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발소리’ 다시 들리자 끊어졌던 세상과도 이어져”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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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락, 사그락.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박종해(65)씨는 집 잔디밭을 걷다 낯선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 소리가 자신의 발걸음을 따라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발소리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잃어버렸던 소리들이 박씨의 일상에 하나둘 돌아왔다. 처음에는 무엇이 내는 소리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참새와 매미, 귀뚜라미 소리를 분간한다. 늘 살던 집 주변에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가 그렇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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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제가 잃어버린 소리가 많았더라고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사는 박씨는 오래도록 왼쪽 귀에 의지했다. 오른쪽 청력이 먼저 떨어졌지만 왼쪽으로 들으면 생활할 만했다. 보청기도 사용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께 왼쪽 귀마저 급격히 나빠졌다. 하루하루 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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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망설여졌다.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앞으로는 조금 불편해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으로 상대의 말을 문자로 바꿔 읽으며 지낼 생각이었다. 지인 모임과 동창회에도 모두 빠지고 조용히 살까 했다. 들리지 않는 만큼 사람을 만나는 자리도 줄이려 했다.
그렇지만 대학병원 간호사인 둘째 딸이 진료를 권했다. 대학병원 상담 이후 박씨의 생각도 달라졌다. 100 살을 넘어 장수하는 경우도 많아진 요즘 , 향후 20년 혹은 30년이 될지도 모르는 노년기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지난해 8월 양쪽 귀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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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처음 기기를 조절할 때는 후회가 밀려왔다. 기대했던 소리 대신 엉뚱하고 낯선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것과 무엇이 내는 소리인지 아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박씨는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면서 소리를 찾아갔다. 예전처럼 음성을 문자로 바꿔주는 기능을 켜두고 통화했는데, 화면을 보지 않아도 알아듣는 말이 늘었다. 놓친 부분만 문자로 확인했다. 집에서는 단어를 익히는 영상을 거의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가량 듣고 글자와 맞춰봤다.
그만두려 했던 모임에도 나갔다. 여럿이 이야기하면 여전히 말을 놓쳤다. 이제는 수술받은 사실을 알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청력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 친구는 자녀와 사위, 며느리가 찾아오면 다른 방으로 간다고 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 핀잔을 들을까봐서였다. 박씨에게도 낯설지 않은 마음이었다.
지금도 웅성거리는 자리에서는 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도 먼저 전화를 걸고 사람들 곁에 앉으려 한다. 그는 “나도 알게 모르게 사람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며 “수술 뒤에는 재활도 해야 하니까 더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마음을 갖게 됐고, 자신감도 많이 높아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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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인공와우와 치매 예방 설명회’에서 인공와우 수술을 한 환자들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
이날 박씨와 함께 경험담을 들려주려 강단에 오른 이는 에너지 공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도형(45)씨였다. 그가 청력 이상을 뚜렷하게 느낀 것은 2020년 초였다.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이비인후과를 찾았는데 양쪽 모두 높은 음역대의 청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그전까지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발전 플랜트와 중공업 분야에서 약 16년간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작업 환경의 소음이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가족력도 없었다. 스스로 여러 이유를 되짚어봤지만 답을 찾기 어려웠다.
2021년부터 보청기를 썼지만 청력은 계속 나빠졌다. 회의실에서도 카페에서도 대화를 알아듣기 어려웠다. 대외 업무가 많아 전화를 자주 받아야 했는데 동료들이 대신 받아줬다. 김씨는 당시를 돌아보며 “회사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동료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이야기했다.
병원에서 인공와우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수술이 두려웠다. 막연한 불안으로 결정을 미루는 사이 몇 년이 흘렀다. 그러다 대학병원에서 수술 뒤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 지난 2월 양쪽 귀 수술을 받았다.
그 뒤로 하루 두세 시간씩 듣기 훈련을 했다. 처음 석 달은 책을 읽어주는 앱으로 받아쓰기를 했다. 들은 단어를 적고 원래 단어와 비교했다. 정확히 들은 것과 문맥으로 짐작한 것을 구분하고, 틀린 단어 옆에는 자신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적었다.
기록이 쌓이자 자주 놓치는 자음과 모음, 조사가 드러났다. 김씨는 이를 한 장으로 요약해 담당자를 만날 때 가져갔다. 한두 달에 한 번 만나는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어려움을 정확히 설명하고 싶었다. 단순히 “잘 안 들린다”고 말하는 대신 어떤 소리를 어떻게 놓치는지 보여줬다. 담당자는 기록을 참고해 기기를 조절했다. 듣기가 나아진 뒤에는 자막을 끄고 영상을 보는 연습도 이어갔다.
설명회 당시 김씨는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한결 수월해졌다며 “회사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따로 있었다. “제가 제일 기분이 좋은 건 아이의 목소리가 이제 잘 들리는 거예요.”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김씨는 난청을 “굉장히 외로운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어려움을 알아주기 힘들고 오해도 생긴다고 했다.
두 사람이 받은 인공와우 수술은 달팽이관 안에 전극을 넣어 청신경을 전기신호로 자극하는 수술이다. 소리를 크게 키우는 보청기와 달리 손상된 달팽이관 감각세포의 기능을 일부 대신한다. 보청기를 착용해도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환자 등을 대상으로 청력과 말소리 이해도 등을 평가해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전신마취 상태에서 귀 뒤 피부를 절개하고 뼈에 작은 통로를 만들어 달팽이관에 가느다란 전극을 넣는다. 신호를 받는 수신·자극기는 귀 뒤 피부 아래에 심는다. 몸 밖에 착용한 장치가 소리를 받아 처리해 보내면 내부 전극이 청신경을 자극하고 뇌가 이를 소리로 받아들인다. 달팽이관 자체를 교체하는 수술은 아니다.
수술 뒤에는 개인에게 맞게 전기 자극을 조절하는 ‘매핑’과 새로운 소리를 이해하는 재활이 필요하다. 예전 청력이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며 적응 속도와 말소리를 이해하는 정도에도 개인차가 있다. 박씨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김씨가 받아쓰기를 이어간 시간도 그렇게 소리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최병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보청기를 써도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인공와우 수술 시기를 전문의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청기로 3분의 1 정도 알아들으니 이것을 쓰다가 완전히 못 알아듣게 되면 그때 수술하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며 “적어도 데이터로 보면 그렇게 기다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백세 시대를 맞아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잘 듣고 소통하며 사느냐’가 삶의 질을 가르는 기준이 된 지금 , 난청을 방치하기보다는 하루빨리 치료해 세상과의 대화를 다시 열어가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환자들의 경과를 분석했더니 보청기를 착용해도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때까지 기다린 환자보다 일부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때 수술받은 환자들의 회복이 더 빨랐다고 설명했다 .
최근에는 고령에 수술받는 이도 늘었다. 신체 상태에 따라 일부 환자는 국소마취로 수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환자가 같은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난청이 지속된 기간과 남아 있는 청력, 인지 기능, 전신 건강 상태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미 심한 치매가 진행됐거나 오랫동안 소리를 듣지 못해 청각·언어 기능이 크게 떨어진 경우에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특히 고령 환자는 기기를 꾸준히 착용하고 조절받으며 재활을 이어가도록 돕는 사람이 중요하다. 최 교수는 주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초고령 환자 중에는 수술 뒤 기기 사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에 더해 퇴원 뒤 누가 기기 사용을 돕고 병원에 동행할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를 익숙한 말과 대화로 이어가는 데는 환자의 연습과 함께 곁에서 기다리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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