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때 묻은 책, 엄마에게 보여주기 싫어요…“제가 별종인가요?”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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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요조님의 책 처방을 애정하는 구독자입니다. 요조님이라면 에이아이(AI)보다도 지혜로운 조언을 주실 것 같아 메일을 보내봅니다.
저는 긴 대학 생활을 타지에서 보내고 졸업 후 본가에 돌아와 가족들과 생활 중입니다. 초반엔 부딪히는 일이 많았지만 이젠 서로가 민감한 부분을 배려하며 잘 조율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좁혀지지 않는 갈등이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엄마가 저의 책을 읽는 게 부담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싫다’입니다. 얼마 전 엄마는 교회에 저의 성경책을 우연히 가져가셨다가 저의 염원이 담긴 메모와 밑줄을 보시곤 기쁨과 감동에 찬 마음으로 카톡을 보내주셨는데, 저는 정말 끔찍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엄마가 읽는 게 싫었거든요. 성경을 제 장롱에 꼭꼭 숨겨두며 이 일은 종결되었지만, 최근에 또 다른 이슈가 생겼습니다.
엄마가 이직을 하신 뒤 점심시간을 활용해 독서를 하시는데, 저의 책을 가지고 다니십니다. 저는 그것 역시 상당히 불쾌합니다. 저에게 책은 일기장과 같은 느낌이라 문장들에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는 등 저의 개인적인 감정을 세세히 적어놓곤 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저는 북커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유를 설명해드려도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집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뭐 있냐며 별종이라고 하세요.
엄마는 어쩌면 제 흔적이 깃든 책을 통해 딸과의 감정적 유대를 바라시는 것 같지만, 저는 제가 공유하고 싶은 감정만 공유하고 싶은, 자존심이 센 딸내미인 걸 어찌합니까. 카리나님(아이돌 ‘에스파’의 멤버)은 엄마와 책을 공유하는 사이라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시는 게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엄마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주면 될까요? 경상도 딸내미는 어렵네요….
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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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이가 아닌 저를 믿고 사연 보내주신 독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사연을 거듭 읽으면서 어쩐지 이 사연이 지면에 실리고 나면 독자분들의 의견이 둘로 크게 나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사연자님의 심정에 공감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고, 한편 딸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엄마의 서운함에 더 공감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이러한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대체로 명백한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다 이쪽의 의견에도, 저쪽의 의견에도 나름의 일리가 있어서 고민할수록 골치가 아픈 양상을 띠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시 사연자님의 마음 쪽으로 팔이 훌쩍 굽습니다. 저와 매우 비슷한 성정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인데요. 저 역시 별종 소리를 들었던 전력이 있었던지라, 반가운 마음으로 사연자님을 이제부터 별종님으로 불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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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종님은 혼자만의 세계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홀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꾸준히 욕망하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작은 단칸방에서 어떻게든 제 구역을 확보해, 그 안에 웅크리고 머무는 일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두꺼운 책들을 제 주변으로 빙 둘러 세운 다음, 펼친 우산 두개로 지붕을 만들어 그 안에서 깜깜하게 고립된 채 잠시나마 제가 저하고만 존재하는 순간을 만끽하곤 했어요. 당연히 남과 감정을 공유하는 일에도 까다롭고 선택적으로 굴며 자랐고요.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자기밖에 모르고 유난스러운 별종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마음을 열고 다가오고자 하는 상대를 속절없이 외롭게 만들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상처받은 어머니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까지도 우리는 참 비슷합니다.

저는 모쪼록 별종님께서 자신의 세계를 계속해서 분명하게 지켜 나가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에도 성실히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뻔한 소리 같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대화일 것입니다.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눈을 맞추며 시도하는 대화도 좋겠고, 편지를 통한 대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별종님의 책에 적힌 메모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아무에게나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내밀한 일기와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어머니께서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들여 설명해보세요.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 같이 읽고 독서모임을 가져보거나, 최근 잔잔히 유행하고 있는 ‘교환 독서’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당부를 노파심에 덧붙여보자면, 끝내 어머니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별종님의 삶의 방식을 억지로 희생하며 어머님의 요구에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양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자신을 양보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책 한권을 같이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최은영 작가의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문학동네, 2026) 라는 책인데, 저는 특히 이 책의 늠름한 프롤로그를 아주아주 좋아합니다.
‘이렇게 써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면 더더욱 그렇게 쓰려고 했다. ‘이건 너무 사소한 문제 아닌가?’라고 나의 고민을 평가절하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오래도록 그런 목소리를 듣고 살아온 내 마음의 편이 되어주고자 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일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무리 절제해도 폭발하듯 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학창 시절, 어머니에게 일기를 들키는 것으로요. 어쩌면 최은영 작가님도 우리와 같은 종류의 별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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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txt@hani.co.kr로 보내주세요.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