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라는 건 웃기고, 국회의원 머릿 속도 궁금하고…” [금자㉖]

광고
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정말로 프락치는 한명도 없었을까요?”
“음…글쎄.”
“저는 그게 가장 큰 의문이에요.”
광고
떠나간 줄 알았던 폭염이 돌아온 날이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로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다 잠깐 꺾인 느낌이었는데, 다시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했다. 게다가 히말라야 ‘빙하 쓰나미’로 인한 대홍수가 네팔을 덮쳤다는 속보가 나온 날이었다. 신문 1면 제목은 ‘한국인 8명 등 400여명 실종’이었다. 충무로의 단골 카페에서 진실화해위원회를 함께 출입하는 후배 J와 마주 앉았다. 근처 식당에서 물회국수와 회덮밥으로 점심을 먹고 온 뒤였다.
광고
광고
두 달 전에도 이 카페에서 J와 이야기를 했다. 그때와 다름없이 이날도 국회프락치 사건을 화제로 올렸다. 다분히 의도가 있는 만남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이런 사건을 어느 정도 아는지, 인터넷 검색으로 대강의 개요를 읽은 뒤엔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했다. 20세기 마지막 해에 태어난 J는 지난해 3월 입사했다. 전철에서 국회프락치 사건이 무엇인지 자세히 검색하며 왔다고 했다. ‘구속된 의원 중 정말 프락치가 없었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던졌다.
“그들 중에 사회주의나 북한 노선을 내심 지지하는 사람은 있었을 수 있지. 근데 프락치라는 증거는 못 찾았지.”
광고
“저도 그 사람들 머릿속이 어땠을까 궁금해요. 13명 중 한 사람 빼고 다 월북을 했더라고요.”
“아, 월북이라 할 수는 없고. 1심에서 유죄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있다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북으로 갔는데, 2기 진화위는 ‘월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 월북이라는 프레임은 그동안 이들이 확정판결을 받은 빨갱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왔지.”
“진화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조사했죠?”
“형사소송법상 불법 구금과 당사자와 자녀에 대한 고문, 사찰 등. 조작 여부까지는 손대지 못했어.”
광고
J는 매일 아침 자신의 출입처인 서울중부경찰서 기자실로 출근한다. 중구 저동 2가의 청사가 현재 신축공사 중이라, 전철 4호선 회현역 인근의 임시 청사로 간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중부서 관할이다. 1907년 대한제국 시기 설립된 남부경찰서(이후 일본강점기 경성본정경찰서)가 모태인 중부서는 77년 전에는 한국 최초의 과거사위원회였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관할했다. 1949년 6월6일엔 바로 그 중부서 사복형사 40여명이 남대문로 1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부서 형사들은 반민특위 특별경찰대원들을 무장해제하고, 특별검찰부장인 현직 검찰총장 권승렬의 권총까지 빼앗았다.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장 최운하가 일본강점기 친일경찰 행적과 반민특위 활동 방해 혐의로 반민특위 특경대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지 이틀 만이었다.
중부경찰서 경찰의 습격을 받은 뒤 반민특위는 해체의 길을 걷는다. 이어 반민특위 설립과 친일파 척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소장파의 핵심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체포된다.
“거기 여자가 나오잖아요.”
“누구?”
“정재한이라는 여간첩. 남로당 프락치인 국회의원들에 대한 공작보고 내용이 담긴 문건을 음부에 숨겼다가 경찰에게 발각됐다고 했어요. 그 문건은 무려 50여쪽 된다고 하고요.”
“그게 증제1호, 즉 제1의 증거물이었음. 그거 진짜일까?”
“조작 같아요.”
“암호문서라잖아.”
“웃기는 소리죠. 음부에 그 많은 종이를 숨겼다는 것도, 그게 증거라는 것도.”
“그럼 왜 그렇게 줄줄이 잡아넣었을까.”
“그 사건 조사했던 경찰이건 검사건 다들 친일파들이었잖아요. 이승만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 거죠.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이 친일파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일본을 싫어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친일파와 이승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거죠.“
“훌륭한 해석이네.”
