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 의무화, 소수주주가 이사회 문을 두드리는 시대 [바른 컴플라이언스리포트]

2026년 9월 10일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는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해 개정된 상법 중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핵심 규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상장회사가 정관에 집중투표 배제 조항을 두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 변화는 단순한 주주총회 절차의 변경이 아니다.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관한 기본 규칙이 바뀐 것이다.
소수주주에게 열린 이사회 문
집중투표제는 말 그대로 주주의 표를 특정 이사 후보에게 집중해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임하는 주주총회에서 1주를 가진 주주는 3개의 의결권을 갖게 되고, 이를 3명의 후보에게 나누어 행사할 수도,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 소수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다.
물론 집중투표제가 시행되었다고 해서 모든 회사에서 자동으로 집중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법상 요건을 갖춘 주주가 정해진 기간 안에 집중투표를 청구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대규모 상장회사가 정관으로 그 가능성 자체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은 더 이상 회사가 제시한 후보 명단을 형식적으로 승인받는 절차에 그치기 어렵다.
20년 가까이 주주총회와 경영권 분쟁을 자문해 오며 느낀 것은 이사회 구성이 많은 분쟁의 출발이자 동시에 해법이라는 점이다.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뒤 이해관계를 조정하려 하면 비용은 커지고 신뢰는 훼손된다. 반대로 이사회 구성 단계에서부터 독립성, 전문성, 절차적 공정성이 확보되어 있다면 상당수 갈등은 사전에 대비할 수 있다.
기업이 준비해야 할 과제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우선 정관상 집중투표 배제 조항을 정비하고, 이사 수의 상한, 이사 임기 구조, 후보 추천 절차, 전자투표와 위임장 권유 절차를 점검해야 한다. 이사를 한 번에 여러 명 선임할수록 집중투표의 효과는 커진다. 따라서 특정 시기에 이사 임기 만료가 과도하게 몰려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집중투표의 효과를 줄이기 위해 이사 수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임기 구조를 무리하게 설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자칫 소수주주의 이사회 접근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제도의 효과를 우회하는 기술이 아니라, 회사의 규모와 사업 구조에 맞는 합리적인 이사회 구성 원칙을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다.
집중투표를 통해 선임된 이사에 대한 이해도 정확해야 한다. 특정 주주의 지지를 받아 선임되었다고 해서 그 이사가 특정 주주의 대리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임 경위와 무관하게 모든 이사는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회사 역시 충분한 정보 제공과 토론 기회를 보장해 이사회가 대립의 장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의 장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기업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규제가 아니다.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의사를 단순히 추인하는 기구가 아니라, 다양한 주주의 관점과 시장의 감시를 반영하는 기관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장치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이사 선임 관행이 오늘부터는 지배구조 리스크로 평가될 수 있다.
좋은 기업의 기준은 더 이상 실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가 이사회에 들어오고, 어떤 절차로 선임되며, 그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기업가치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9월 10일 시행된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그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신호다. 시장은 앞으로 다양한 주주의 목소리를 이사회 안에서 책임 있게 소화할 수 있는 기업에 더 높은 신뢰를 보낼 것이다.
[바른 컴플라이언스리포트]에서는 법무법인 바른 기업법무2그룹 변호사들이 기업경영에 필요한 컴플라이언스 이슈를 주제별로 선별해 연재합니다. 최재웅 변호사는 인수합병(M&A) 분야 스페셜리스트로 2025년부터 법무법인 바른의 최연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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