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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3, 2026

함께했던 시간이 쌓여 아이는 홀로 나아간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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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고래 l 윤슬빛 글, 양양 그림, 봄볕(2026)
바다로 간 고래 l 윤슬빛 글, 양양 그림, 봄볕(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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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의 미래는 어린이책으로부터

발달장애아 양육자가 마트에서 아이의 같은 반 친구와 마주쳤던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우리 ○○이 반 친구네. ○○아, 인사하자” 했더니 상대방 아이는 “친구 아니야. 장애인이야”라고 말하며 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 작가도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와,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어린이들을 이해는 하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친구 아니야. 장애인이야.” “와, 장애인이다.” 이 말들은 자신과 다른 몸이나 소통 방식을 가진 사람을 구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추상적인 범주로만 보면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말로 들린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며 부딪치고 알아갈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장애인을 추상적인 이미지만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만 보는 것도 곤란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가기 전에 ‘장애인’이라는 정의가 그 사람을 덮어버리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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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바다로 간 고래’의 주인공은 휠체어를 탄다. 오늘은 늘 함께 다니던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지하철을 타려고 길을 나서는 중이다. 주인공의 장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처음으로 어른 없이 대중교통을 타고 나들이하는 한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읽어 보자.

비장애 어린이에게는 평범한 성장의 한 단면인 사건을 장애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 경험하면 ‘장애 극복’ 이야기로 읽기 쉽다. 초등학교 고학년 나이쯤 되었을 때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외출해 보는 일은 어린이의 흔한 일상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어린이가 똑같은 일을 하면 우리는 곧바로 ‘장애에도 불구하고’ 해낸 이야기로 읽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주인공이 장애로 인한 불편이나 편견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휠체어를 타지만, 그냥 어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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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는 단짝처럼 같이 다니던 엄지 이모가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래 인형을 선물로 남겨준 이모는 이제 곁에 없다. 그런데 정작 아이가 혼자 길을 나선 순간부터 소중한 고래 인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는 엄지 이모와 함께했던 순간들, 엄지 이모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물속을 유영하듯 지하철역을 오르내리며 작은 모험을 완수한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길을 나선 것은 엄지 이모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엄지 이모와 함께했던 시간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주인공을 통해 한 사람의 자립이란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함께했던 관계와 시간, 도움받았던 기억을 몸에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것임을 실감할 수 있다. 자립이란 아무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 누군가와 힘을 합쳐 내가 원하는 삶을 설계하는 것이 자립이다.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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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이모가 줬던 고래 인형은 끝내 보이지 않지만, 이제 아이는 고래 인형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엄지 이모가 남긴 목소리, 함께했던 시간과 경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는 고래 대신 캥거루나 호랑이 인형을 지니고 다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고래 인형과 함께했던 시간의 힘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인형을 잃어버렸던 어린이는 이제 진짜 고래가 있는 바다, “전에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세계”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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