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등에도 석유 최고가격 동결…휘발유 1784원·경유 1773원 유지
지난 6월 말 경기도의 한 휴게소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직원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을 또다시 동결했다. 직전 가격 지정 때보다 원유 가격이 40% 가까이 올랐지만 서민 물가 부담을 감안해 국내 가격 상한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유가가 오를수록 가격 개입에 드는 비용은 커지는 반면, 시장가격과의 격차가 벌어져 제도를 종료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오는 19일 0시부터 4주간 적용되는 10차 석유 최고가격을 9차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18일 밝혔다. 이에 따라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 상한은 ℓ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지난 6월 27일 이후 약 3개월째 같은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최고가격제 도입 6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최근 중동발 공급 불안은 재차 확대되고 있다. 8월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미·이란 전쟁은 9월 들어 다시 격화됐고,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 인근 도시 등을 점거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대체 수송로인 홍해까지 위협받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105.8달러, 두바이유는 128달러까지 올랐다. 직전 최고가격 결정 때인 8월 넷째 주 두바이유가 배럴당 92.3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도 안 돼 약 39% 올랐다.
반면 최고가격제가 가격 상승을 억누른 탓에 국내 기름값은 아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9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859.1원으로 17주 연속 하락했고, 17일에도 1858.6원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산업부는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휘발유 가격은 지금보다 100원대 후반, 경유는 350원 이상, 등유는 300원 안팎 더 높게 형성됐을 것으로 추산한다.
원가 상승 압력이 뚜렷한데도 정부가 동결을 택한 주된 이유는 물가 부담이다. 산업부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월 3.2%에서 7월 2.8%로 낮아졌다가 8월 다시 3.1%로 높아진 점을 동결 배경으로 들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지난 3~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평균 0.6%포인트 낮췄다고 추산한다.
환율 하락도 또 다른 동결 근거가 됐다. 원유는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 하락이 원가 상승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가격을 ℓ당 210원 올렸던 3월 넷째 주 원·달러 환율은 1505원이었지만 최근에는 1358원으로 약 10% 낮아졌다.
산업부는 “최근 서민 물가 부담과 지난 최고가격 지정 이후 동향, 환율 하락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민생 안정에 무게를 두고 최고가격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고가격제를 장기간 유지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면 수급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격을 억누르면 소비자가 고유가를 체감하지 못해 석유 소비를 줄일 유인이 약해진다.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해 마련한 재정 규모도 5조6000억원을 넘는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미·이란 전쟁 장기화와 맞물려 역설을 낳고 있다. 국제유가가 오를수록 제도 효과는 커지지만 재정 부담과 수급 왜곡 우려도 함께 누적되고, 부담이 커져 제도를 종료하려 해도 시장가격과의 격차에 따른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최고가격제 장기화 시 수요 관리 문제에 대해 “지적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난 2월 대비 휘발유·경유 가격이 10% 올라 있는 상황에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수요 등의)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면서 최고가격 조정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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