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새 취미, 느긋한데 짜릿해…‘힐링과 도파민 사이’ 오래 기다려 발견하는 재미, 탐조
붉은머리오목눈이. 최혜나(@cha_rin2) 제공
참새. 박임자(@_bird_books) 제공
해오라기. 현지윤(@birdwatchingtoon) 제공
“저기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탐조(探鳥) 활동을 하던 정연서씨가 나지막이 외쳤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잎사귀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씨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어떤 새인지 궁금해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때 중년 마니아들이 즐기는 전문 취미로 여겨졌던 탐조가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새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새의 이름을 알아가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며 자신만의 콘텐츠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한다. 2030세대는 무엇 때문에 탐조에 빠져들고 있는 걸까.
힐링과 도파민, 그 사이
2030세대 사이에서 탐조가 힐링과 발견의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면서, SNS로 새 사진과 영상, 만화 등을 공유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최혜나(@cha_rin2) 제공
입문용 쌍안경과
조류도감만 있다면
탐조 준비 완료!
지난 6월 니콘이 진행한 ‘탐조 피크닉’에는 400여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이 가운데 약 70%가 2030세대였다. 대학가와 직장에도 탐조 동아리가 생겨나고 있다. 젊은 세대의 탐조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왕립조류보호협회(RSPB)에 따르면 영국의 16~29세 정기 탐조 인구는 2018년 이후 1088% 늘어 약 75만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전체 탐조 인구가 47%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젊은층의 증가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이 꼽는 탐조의 첫 번째 매력은 힐링이다. 새를 찾으려면 걸음을 늦추고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주변을 오래 살펴야 한다. 짧고 빠른 콘텐츠가 소비되는 일상과는 정반대 경험이다.
티(tea) 큐레이터 최혜나씨도 자연을 바라보다 탐조에 물들었다. 차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나무와 자연을 향한 애정이 주변을 오가는 새에게로 이어졌다. 우연히 가까이에서 본 새의 색깔과 생김새에 매료된 뒤에는 습지와 생태공원에서 열리는 탐조 프로그램도 찾아다녔다.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는데요. 보고 싶은 새가 언제 나타날지, 아예 나타나지 않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저는 그 경험마저 힐링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탐조 덕에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고, 볕을 쬐고, 다람쥐가 모아놓은 도토리 창고를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탐조를 느긋하게 자연을 바라보는 취미라고만 생각하면 절반만 본 셈이다. 오래 기다린 끝에 무언가를 발견하는 짜릿함 역시 탐조의 매력이다. 대학생 조서우씨가 탐조에 빠진 것도 바로 이 ‘발견의 순간’ 때문이었다.
“탐조에는 묘한 양면성이 있어요. 시작하면 한동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작은 움직임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갑자기 집중하게 되죠. 오래 기다린 끝에 새를 발견했을 때 오는 짧고 선명한 쾌감이 있어요. 그래서 탐조는 ‘힐링과 도파민 사이 어딘가에 놓인 취미’ 같아요.”
‘희귀한 새’에서 ‘우리 동네 새’로
탐조가 젊은 세대에게 가까워진 데에는 팬데믹을 계기로 달라진 탐조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탐조책방’을 운영하며 국내 탐조 문화의 변화를 지켜본 박임자씨에 따르면 책방을 연 2001년 무렵만 해도 국내 탐조 인구는 약 1000명 수준이었다. 당시 탐조는 전국의 이름난 습지나 철새도래지를 찾아 희귀한 새를 관찰하는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변화는 2020년 즈음 찾아왔다. 코로나19로 먼 곳으로의 이동이 어려워진 탐조인들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박씨도 ‘아파트 탐조단’을 꾸렸다. 그 덕에 매일 오가는 아파트 정원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새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파트 탐조단이 유명해지면서 동네 산책에서도 새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탐조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시작하는 사람도 많아졌죠.”
탐조가 일상 가까이 들어오면서 장비의 부담도 줄었다. 박씨는 10만원 안팎의 입문용 쌍안경과 조류도감만으로도 주변의 새를 관찰하며 이름과 특징을 익힐 수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만으로도 충분하다. 카메라 기능이 좋아지면서 쌍안경에 밀착해 사진과 영상을 찍는 ‘어포컬 촬영’도 가능하다.
“탐조를 시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집 근처 공원이나 하천변을 걷다 새를 발견하고, 쌍안경이나 스마트폰으로 모습을 확인한 뒤 조류도감이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름을 찾아보는 것부터죠. 멀리 떠나야만 할 수 있던 탐조가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된 셈이에요.”
새를 보고, 기록하고, 공유한다
박임자(@_bird_books) 제공
젊은 탐조인들의 등장은 SNS와 대중문화에서도 감지된다. 인스타그램에서 ‘탐조’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14만개를 넘어섰고, 실제 관찰 기록을 공유하는 게시물도 1만7000여개에 달한다. 소설가 정세랑, 배우 김태리, 모델 이소라 등 유명인들이 탐조 취미를 언급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온라인에서 커진 관심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수목원과 국립공원에서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탐조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소수 마니아의 취미였던 탐조가 SNS와 대중문화를 거쳐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생활 속 취미로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탐조를 즐기고 기록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새를 직접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과 영상, 만화 등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을 남기고 공유한다.
현지윤씨가 연재하는 인스타툰 <탐조일기>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그는 대학생 시절 길에 떨어진 새끼 직박구리를 구조하려 SNS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돼 탐조라는 취미를 알게 됐다. 이후 새를 관찰하며 겪은 일과 탐조인들 사이 유머를 만화로 담아내고 있다.
“새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제 시선 또한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차차 넓어졌어요. 새가 앉아 있는 나무가 궁금해지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쉬는지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새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식물과 곤충, 버섯을 찾아보고는 해요. 최근에는 식물도감을 사서 새들이 좋아하는 나무와 풀을 공부하고 있어요.”
하지만 새를 많이 볼수록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진다. 탐조의 기본은 새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보고 싶은 새를 불러내기 위해 소리를 틀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날려 보내서는 안 된다. 강아지를 일부러 새가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김수미 생태환경전문가는 “새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새가 살아가는 환경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이라며 “새가 살아갈 자리를 지켜주는 것은 결국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