“국회프락치 사건으로 잡힌 의원 중에서도 반민특위 사람들이 있었죠?”
“반민특위 위원들이 있었고, 노일환·서용길은 반민특위 특별검찰관이었어.”
“그러니까 반대파 제거가 목적이었겠네요.”
국회의원들이 프락치라고 수사기관이 내세운 증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간첩 정재한의 음부 속 문건이었고, 또 하나는 자백이었다. 이들의 자백 뒤에는 고문이 있었다. 의원들은 중구 필동 2가 헌병대사령부에서 수사를 받다가 주먹질을 당했고 욕탕에 머리가 처박혔으며 찌릿찌릿한 전기선이 몸에 꽂혔다. 경찰이 아니라 헌병이었다. 당시 헌병사령관은 작가 전혜린의 아버지인, 일본강점기 친일 경찰 출신 전봉덕이었다.
그 헌병대사령부가 있던 곳은 현재 남산골 한옥마을이다. 그러고 보니 충무로는 반민특위 및 국회프락치 사건과 관련된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이다. 중부경찰서와 헌병대사령부 말고도 친일반민족행위자 노덕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 체포된 뒤 대통령 이승만이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는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관사도 필동 3가에 있었다. 카페 맞은편에 경찰이 남로당 공작원들의 아지트라고 발표했던 자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J에게 했던 터였다. 그곳은 충무로2가 53-9다.
“1950년에 미국 공화당원 조셉 메카시가 ‘국무성 내 침투한 공산당원이 205명 있다’고 주장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잖아요. 그보다 1년 전인데 비슷한 거 같아요.”
“국회프락치 사건은 무엇보다 행정부가 입법부를 쳤다는 게 중요해 보여.”
“1940, 50, 6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던 거 같아요. 너무 단선적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이야기일까?”
“가령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박멸한 독재자이자 친일파를 등용한 민족반역자이며, 자국민을 학살한 대통령이기만 한 거냐. 그런 시각도 있지만, 좀 더 복합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요? 가령 저는 진화위 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서 불량배를 갱생시킨 줄로만 알았어요. 무고한 사람 끌고 간 건데 아직도 많이 조명되지 않았어요. 근데 기사 댓글은 전부 ‘삼청교육대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해요. 정말 화가 나요.”
“흐흐. 삼청교육대와 이승만이 그렇게 연결되나?”
“이승만이 독재자는 맞지만, 공도 있지 않나요? 대한민국 기틀을 다진 건 맞잖아요. 건국 초기엔 스트롱맨이 필요하지 않나요? 소련에서도 스탈린이 없었다면 소비에트가 붕괴하지 않았을까요?”
“많이들 하는 이야긴데, 국가와 개인 중 무엇을 중심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 그리고 그 중심이 얼마나 확고하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그런데요. 선배는 어떻게 77년 전 과거 사건에 꽂히셨나요?”
“글쎄. 77년 전 사건이라기보다는 77년간 진행 중인 사건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듯. 법원에 재심도 청구돼 있고.”
“저는 오늘 하루 벌어먹기도 힘든데.”
“엥?”
“아니 그 네팔….”
J의 얼굴이 아까부터 심란해보였다. 카페에 들어와 팀장의 문자를 받은 뒤부터였다. 아침에 속보로 나온 네팔 대홍수 관련해 취재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네팔 현지인이나 교민을 찾아 그곳 분위기를 듣고 기사를 작성하는 미션이었다. 적어도 4시간 안에 완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마음이 급할 수밖에. 바로 커피잔과 쟁반을 정리했다.
결국 이날 하려던 교수 K에 대한 이야기는 못 하고 말았다. 앞선 글에서 김옥주 의원 아들 김진원 선생은 아버지의 사건과 관련 자신의 눈을 번쩍 뜨게 해주었다는 책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바로 그 책을 쓴 교수였다. 김진원 선생은 그 분의 오피스텔로 찾아가자마자 큰절부터 하며 “아버지보다 더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경의를 표했다고 했다. 국회프락치 사건 연구의 역사는 교수 K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나도 그분의 오피스텔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