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까지 절단케 한, 순창 명문가 집안의 멍에 [금자㉝]

광고
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가계가 너무 방대합니다. 표를 그려야 파악이 될 거 같아요.”(기자)
“증조할아버지까지 이야기하려니 복잡해요.”(노주상)
국회프락치 사건을 말할 때마다 늘 맨 앞에 나오는 이가 노일환(1914~1982)이다.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나와 일제 강점기와 해방 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내고 1948년 한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된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기소하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검찰부 차장이었고, 남북협상과 평화통일, 외군철퇴를 주장한 소장파의 핵심 리더였다. 남로당 공작원 이삼혁(하사복·김사복과 동일인)의 돈을 받고 약점을 잡혀 남로당에 가입해 지령을 수행했다는 가장 무거운 혐의가 그에게 씌워져 있었다. 공판은 노일환 의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판사는 다른 의원들에게 ‘노일환에 동조했는지’ 여부를 묻기도 했다.
광고
노일환의 후손을 만났다. 국회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제헌국회의원 가족 중에선 늦게 접촉한 편이다. 1950년생으로 유복자인 막내아들이 생존해있지만, 인터뷰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반민특위 기념사업회 등에서 이 집안을 대표해 활동하는 이는 큰손자 노주상(58), 조카 노시수(67) 두 사람이다. 노주상 선생은 노일환의 큰아들인 노시학(1940~2021)의 큰아들이다. 노시수 선생은 노일환의 동생인 노국환(1923~1987)의 막내아들이다.
9월의 첫날 서울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스프링으로 묶인 수백여쪽 되는 두툼한 서류철을 가방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2013년 12월 국무총리 소속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및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다. 여기에 첨부된 진술서엔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전 노일환이 사라진 뒤 남은 혈육들이 겪어야 했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광고
광고
“이튿날 한낮에 들이닥친 경찰이 선친을 연행해 갔습니다. 몽둥이찜질이 시작됐습니다. 백부님과 같이 전주에 내려왔을 텐데 백부님이 숨은 곳이 어디냐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선친께서는 얼마나 고문이 심하셨던지 끙끙 앓으시면서 옆구리가 결리고 온몸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경관은 큰 당숙을 대소변 보는 곳의 바로 옆에 놓고 갔습니다. 큰 당숙은 다리가 무릎 위쪽에서 부러져 있었습니다. (중략) 경찰은 응급도, 치료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중략)순창 쌍치의 만석꾼의 큰아들이 경찰 고문으로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문이 곧 전주 시내에 온통 퍼졌습니다. (중략) 큰 당숙의 다리는 성심여고 부근에 있는 성심병원*에서 무릎 위 절단 수술을 했습니다. 부러진 다리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광고
“형사 한 명이 어머니를 가리키면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누군가 백부님의 성함을 밝히면서 그 가족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형사는 어머니에게 다가와서 ‘인공 때 서울에서 잘 먹고 잘살았겠다’고 하면서 피우던 담뱃불을 어머니의 이마 위에 대고서 짓이겨서 껐다고 합니다.”

진술서에서 노일환은 ‘백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노일환의 동생 노국환의 큰아들이자 노시수의 큰형인 노시선(1945~2019)이 진술서를 작성했다. 사건 당시 5살이었던 자신과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다. 그는 2000년 무렵부터 국회프락치 사건 유족들이 소규모로 모임을 이어갈 때 가장 먼저 ‘진상규명 운동’의 당위성을 깨닫고 주장해온 인물이라고 한다. 7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지금은 노주상·노시수 선생이 대신하고 있다.
노일환은 1950년 9월 중순, 막 이사 온 서울 삼청동의 집에서 도배하다가 장도리와 못을 구해오겠다며 밖으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게 가족들의 증언이다. 그가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을 몰랐던 전주의 경찰들은 그의 형제와 인척의 집에 들이닥쳐 노일환이 숨은 곳이 어디냐고 추궁했다. 동생 노국환은 몽둥이찜질 등 고문을 당했다. 노국환의 부인 김병호(1924~2012)는 취조를 받다 이마에 담뱃불 지짐을 당했다. 노일환의 큰아버지 노병준(1883~1944)** 의 아들 노두환(1903~1965, 당시 한민당 전북도당 부위원장)은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맞아 피투성이가 된 뒤 임시유치장으로 쓰는 창고에 아무렇게나 열흘간 방치됐다가 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했다.
