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런 세계관이…극장 점령한 ‘치이카와’의 비밀
<치아카와 : 인어섬의 비밀> 한 장면. CJ ENM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이 국내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국내 개봉 첫날 12만명이 관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영화는 개봉 나흘 차인 지난 3일까지 46만361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관람 뒤 지급되는 기념상품(굿즈)를 받기 위해 관람객들이 영화관 오픈런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지난 7월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는 누적관객 1133만명을 돌파하며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15위에 올랐다.
이번 흥행을 영화 한 편의 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미 국내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원작 <치이카와>가 캐릭터의 매력과 세계관, 적극적인 상품화 등으로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온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의 흥행을 이끈 원작의 힘을 세 가지 특징으로 살펴봤다.
애니메이션 <치이카와>(먼작귀) 주인공 삼인방. 왼쪽부터 토끼(우사기), 치이카와, 가르마(하치와레). 치이카와마켓 갈무리 ⓒnagano
귀여운 얼굴 뒤, 노동과 생존의 세계
<치아카와 : 인어섬의 비밀> 한 장면. CJ ENM 제공
<치아카와 : 인어섬의 비밀> 한 장면. CJ ENM 제공
<치이카와>(なんか小さくてかわいいやつ,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의 준말)는 2017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엑스에 올린 일러스트에서 출발한 만화다. 국내에서는 ‘먼작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잘 울지만 용감한 주인공 치이카와,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토끼(우사기), 고양이를 닮은 가르마(하치와레)의 우정을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고민들을 담아냈다. 만화가 인기를 얻어 TV애니메이션화 됐고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은 첫 극장판이다.
극장판 영화는 치이카와 일행이 날아온 전단지를 받으며 시작된다. 간단한 ‘토벌’(사냥)을 해주면 큰 보상을 주고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도 무료라는 것. 홍보에 혹한 이들은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인어섬으로 향한다. 인어섬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분위기는 밝고 유쾌하지만, 큰 보상이 걸린 토벌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예상 밖의 공포와 긴장으로 치닫는다.
이는 원작의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몸보다 머리가 더 큰 약 ‘1.5등신’ 비율의 캐릭터들은 한없이 귀여워 보이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서늘하고 잔혹하다. ‘먼작귀족’이라 불리는 작은 생명체들은 풀 뽑기, 상품에 스티커 붙이기 같은 일용직 노동으로 돈을 벌고, 더 큰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괴물 ‘토벌에 나섰다가 오히려 잡아먹히기도 한다.
치이카와는 보수를 높이기 위해 자격증 시험을 치지만 여러 번 낙방하고, 친구들은 매일 성실히 노력하지만 삶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고 대화하는 소소한 순간에서 행복을 찾는다. 귀여운 외형과 달리 노동과 불안, 생존을 다루는 세계관이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읽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치이카와를 ‘불안한 시대’에 호소하는 캐릭터로 분석하며, 등장인물들이 일용직에 가까운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긱 이코노미’에 빗댔다.
말보다 표정, SNS에서 퍼진 캐릭터
<치아카와 : 인어섬의 비밀> 한 장면. CJ ENM 제공
<치이카와>는 언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치이카와와 우사기 등은 ‘우우’, ‘야하’처럼 짧은 소리로 의사를 표현하고, 하치와레처럼 비교적 명확한 말을 하는 캐릭터가 등장해 이들의 상황을 전달한다. 하지만 슬픔, 기쁨, 당황스러움 같은 감정은 대부분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전달된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어를 잘 알거나 일본 문화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춰야 할 필요가 적다.
이런 표현 방식은 이미지로 소통하는 SNS 환경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치이카와>가 장문의 서사가 아니라 한 장면이나 짧은 이야기로 소비되는 만화인 만큼 한 컷만 떼어내도 상황과 감정이 전달된다. 일본의 IT 전문매체 ‘IT미디어’는 치이카와의 인기 요인 가운데 하나로 캐릭터가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만화의 내용보다 장면의 일부, 이미지로서 국경을 넘어 팬층을 넓혔다.
일상으로 들어온 캐릭터, ‘굿즈’로 팬덤 넓혀
한국 한정으로 발매된 치이카와 상품. 캐릭터들이 한복을 입고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캐릭터 IP를 활용한 각종 상품도 만화의 인기를 함께 견인했다. 인형 등 단순한 캐릭터 상품을 넘어 문구, 의류,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상품 등 장르를 넓히며 캐릭터를 일상에 들여놓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스타일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 9월 1일부터 21일까지 ‘치이카와’ 검색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22% 늘었다. ‘치이카와 폰케이스’ 검색량은 4275%, ‘치이카와 키링’은 377% 증가했다.
지역이나 국가별 한정 상품도 팬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치이카와>의 일부 열성 팬들은 한정 상품 구매를 위해 세계 도시로 굿즈 ‘토벌’ 여행을 떠났다는 인증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IP 상품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달 국내 유일의 공식 오프라인 판매처인 서울 용산 치이카와 마켓은 입장을 위해 전날부터 밤샘 대기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개봉 이후에는 캐릭터 팝콘 통을 구매하거나 관람 증정상품을 받기 위해 영화관 ‘오픈런’ 생기기도 했다. 영화관 개장 2~3시간만에 모든 상품이 동나며, 해당 상품들은 중고시장에서 원가 2~3배 가격의 웃돈(프리미엄)이 붙어 판매되고 있다.
<치아카와 : 인어섬의 비밀> 한 장면. CJ ENM 제공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의 흥행은 만화 팬덤이 극장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대가 됐다. 이미 만화와 애니메이션, 굿즈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캐릭터의 인기가 이제 극장이라는 소비 공간까지 장악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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