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박원순 회고’ 두고 공방…성폭력 반성과 대책은 뒷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회고하는 글을 SNS에 올리자 여성단체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비판에 나섰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 공방으로 번지면서 정작 정치권 성폭력 문제에 대한 반성과 대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등은 지난 12일 이 대통령의 박 전 시장 관련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공개 발언은 개인적 추억 회고에 머물지 않는다”며 “박 전 시장을 추켜세우는 일은 성폭력과 그에 대한 책임, 피해자의 목소리를 다시 지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엑스에 SNS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올리며 “고 박원순 시장님이 생각난다. 뛰어난 아이디어맨이셨고 언제나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하시며 즐기시던 분”이라고 썼다.
단체들은 이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며 피해자를 지우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같은 날 논평을 내고 “피해자는 지금도 사건이 남긴 정신적·감정적 고통을 견디며 일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 있다”며 “대통령이 공개적인 SNS를 통해 가해 당사자를 ‘소통의 모범’으로 긍정 소환하는 것은 피해자의 현실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 부하 직원인 서울시 공무원에게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지 이틀 뒤 숨진 채 발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듬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 전 시장의 유족은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박 전 시장이 실제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동을 했다’며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피해자가 다시 논쟁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자가 여전히 2차 피해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글은 무책임한 ‘논쟁’을 다시 불러냈다”며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근거로, 다른 한쪽에서는 사건을 다시 다투려는 계기로 쓰면서 피해자는 논쟁의 대상으로 소모된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성폭력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는 정치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여야 모두 비동의강간죄 제정 등 젠더폭력 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성폭력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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