Howard)였다. 그는 1898년 ‘전원도시’(Garden City)라는 도시개념을 제안했다. 도시와 농촌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도시의 일자리와 문화·공공시설, 농촌의 자연과 쾌적함을 하나의 자립적인 도시 안에 결합하자는 생각이었다. 약 3만2천 명 규모의 도시 중심에 공공시설과 상업시설을 배치하고, 그 주변을 주거지가 감싸며, 그 바깥쪽에는 산업과 농업을 배치한다. 그리고 도시 주변에는 녹지를 남겨 도시의 무한 팽창을 막는 그린벨트를 둔다. 이렇게 시작은 도시 빈민을 위한 인간적인 대안이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된다. 도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려는 생각은 주거·상업·공업·녹지 등을 서로 다른 구역으로 나누는 용도 구역 구분, 즉 ‘조닝’(Zoning)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미국에서는 1916년 뉴욕의 조닝 규제가 등장했고, 1926년 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용도지역을 통한 토지 이용 규제가 도시계획의 중요한 원칙으로 인정받는다.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다. 공장과 주택을 분리하고 비슷한 기능을 모으면 도시를 관리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도시가 서로 다른 기능이 섞여 살아가는 장소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분리해 배치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했다. 주거와 직장, 학교와 상업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동차와 철도가 사람을 태워 나르는 것이 가능해졌다. 도시의 문제를 공간의 개선이 아니라 교통의 효율로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거쳐 도시계획법으로 제도화되었고, 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도시 밖 새로운 주거지를 만드는 위성도시와 신도시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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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주택 공급’이라는 사고가 등장한다. 값싼 교외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고, 사람들은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타고 도심의 직장으로 이동한다. 집은 도시의 일부가 아니라 시장에서 사고파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어디에 있는가, 어느 학교에 갈 수 있는가, 얼마에 팔 수 있는가가 집의 가치를 결정한다. 도시는 집을 중심으로 평가되고, 집은 다시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언어로 평가된다. 시민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도시보다 집값으로 향한다.

한국의 신도시를 보면 이 현상은 더욱 선명해진다. 주거와 교육이 도시의 핵심 기능이 된 사이, 상업·업무·생산·문화·여가 같은 기능은 ‘잠재적 유해시설’이 되어 서로 다른 구역으로 분리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도 정작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걸어서 누리기 어려워졌다. 아침이면 집에서 직장으로, 저녁이면 직장에서 집으로 이동한다. 쇼핑과 교육, 여가를 위해 다시 이동한다. 도시를 만들고 관리하는 이들에게 효율적으로 정리된 대신, 그곳에서 사는 시민의 하루는 이동으로 잘게 쪼개졌다. 도시의 기능이 분리되면서 집이 도시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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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은 전통적으로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보행자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차로 이동하는 도시’다. 서울의 오래된 강북 골목을 걸어보면 주거와 상점, 식당과 사무실, 시장과 공원이 뒤섞여 있다. 집을 나서면 곧바로 도시가 시작되고, 걸으면서 필요한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집합주택이나 작은 아파트가 위주인 집은 도시의 일부다. 반면 대규모 재개발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에서는 집은 직장, 상업시설과 서로 떨어져 있고 그 사이를 자동차와 대중교통이 연결한다.

흥미로운 점은 오래된 도시 속에 사는 사람일수록 집값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는 점이다. 집을 나서면 시장과 식당, 공원과 일터가 있는 도시가 바로 이어지기에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다. 바로 이것이 조닝이 지워버린 ‘도시’의 실체다. 하워드가 꿈꾼 전원도시는 원래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다.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결합하고 더 인간적인 환경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세기를 거치면서 그 생각의 일부가 기능 분리와 효율의 언어로 번역되고, 다시 자동차와 대규모 개발, 주택 공급과 부동산 시장의 논리와 결합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집은 계속 공급되는데 항상 부족하며, 도시는 계속 확장되는데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이동하며, 도시 안에 살면서도 정작 도시를 누리지 못하는 희한한 곳에서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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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권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카드는 언제나 ‘공급과 수요’라는 경제적 해법이다. 집값이 오르면 공급을 늘리고, 공급이 부족하면 새로운 택지를 개발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깊이 들어갈수록 ‘당국 vs 시장’이라는 구도만 선명해질 뿐, 정작 시민들이 왜 집을 이렇게까지 재산가치로 바라보며 결국 ‘당국’의 상대편인 ‘시장’의 구성원이 돼가는지는 묻지 않는다. 집을 바라보는 우리의 논리가 이미 경제적 관점으로 지나치게 획일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용도지역으로 도시를 분리하고, 주거를 도시의 다른 기능과 떼어놓으면서 집은 점점 하나의 독립된 상품이 되었다. 시민이 집을 주거가 아니라 재산가치로 판단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정책을 내놓아도 부동산 시장의 논리를 뒤집지는 못한다.

집과 학교로만 건설된 오늘날의 신도시.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를 경험할 수 없는 곳이다. 사진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집과 학교로만 건설된 오늘날의 신도시.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를 경험할 수 없는 곳이다. 사진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집값 안정에 급급한 정책 당국이 보지 못하는 진짜 문제는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집을 도시에서 떼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는 집들의 집합이 아니다. 집과 직장, 학교와 시장, 공원과 식당,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걸어서 만나는 관계의 집합이다. 도시를 이 ‘부동산 지옥’에서 구해내려면 더 많은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그 집을 다시 도시와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한번 굳어진 도시를 되돌리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도시의 모양이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누가 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어야 할까?

임우진 | 건축가. 이론보다 현장을, 현상보다 그 원인을, 그리고 건물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공간과 도시를 만들어왔다. 25년간 파리에서 활동 중이며, 여러 나라에 살면서 체화한 통문화적 시선으로 비판보다는 영감에, 우월함보다는 다양성의 가치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관심의 일부를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2022), ‘도시가 말하지 않는 것들’(2026.10. 발간)에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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