“증조할아버지, 즉 할아버지 노일환의 아버지는 노병권이라는 분으로….”(노주상)
광고
“노일환 의원님 동생이자 저희 아버지인 노국환은 1941년 함흥형무소에….”(노시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득히 먼 190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노주상의 증조할아버지 노병권(1897~1961)은 전북 순창군 쌍치면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병권의 형 노병준은 중추원 의관을 지낸 십촌형 노병훈(1868~?)과 함께 1909년 쌍치면에 사립 순성학교를 설립했는데, 이는 1913년 세워진 쌍치공립보통학교(현 쌍치초등학교)의 전신이다. 형과 함께 지역에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던 노병권은 한민당을 세운 김성수(1891~1955), 송진우(1890~1945)와도 깊이 교유하는 사이였다. 노일환이 한민당 소속으로 고향인 순창에서 5·10선거에 출마한 일도 김성수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일파 척결을 위한 반민법(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에 앞장서고 반민특위 특별검찰부 차장을 맡아 박흥식·최남선 등을 기소했던 노일환이 김연수(1896~1979)까지 기소하면서 김성수와 노씨 집안의 관계가 틀어졌다. 김연수는 김성수의 친동생이다.
민족주의 기풍을 지닌 노씨 집안에서 노일환의 동생 노국환이 중앙고보 재학 시절 ‘5인 독서회’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감옥에 다녀온 일은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남았다. ‘5인 독서회’는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중앙고보생들이 결성한 비밀 독서회 모임이었다. 이 비밀모임이 경찰에 발각되면서 노국환은 함흥형무소에 수감돼 혹독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그러나 9년 만인 1950년 형 노일환 때문에 해방된 내 나라의 경찰에게 고문을 받은 일은 결코 훈장이 될 수 없었다.
“고문을 나이 어린 자식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윗세대의 미덕입니다.“
노시선은 진술서에서 구체적인 고문 피해 사례로 들어가기 전에 위와 같은 문장을 적어놓았다. 긴 세월 숨죽여 참아온 아픔이 그 말 속에 조용히 묻어났다. 자녀들에게 고문받은 일을 말하는 것은, 더욱이 이후 수사기관의 사찰과 연좌제로 집안이 어떻게 쑥대밭이 되어 파탄 일로를 겪었는지를 소상히 밝히는 것은 미덕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말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가족의 비밀에 접근한다. 한국전쟁 18년 뒤 태어나 아무것도 몰랐던 노주상 선생도 뒤늦게 자연히 알게 됐다. 그는 카페에서 헤어진 뒤 “어떻게 국회프락치 사건에 눈뜨게 되었느냐, 할아버지대 일인데 너무 멀게 느껴지지 않느냐”는 카톡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보내왔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부재와 연좌제라는 굴레는 숨 쉬듯 곁에 있던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머니가 산파 일로 겨우 우리 삼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고, 우리 집은 왜 이럴까 하는 막연한 그늘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 심각하게 눈을 뜨고 역사적·법적 진실을 직시하게 된 첫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을 왔지만 형편은 늘 어려웠고, 고려대에 입학했던 누나가 여름방학 때 차가운 자취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렇지 않아도 약했던 아버지는 공황장애와 노이로제, 알코올에 의지하며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성인이 되어 돌아보니 우리 가족을 덮친 이 모든 절망과 비극의 뿌리가 결국 국회프락치 사건이라는 국가폭력과 연좌제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진술서에는 노두환이 다리를 ‘성심병원’에서 절단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예수병원’으로 추정된다. 노두환은 수술 전에도 예수병원에 입원했다. 노두환은 다리 절단 뒤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쌍치면 노씨 집성촌 친인척들의 도움으로 지게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노병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 장관(2021.5.~2022.5)을 지낸 노형욱의 할아버지이다.
·***노국환은 1941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21년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