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소행’ 지목한 FBI 출신 전문가···“북한, AI로 해킹 표적 탐지하는 역량 ‘슈퍼파워’ 수준”
“북한 해커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잠재적인 공격 표적을 찾아내는 역량은 가히 ‘초능력’(슈퍼파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 대한 북한의 해킹을 먼저 지목해 발표한 민간 블록체인 분석기관 ‘TRM랩스’의 닉 칼슨 선임 조사관은 4일 경향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AI로 인해 북한의 해킹 역량이 한층 진화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 해커 조직, 특히 이번 바이낸스 해킹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트레이터트레이터’가 “굉장히 정교한 테크닉을 활용해 타겟팅(표적 탐지)을 하게 됐다”면서 “원래도 북한은 순수 코드 공격보다는 사회공학적 측면에 강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만 시스템 취약성을 공격하기보다 인간의 실수나 심리적 조작 등을 이용해 시스템에 침투하는 ‘사회공학적 해킹’을 벌였다는 의미다.
칼슨 조사관은 특히 “AI로 인해 보안 취약점(CVE)가 2~3배 이상 증가했고 더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며 “특히 최첨단 연구소의 연구를 사실상 훔쳐서 만든 중국산 오픈소스 증류 모델이 더 널리 보급되면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기술로 인한 해킹 역량 고도화의 위험성을 지적한 그는 “한 번 나온 지니를 병 속에 다시 가두기(put the genie back in the bottle)는 정말 어렵다”고도 말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관을 지낸 닉 칼슨 ‘TRM 랩스’ 선임 조사관이 4일 경향신문과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간 블록체인 분석기관 TRM 랩스는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 대한 해킹이 발생한 직후, 북한의 소행임을 가장 먼저 밝혀냈다. zoom 화면캡처
칼슨 조사관은 2009~2021년 연방수사국(FBI)에 재직하며 북한의 불법 자금 세탁을 추적해 왔고, 이후 블록체인 자료 분석을 통해 북한의 가상자산 탈취 실태를 추적·분석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북한의 제재 회피 수법을 분석해 온 그는 북한의 가상자산 탈취가 중국 범죄조직과 연계되어 벌어지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그는 “탈취 이전 단계(left of the theft)에는 북한 해커들이 있지만 그 이후 돈세탁 단계에선 중국 범죄조직에 하청을 주는 구조”라면서 “자금 세탁 단계별로 하청 조직에 통상 3~5퍼센트 수수료를 지불하는데, 전체 (탈취 자산)의 30%를 지불하더라도 북한에는 엄청난 수입”이라고 말했다. 북한 해커들을 관리하는 정찰총국 인원은 수백명이더라도 실제 사이버 작전 투입 인력은 “아마도 20여명(a couple dozen)에 그칠 것”으로도 내다봤다. 트레이더트레이터나 라자루스 등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조직이 수억~수십억 달러를 탈취하는 구조인 만큼 북한이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FBI가 북한을 배후로 보고 정식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4일 이틀 연속 담화를 통해 해킹 의혹을 부인했다. 칼슨 조사관은 이에 대해 북한의 주장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면서 “법정에 가서 (해킹에 대한) 북한 배후를 기꺼이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킹 발생 직후 북한 소행임을 결론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선 “북한의 핵심적인 특징은 다른 지능형 지속 위협(APT)과 비교해도 매우 허술하다(extremely sloppy)는 점”이라며 “이는 그들이 후과에 직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체가 발각되어 수사 및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범행 이후 흔적을 감추는 데 신경쓰기보다는 “오로지 자산을 빨리 팔아치워서 현금화하는 것만을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북한 해커 조직이 다음에 겨냥할 가능성이 있는 공격 표적에 대해선 “대규모 가상자산을 다루는 누구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다. 바이낸스는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에 첫 번째 표적이 됐다”고 말했다.
칼슨은 이번 바이낸스 해킹 사태 이후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와 서클이 탈취 자산을 긴급 동결한 것은 다행스러웠다면서 “크립토(가상자산)가 범죄자들에게만 특별히 유리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도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 동결 덕분에 “북한은 바이낸스에서 빼돌린 63억 달러 전체가 아니라 아마 30억 달러 정도를 챙겼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성공 사례로, 향후 북한이나 중국 파트너들을 상대로 추가 자금 동결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아직까진 공격자가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해킹 등 악의적 사이버 활동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자금줄이 막힌 북한에는 가장 큰 핵·미사일 개발 자금원이다. ‘대북제재 CCTV’ 역할을 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해체되고, 중·러가 대북제재 이행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북한의 제재 회피는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칼슨 조사관은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 등 미국이 주도해온 전통적 금융 제재도 약화됐다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의미있게 협력하지 않으면 (제재는) 불가능한데, 중국은 적극적으로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낸스 사태로 중국이 대북 제재 협력에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북한이 몇 년전 중국계 가상화폐 거래소 HTX나 폴로닉스 등을 대규모로 해킹했고 바이낸스 역시 중국계 사업자들이 소유하고 있다면서도 “이번에 중국도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전례를 보면 결국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가 북한의 가상자산 탈취 등 사이버 위협 대응 공조를 강화하던 2023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현대판 해적국가’로 지칭한 칼슨 조사관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만이 국가의 사이버 역량을 범죄화한다. 세계 어떤 적성국도 하지 않는 일”이라며 “미국, 한국, 일본이 북한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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