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 왜 ‘파크’가 붙었을까…잿빛 도시가 품은 초록빛 갈망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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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의 공간이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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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를 앞둔 서울 잠실야구장에 처음 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1982년 7월17일, 구장 완공을 기념해 열린 ‘우수 고교 초청 야구대회’ 결승전. 경북고 유격수 류중일이 부산고 투수 김종석의 변화구를 받아쳐 잠실야구장 첫 홈런을 역사 속에 남겼다. 그러나 홈런보다 내 기억 깊숙이 새겨진 건 드넓은 하늘과 초록색 그라운드의 장쾌한 협연이다. 그 어느 공원보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풍경.
공원과 야구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공간에는 공통의 뿌리가 있다. 19세기 미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다. 인구가 폭발하고 공장과 주택이 빽빽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일상은 혼잡과 소음, 오염으로 채워졌다. 이민 노동자가 몰려든 주거지는 과밀했고, 빈터와 녹지는 개발의 속도만큼 빠르게 도시에서 밀려났다.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전원을 갈망했다. 도시를 떠나지 않고도 풀과 나무,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만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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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나온 답은 뜻밖에도 공동묘지였다. 1831년 보스턴 근교에 문을 연 마운트 오번 묘지는 죽은 자만을 위한 땅이 아니었다. 완만한 구릉과 연못, 울창한 숲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을 낸 그림 같은 풍경은 산책과 마차 나들이를 즐기는 ‘플레저 그라운드’이기도 했다. 1838년 문을 연 브루클린의 그린우드 묘지는 1860년대 초 한해 방문객이 50만명에 이르는 명소가 됐다. 시민들은 자연을 닮은 풍경 속을 거닐기 위해 묘지를 찾았다. 산업도시의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피난처였다.

묘지가 도시 외곽에 전원을 옮겨놓았다면, 공원은 전원 풍경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였다. 개발의 물결이 맨해튼을 뒤덮던 1850년대 뉴욕에서는 더 늦기 전에 대형 공공녹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가 조경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설계한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다. 초원과 호수, 숲과 구릉을 엮은 장대한 풍경은 얼핏 자연 그대로처럼 보이지만 실은 치밀하게 설계된 인공 자연이다. 시민들이 도시의 소란을 잊고 잠시 전원에 온 듯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 서로 다른 공간을 하나로 묶는 라틴어 표현이 있다. ‘도시 속의 전원’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루스 인 우르베’(rus in urbe). 자연을 도시의 반대편에 남겨두지 않고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상이다. 건축비평가 폴 골드버거의 책 ‘볼파크: 미국 도시의 야구’(2019, 국내 미번역)는 19세기 야구장의 탄생을 이 계보 안에서 해석한다. 전원형 공동묘지와 도시공원, 야구장이 같은 시대에 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두 도시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금이라도 접촉하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었다.
야구장은 그 열망을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실현한 공간이었다. 옴스테드의 공원은 자연을 닮은 풍경을 바라보고 거닐며 심신을 회복하는 곳이었다. 공동묘지와 공원이 성찰의 공간이었다면, 야구장은 참여의 장소였다. 사람들은 야구장에서 거리를 두고 풍경을 관조하지 않는다. 뛰고 소리 지르고 박수 치고 마시며 환호한다. 공원은 자연 속에서 도시의 소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야구장은 초록 풍경 한가운데서 도시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골드버거의 해석처럼, 공원의 공공성은 점잖고 민주적이었고 야구장의 공공성은 민주적이면서도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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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차이도 있다. 공원은 도시를 최대한 보이지 않게 가리려 했지만, 야구장은 도시를 감추지 않았다. 외야 너머로 고층 건물과 공장 굴뚝이 보이고 전차와 기차가 지나갔다. 야구장은 팽창하는 도시의 자투리땅에 자리 잡았고 주변의 거친 산업 풍경과 뒤섞였다. 야구장은 녹색 전원을 도시 안으로 들여오면서도 도시를 지우지 않았다. 공원이 도시를 잊게 했다면, 야구장은 도시를 새롭게 보게 했다. 야구장은 도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도시에서 탈출하고 동시에 도시를 경험하는 역설의 공간이었다.
이 역설은 야구장의 형태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야구장은 한 공간 안에 다른 두 세계를 품고 있다. 내야의 다이아몬드는 정확한 규격을 따른다. 홈과 세개 베이스를 연결하는 거리와 각도는 어느 구장에서나 똑같다. 반면 두 파울라인 사이에 펼쳐지는 외야는 유연하다. 축구장이나 농구장과 달리 야구의 외야는 구장마다 모양과 길이가 다르다. 직선과 엄격한 치수가 지배하는 내야가 ‘우르베’(도시)라면, 넓고 느슨하게 펼쳐지는 외야는 ‘루스’(전원)인 셈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전원이 실제 도시를 만나면서 생긴 형태다. 야구장들은 이미 그어진 가로망과 작은 필지, 철도와 건물 사이에 몸을 끼워 넣어야 했다. 길을 만나면 담장이 꺾이고 건물을 만나면 외야가 짧아졌다. 좌익과 우익의 거리가 달라지고 기묘한 모서리와 높은 벽이 생겼다. 보스턴 펜웨이 파크의 왼쪽 외야를 가로막은 높이 11미터의 담장 ‘그린 몬스터’도 도시 블록에 경기장을 맞추면서 생겨난 결과다. 불규칙한 외야 형태는 설계자의 기발한 조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야구장과 도시가 협상한 산물이다. 도시의 제약은 야구장의 약점이 아니라 개성과 매력을 만드는 재료였다. 야구장에는 주변의 도시 구조와 형태가 지문처럼 찍혔다.

야구장에는 스타디움이나 아레나 대신 주로 ‘파크’라는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이 파크는 센트럴 파크와 같지 않다. 센트럴 파크는 도시를 가려 전원의 환상을 만들었지만, 야구장은 전원을 품으면서도 도시를 그대로 드러냈다. 도시와 전원이 서로에 형태를 내어준 풍경이다. 전원에 대한 갈망에서 태어난 야구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의 일상과 얽혀 그 도시만의 얼굴이 됐다.
야구장 풍경은 담장 안의 초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장 밖 광장과 지하철역, 골목과 식당으로 이어지며 번진다. 야구장은 도시의 일상을 품고, 도시는 야구장의 시간을 기억한다. 곧 사라질 잠실야구장을 훗날 떠올리면 1982년 그날의 하늘과 초록 그라운드, 그리고 서울의 한 시절이 포개져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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