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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17, 2026

아버지는 신생 독립국 국회의원…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금자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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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서울 중구 명동의 시공관. 지금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1950년대 서울 중구 명동의 시공관. 지금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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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1930년대생은 우리나라에서 일본 강점기와 미군정기의 좌우갈등,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마지막 세대다. 그 세대의 끝자락에 있는 1938년생 강금자는 역사의 중대한 순간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모두 목도했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전쟁을 끝내겠다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와 악을 쓰다시피 하며 만세를 불렀다. 감격과 환희의 함성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7살 금자는 만세 행렬을 집 앞에서 신기한 눈으로 가만히 바라봤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청운국민학교 입학시험을 운 좋게 통과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공장 굴뚝 그림을 보여주고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쓰라고 했다. 삼각형을 몇 개 그려놓은 뒤 육각형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설명하라는 문제도 있었다. 학교엔 일본 아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조선총독부 청사인 중앙청에 근무하는 고급 관료의 자제들이라고 했다. 등굣길에 정문 왼편의 신당을 향해 절하지 않으면 벌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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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맞이하던 그날, 아버지 강욱중은 조선변호사 시험을 치르다 말고 도중에 나와야 했다. 시험 둘째 날이었다. 오전에 상법 시험을 봤고, 오후에 경제학 시험을 봐야 했다. 다음날에도 시험이 있었다. 천황의 라디오방송이 나오자마자 오후에 시험지를 나눠주고 감독해야 할 일본인들이 사라졌다.

1945년 청운동의 풍경은 1949년 명동의 기억으로 건너뛴다. 해방 직후 종로구 효자동에서 중구 명동 1가 10번지 4호의 이층 저택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부모와 7남매가 살았다. 현재 설렁탕집으로 유명한 ‘하동관’이 위치한 자리다. 바로 옆은 대한중석 사옥이었다. 일본 강점기에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만든 방공호도 인근에 여럿 설치돼 있었다. 1학년 2학기에 남산국민학교로 전학을 간 금자는 5학년이 됐다. 을지로 경성청계공립국민학교로 옮길 수도 있었는데, 거기는 전찻길 옆이라 위험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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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엔 식민지의 흔적과 전후의 활기가 교차했다. 집에서 고개를 들면 동화백화점과 시공관, 그리고 명동성당이 한눈에 잡혔다. 동화백화점은 미츠코시 백화점이 탈바꿈한 곳이었다. 과거 메이지자(明治座) 또는 국제극장이었던 시공관은 당시 서울에서 첫손에 꼽히는 문화공연장이었다. 1898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 지원과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의 설계·감독으로 지어진 명동성당은 누구나 아는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었다.

금자에게 시공관은 무용학원 친구들과 함께 무용발표회를 하던 곳이다. 만화영화 ‘똘똘이의 모험’, 임춘앵의 국극 ‘자명고’를 본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여순사건을 둘러싼 처남과 매부의 갈등을 그린 영화 ‘성벽을 뚫고’도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 명동성당은 일상의 놀이터였다. 굵은 모래가 깔린 성당 마당은 온통 은빛이었다. 동생들은 그곳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 정문 오른편에 수녀원 기숙사가 있었고, 그 앞은 온통 감나무밭이었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가 울창했다. 늘 그늘이 져 축축하고 습도가 높아 아래에는 달팽이가 살았다. 물병에 달팽이를 담아 집 화단에 풀어놓기도 했다. 환경이 바뀌니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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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 위로는 오빠 두 명이 있었다. 큰오빠는 경복중 5학년이었고, 작은 오빠는 배재중 3학년이었다. 다음이 국민학교 5학년 금자였다. 그 밑으론 네 살 터울 남동생이었고, 연이어 두 살 터울씩 사내 세 명이었다. 막내는 1948년 태어나 엄마 등에 업혀 지냈다. 막내를 제외한 세 동생은 동네에서 유명한 개구쟁이였다. 명동성당, 종로 파고다공원, 을지로 전찻길로 매일 뛰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며 쏘다녔다. 동생들은 동네 할머니들이 귀엽다고 말을 걸면 “우리 아빠는 국회의원이예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강욱중은 자랑스런 제헌국회의원이었다. 1948년 5월10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고향인 경남 함안에 조선민족청년단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했다. 조선민족청년단은 광복군 출신 이범석이 단장이었다. 함안에서 한약방 ‘강약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강약국집 아들 강욱중은 당시 전국에서 선출된 198명 의원 중 한 명이었다. 전체 의원 수는 200명이었으나, 4·3사건 여파를 겪던 제주 2개 선거구는 제때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해방되던 날 조선변호사시험을 보다 중도에 나왔던 강욱중은 1948년 10월 시행된 2회 변호사시험에 다시 응시해 합격했다.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이었다. 집에는 고관대작이 드나들었다. 금자는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른 임영신 상공부 장관이 2층에서 일행들과 함께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간 일도 기억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금자와 오빠와 동생들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윤택하고 풍요로웠다. 할아버지가 재력으로 이를 뒷받침해줬고, 아버지에게는 정치적 힘과 야망이 있었다. 경복중에 다니는 큰오빠는 공부를 잘하니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법관이 되라는 주변의 격려를 받았다. 배재중에 다니는 작은 오빠는 사교성이 좋으니 외교관이 될 거라 했다. 금자 밑의 두 동생에겐 씩씩하니 군인이 되거나 똑똑하니 의사가 되라고 했다. 이제 막 첫발을 뗀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자녀들의 앞날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해 보였다. 그 회오리가 치기 전까지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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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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