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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0, 2026

이름 없던 '아랍인'에게 목소리…프랑수아 오종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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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래원

카뮈의 원작 소설 시각적 재해석…흑백 화면에 담아낸 강렬한 태양

뫼르소의 무심한 일상·부조리 속 암울한 식민지 알제리 현실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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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방인'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이렇듯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재해석한 영화 '이방인'에서는 들을 수 없는 문장이다.

영화는 주인공 뫼르소의 말 대신 행동과 표정을 따라가며 원작의 첫 장을 펼쳐 보인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마치 남의 일인 듯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던 뫼르소(뱅자맹 부아쟁 분)는 다음 날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 마리(레베카 마르데르)와 수영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며 웃는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뫼르소의 모습은 카뮈가 1942년 원작 소설 속에 그려낸 인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연인이 된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답하고, 결혼하고 싶냐는 질문에도 상대가 원한다면 할 수도 있다는 듯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 뫼르소가 이웃 레몽(피에르 로탱)의 일에 엮여 해변을 찾았다가 한 아랍인 남성을 총으로 쏴 죽이면서 그의 무심한 일상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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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방인'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여기까지는 원작의 이야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가지만, 카뮈가 80여년 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가장 큰 변화는 뫼르소에게 살해당하는 아랍인과 그의 누나다. 소설에서 피해자는 이름 없이 그저 '아랍인'으로 불리지만, 영화는 그의 가족과 삶을 보여주고 누이에게 '제밀라'라는 이름과 목소리를 찾아준다.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었는지, 장례식 다음 날 여자와 영화를 봤는지가 쟁점이 되고, 제밀라는 정작 죽은 동생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을 지켜본다.

프랑스인과 아랍인이 같은 알제리에 살면서도 거리와 해변, 극장에서 좀처럼 뒤섞이지 않는 모습도 반복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뫼르소 개인의 부조리를 다룬 이야기 뒤편에 감춰진 당시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오종 감독은 "원작에서 이름조차 없는 아랍인의 누이는 영화에서 이름과 목소리, 의식을 가진 인물이 됐다"며 "아랍인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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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방인'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리의 존재감도 커졌다. 뫼르소에게 끌려다니는 연인에 머무르지 않고 위험한 레몽과 어울리는 그를 말리거나 그의 무심한 태도를 질책한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 뫼르소의 모습에 상처받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

오종 감독은 "마리를 순진한 연인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며 카뮈가 소설에 남겨둔 두 여성의 이야기를 확장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전체가 흑백으로 촬영됐고, 전반부에는 대사도 많지 않다. 장례식장의 무거운 공기부터 바다에서 헤엄치는 몸,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 눈을 뜨기 힘들 만큼 강렬한 알제리의 햇빛까지 감각적인 이미지가 화면을 채운다.

특히 살인이 벌어지는 해변에서는 쉴 새 없이 내리쬐는 태양과 뫼르소의 가쁜 숨, 번들거리는 땀이 겹치며 더위와 눈부심을 강하게 부각한다.

눈부신 햇빛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뫼르소에게 강렬한 태양이 얼마나 압도적인 감각이었는지를 시각과 청각으로 체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오종 감독은 소설 전반부를 "감각적이고 거의 대사가 없으며 육체적이고 느린 리듬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8명의 여인들'(2002), '스위밍 풀'(2003), '신의 은총으로'(2019) 등을 연출한 오종 감독은 현대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로, '이방인'은 지난해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처음 공개됐다.

30일 개봉.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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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방인'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on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20일 08시01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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